대학 4년간 내가 배운 것은 산업에 쓰여야 하는 전공지식만은 아님을 확실히 한다.
시행착오를 통해 해답을 찾아 나가기
이상 vs 실제 vs 근사의 차이, 과학자들이 100%를 주장하지 못하는 이유
말을 하고 글을 쓰는 방법
텍스트를 이해하고 흡수하는 방법
두려움없이 시험지를 건네기
과학은 절대적 진리같은 것이 아니라 인간이 우주의 현상을 해석한 결과라는 것
원리가 현상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현상을 관찰하고 정립한 결과가 원리이다.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는 것
모든 주장에는 근거와 사례가 붙고 또 반드시 반박될 수 있다는 것
특정 지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때에는 이분법적 사고가 매우 도움이 된다. 기초지식을 다지고 나서야 이분법적 사고로부터 벗어나 스펙트럼적으로 이해가능하고 또 그렇게 해야 깊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책상에 앉아 책을 피고 공부를 하는 이유는 일상에서 그 책을 보지 않고도 사건을 꿰뚫는 "직관"을 갖기 위해서
조건의 변화 후에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언제나 지연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열역학,유체역학,분자 간 상호작용 등 기본적 우주의 원리. 그리고 화학반응 계산,공정의 설계,실험방법 및 해석
한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엔 여러가지 관점이 있고 그것들이 전부 타당하다는 것. 즉, 본질적인 해결을 위해선 여러 관점들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
머릿속 생각엔 한계가 있고 직접 움직여야 해결책이 보인다는 것
아래는 GPT의 도움을 받아 풀어 쓴 글이다.
1. 앎이란 시행착오의 연속임을
나는 완벽한 계획보다 불완전한 실천이 더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는 걸 대학에서 배웠다.
문제는 늘 하나의 해답만을 갖고 있지 않았다. 책 위의 이상적인 공식보다,
손을 움직이고 부딪히며 경험한 실패의 조각들이 진짜 이해를 낳았다.
무작정 고민만 하는 것보다 움직일 때 해결책이 열린다는 감각은, 대학에서 얻은 가장 실용적인 직관이다.
2. ‘진리’는 고정된 것이 아닌, 해석의 결과임을
과학은 언제나 진리에 근접하려 했지만, 완전히 닿은 적은 없었다.
이상과 실제 사이의 간극, 그리고 그 사이를 메우려는 근사의 노력들 속에서
나는 과학이란 해석과 정교화의 역사임을 깨달았다.
진리는 우주에 박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려는 끊임없는 관찰과 정의의 과정에서 탄생한다.
‘100%의 확신’이 배제된 그 겸손함 속에서, 오히려 더 깊은 진리를 엿볼 수 있었다.
3. 지식은 쌓는 것이 아니라, 흡수하고 표현하는 방식이다
앎은 단지 머릿속에 저장된 정보의 양이 아니라,
그 앎을 말과 글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가,
또한 타인의 말과 글을 얼마나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모든 주장은 근거와 함께 구성되어야 하고,
그 근거조차도 반박될 수 있다는 열린 태도는
‘지적 겸손’이 아니라 깊이 있는 소통의 조건이다.
또한 때론 이분법적 단순화도 필요하다.
낯선 지식을 처음 만날 때는 흑백의 구도로 개념을 정리해야
이후에야 비로소 스펙트럼적인 사고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4. 앎은 직관으로 변해야 삶에서 쓰인다
시험을 앞두고 공부하는 이유는 단지 점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책상 위 지식은 결국 생활 속 직관으로 변해야 했다.
세상은 늘 빠르게 반응하지 않고, 조건의 변화 후에도 시간차를 두고 반응했다.
그걸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건 단지 이론을 아는 것이 아니라,
삶의 리듬을 이해하고 기다릴 줄 아는 태도를 배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학문적 지식 못지않게, 나는 대학 이후의 세계를 미리 들여다보며 구조에 대한 의문을 품는 법을 배웠다.
산업계에 진출한 많은 선배들은, 하나같이 청춘 시절을 그리워하며 현재의 삶을 타협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 속에는 반복되는 패턴이 있었다. 골프, 술자리, 담배, 승진 경쟁, 그리고 회고적 향수. 나는 그들이 대학 시절 품었던 질문과 가능성들이 산업의 논리 속에서 점차 무뎌졌음을 보았고, 그 세계가 나에게는 더 이상 선망의 대상이 아님을 자각했다. 그 길은 어쩌면 경제적 성공과 외형적 안정은 보장할지 몰라도, 삶의 방향성과 나만의 방식을 지키려는 내게는 의미 없는 경로였다.
그 과정에서 산업 내부의 젠더 격차 역시 뚜렷하게 체감하게 되었다. 공정과 설계, 운영을 중심으로 한 산업계 전반은 여전히 남성 중심의 위계에 의해 구성되어 있으며, 여성은 여전히 주요 의사결정 구조에서 배제되기 쉽다. 이는 단지 성별 문제를 넘어, 조직문화와 산업구조가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또한, 기후위기와 지속가능성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확산되는 와중에도, 많은 산업 종사자들은 환경 문제를 규제로 받아들이거나, 홍보 수단으로만 활용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실제 개선보다는 이윤에 종속된 채, 시스템을 ‘이용’하려는 태도는 나에게 깊은 회의를 안겼다. '기술적 해결'이라는 환상을 넘어, 진정한 변화는 가치관과 구조의 전환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한국 사회가 제조수출업에 기반을 둔 구조 위에서 성장해왔다는 점 역시 뼈아프게 배웠다. 외화를 벌어오는 산업계 종사자들이 국가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구조, 그리고 그 뒤에서 상대적으로 가려진 내수경제의 취약함. 이처럼 경제 전체의 구조를 인식하는 시각은 내가 선택할 진로와 삶의 방식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단순히 "돈이 되는 산업"이나 "안정적인 경로"를 택하기보다는, 어떤 시스템 안에 나 자신을 위치시킬 것인지, 나의 역할과 의미를 어디에 둘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요컨대, 나는 대학에서 전공 지식만을 배운 것이 아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 그리고 그 속에서 나의 길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을 스스로 세우는 법을 배웠다. 익숙한 경로를 따르기보다는, 변화하고 있는 현실과 내 삶의 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하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내가 대학을 통해 얻게 된 가장 실질적인 학습 성과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