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2일 뉴진스의 라이브 방송이 켜지던 날
9월 12일 뉴진스의 라이브 방송이 켜지던 날.
오늘도 네이버 뉴스를 뒤적거리다 눈에 띄는 기사를 발견했다.
내용은 뉴진스의 하이브를 향한 라이브 방송. 나도 어제 저녁 퇴근을 한 후 라이브는 아니지만 녹화된 영상을 띄엄띄엄 보았다. 평소 뉴진스의 앨범을 즐겨듣는 나에겐 그녀들의 이야기가 더욱 공감되었었다.
그런데 그 기사의 댓글들을 둘러보니 역시나 사람들은 실망스러운 인간성들을 드러내고 있었다.
가장 열받는 형식의 댓글은 " 아직 어려서 뭘 모르네~"라며 시작하는 것들 이었다. 마치 본인들은 뭐라도 아는 양.
물론 나도 별로 살아보지 못한 터라 그들이 말하는 직장생활이라든가 기업과 법이 어떻게 굴러가는 잘 모른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그들조차 삶과 세계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은 거대한 세계 중 극히일부로써 본인이 지나온 것들만 어렴풋이 알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어른이라는 자격증이 존재하는 듯 행동한다. 이 '어른자격증'을 갖고 있는 그들에게 절대적인 권위가 부여되는 듯 하다.
본인이 이해하지 못하는 말과 행동들을 타인에게서 보았을 때, '넌 어려서 뭘 몰라'가 그들의 뇌속에서 작동하고 그 즉시 타인에게 뱉어진다. 그리곤 더이상 아무 반박도 허용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어른 자격증'이라는 것을 발급받는 방법에는 아무 자격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그냥 가만히 있다가 적당한 때에 본인 스스로 어른이라는 칭호를 부여하기만 하면 이 절대적 권위에 '어른 자격증'이 발급된다. 이제 그는 본인보다 어린 나이와 낮은 지위 혹은 적은 사회경험을 가진 사람에게 무조건적 반박을 할 수 있게된다. 왜냐하면 한국사회는 그 뿌리의 유교사상이 있고 본인보다 많은 나이와 경험앞에 고개를 숙여야만 하도록 길러져 왔기 때문이다. ( 예로써 인사와 존댓말이 그렇다.)
그러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인의 인간적 면모를 성찰하지 않고 적당한 때가 되기만 하면 스스로를 어른이라 믿는다. 그것이 사회에선 유리하니까. 지금의 한국사회는 전통적 유교사상이 강조하던 인간적 성찰은 제외된채 어른이라는 권위만 남아있는 것이다.
어른이라는 자격증을 앞세우곤 무기처럼 휘두른다. 젊은 세대에게 공감하려는 시도없이 권위앞에 복종하고 입다물라 명한다. 마치 기업앞에서 개인은 닥치고 있으라고 말하는 뉴진스 기사의 댓글들처럼.
이런 것들을 진정한 어른이라고 할 수는 없다.어른이라면 아직 어른이 아닌 사람들을 케어할 책임이 있다. 어른이 되지 못한 자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방향성을 제시해주어야만 한다. 그런데 이 '어른'이라는 족속들은 책임은 없이 그저 본인들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막강한 논리의 무기로 사용한다.
책임은 없이 권위만 휘두르는 꼴이다. 그러니 우스울 수 밖에.
병든 어른들. 그들이 주류인 병든 사회. 그들에게 속하려 애쓰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