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박을 깨는 '불쉿'적인 사고방식 - [불쉿잡]을 읽고

책리뷰

by 이건우

작년까지만 해도, 흙이 되고 싶다고 바랬었다.

시간이 갈수록 나를 자꾸만 좁혀오는 압박들(출세, 부, 취업, 결혼, 집, 부양, 노동, 사회적 역할)은 좀처럼 달성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고, 다른 길로 가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 당시의 나에겐 흙이란 내가 되고 싶은 것 중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어떠한 인간적 의지나 목적 없이, 단지 바람과 풀과 함께 있으며 자연의 일부가 되는, 생명력에 기여하며 흐름의 몸을 맡기는 상태.


특히나 작년의 나는 대전의 어느 연구소에 실습을 진행 중이었으므로, 이런 노동환경에서 나의 자유, 소망, 꿈, 사랑을 획득하기란 불가능하다고 결론지었던 것이다. 과연 선진국 대한민국의 굴지의 대기업, 석사 이상의 교육수준을 필요로 하는 연구소에서의 노동 생활이 이 정도라면,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공부하였고 또 그래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 나는 쉽게 생각을 전환할 수 있었다. 흙이 되기를 소망하며 죽음을 기다릴 바에야, 나를 조여오는 모든 압박들로부터 벗어난 인간으로 살아가겠다고. 이제부터 인륜은 됐고, 사회적으로 학습된 통과의례들과 예의범절들은 치우고 오직 '나'라는 인간만을 고려하겠다고. 나의 감정과 직관을 최우선의 행동 원칙으로 삼겠다고.

쉽게 말해, 하고 싶은 것은 하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안 하겠다고 결심했던 것이다.


그때 대전의 연구소에서 내가 느낀 것이 정확히 무엇이고, 어떻게 내가 그런 생각의 전환을 쉽게 이루어질 수 있었는지 그때의 나는 잘 알지 못했다. 최근에서야 <불쉿잡>이라는 책이 그때 나의 사고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리하여 다시 나의 과거를 재해석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저자는 우리 현대 사회의 노동구조가 얼마나 그리고 어째서 '불쉿'인지를 강조한다. 학부시절의 학문을 공부하는 열망과 달리, 현실 세계(노동 세계)는 비효율과 보기 좋은 허울, 권력이 지배한다. 대학교에서 자신의 자유와 열정을 마음껏 발휘하도록 훈련되어 있는 학생들에게는 그런 일이 얼마나 큰 비극인지를 저자는 안쓰럽게 바라본다. 또한 학생들은 노력을 쏟아부어 넣은 자신의 배움이 사회적으로 공헌되기를 바라지만, 사실 그런 종류의 노동의 자리는 매우 희소하게 한정되어 있어 대다수의 학생들은 단지 노동을 위한 노동, 권력을 가진 자들의 위세를 위한 노동에 종사하게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사회의 해악을 끼칠 가능성이 높은 일들 말이다.



사실 우리 모두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아침마다 회사에 가기 싫고 주말 일요일부터 왠지 두려운 마음이 드는 기분. 일을 하면서도 무의미가 느껴지고 바쁜 듯 안 바쁜 듯,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일상들. 시간과 에너지가 고갈되는 느낌을. 이 현상 자체가 불쉿의 증거다.

많은 이들이 부러워하는 워라밸의 삶도 비슷하다. 한국에는 희소하지만 아마 미국에서는 많은 듯, 저자들은 그런 종류에 종사하는 노동자들도 힘들어하는 사실에 주목한다.

과연 그렇다. 영혼이 뼛속부터 썩어들어가는 불쉿잡의 9 to 6 이후, 영혼이 정화되는 시간이 따로 필요하다. 즉, 자신의 소망과 일이 일치하지 않는 한, 연봉과 복리후생이 어떻게 되든지 워라밸의 꿈은 불가하다.



실습생의 자격으로 대전의 연구소에서 내가 주로 한 일은 일을 시킬 때까지 기다리는 일이었다. 그곳의 선임 연구원과 실험을 함께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해야만 나는 노동에 참여할 수 있었다. 물론 전체적 맥락을 따지는 회의&토론과 방향을 제시하는 기획 단계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나의 일은 단순히 주어진 매뉴얼을 따라 간단한 실험을 반복하는 일이었다. 심지어는 그런 시간은 하루 8시간의 근무 중 2시간도 채 안 되었지만.


그렇게 나는 대부분을 소설과 글을 쓰며 보냈다. 개인적인 자그만 반항이었달까. '나는 너희들의 요구와 관계없이 나의 일을 한다'라는 행동적 선언이기도 했다. 덕분에 독서력과 글솜씨, 다른 방향의 가능성들을 탐구하며 나만의 길로 가기로 결심할 수 있었다.


이제는 좀 설명이 된다. 왜 몸이 편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무력감과 우울, 패배감이 나를 지배했는지. 내가 속한 집단에서 나는 아무 의미도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즉, 쓸모가 없다는 무기력이 내게 부정적 영향을 끼쳤고 방치와 감시 사이에서 썩어들어가고 있던 것이다. 사람은 역시나 자신이 믿는 곳에 속해야만 한다.


그 후로 나는 긴 대학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왔고, 회복기를 가지기로 했었다. 그러고는 제주로 떠나 커다란 기쁨과 마주하며 ' 아 이런 게 바로 좋은 생활이구나,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삶이란 게 이상점이 아닌 바로 이 현실에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구나'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건 매우 크다. 불만 없고 매일이 즐거운 기대 이상의 삶을 살아 봤다는 것은 앞으로의 나의 날들에 마음껏 불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 같은 칭얼거림이 아닌, 실제로 좋은 삶을 마주했으니. 나쁘다고 느끼는 순간 어디든 가볍게 떠날 수 있다. 가야 할 방향이 뚜렷한 자에게 두려움은 없다.



어느 곳에서든 만족하지 못했던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이 '불쉿'이라는 점은 역설적이게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남는 질문은 하나. 나는 이 '불쉿'을 어떻게 돌파하고 나가 살아갈 것인가.







압박을 깨는 제1원칙. 나만큼은 나의 마음을 존중할 것.

가령,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단숨에 ‘안돼’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왜 그런 마음이 드는지 꼼꼼히 살피고 그렇게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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