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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우 Oct 18. 2024

대한민국의 봉건제는 여전하다.

조선시대와 근현대사를 거쳐 지금에 오기까지

조선의 경제상황. 양반은 토지를 소유하고 농민과 노비들은 그 땅에 농사를 지었다. 그로부터 생산된 농산물들을 양반이 갖고 그 일부를 농민과 노비에게 나누어 주었다. 딱 먹고 살만큼만.

하나의 토지에서 생산가능한 자본은 한계가 있다. 그러니 경제성장이라는 말은 조선에서 불가했다.


그런 조선이 일제와 전쟁을 거쳐 대한민국이 되었다. 자본가(기업)는 공장을 소유하고 노동자들은 노동력을 기업과 거래해 그에 따른 급료를 받는다. 기업은 벌어들인 자본을 통해 다시 투자하고 사업영역을 넓히면서 이윤을 극대화 할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 경제성장이 가능하게 된다.


두 경우는 비슷해 보이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다. 자본주의는 과거의 경제체제와 달리 생산수단을 국가가 아닌 개인이 소유한다. 이윤추구로 인한 경제성장을 포함하면서말이다.

조선에서는 국가의 대리인인 양반이 토지를 소유했다. 대한민국은 자유로운 개인이 자본가가 되어 생산수단을 소유한다.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는 시장에서 개인은 신분의 한계를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말 이것이 진실일까? 알다시피 자본주의는 한국에서 태어난 것이 아닌 서양으로부터 들여온 것이다. 그러니 더욱 깊숙히 봐야만 한다.


1960년대. 6.25전쟁이 끝난지 얼마지나지 않아 군부세력이 큰 권력을 차지하던 때.

국가는 경제계발 계획을 주도하기 시작한다. 이때 자본을 소유한 기업은 국가와 강하게 결탁하여 국가와 같이 경제성장을 이루어 낸다.

그러니 무언가 이상해진다. 분명 자본주의는 생산수단을 개인이 소유해야만 하는데, 기업이 국가와 결탁한 경우 생산수단의 소유자는 희미해진다. 심지어 국가는 군대와 경찰을 동원하여 노동자들을 쉽게 탄압할 수 있었다. 이제 기업은 국가의 대리인인 양반처럼 재벌세력으로 부흥한다.

배움이 부족했던 노동자들은 이들의 권세에 저항하지 못했다. 고조선때부터 깊숙히 뿌리박힌 유교권위주의와 국가주의는 자본가들의 권세를 당연시 하면서도 강화시켰고 배를 불리고 등을 따스하게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 이들은 급기야 자본가를 찬양하였다. 심지어 기업의 위기 (IMF)가 찾아왔을 때도 기업을 살리는 일이 국가를 살린다는 생각에 자발적으로 금모으기운동을 하면서 말이다.

또한 한국의 회사가 유독 민주스럽지 않고 권위적인 시스템을 갖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윗 사람을 대우하는 유교문화가 회사안의 직급에 대한 대우로 옮겨지게 되면서, 빌어먹을 권위주의는 더욱 비대해졌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상황은 달라진다. 경제성장은 옛말이 되었다. 남은 것은 노력, 성과, 자유라는 말로 꾸며진 현대자본주의의 껍데기뿐이다.

이제 우리는 안다. 대한민국에 봉건제는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자유시장과 자본주의를 내세우며 이름만 바뀌었을 뿐, 국가와 재벌의 권력은 조선시대때와 다를 바 없이 막강하다.

심지어 더욱 불행한 일은 자유라는 달콤한 말로 노동자들을 쉽게 유혹한다는 것이다. 한 노동자에게 돈이 없다면 그가 게을리 살았다는 것을 우리는 흔히 말한다. 그 시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또 미래에 도래할 지도 모르는 자유를 위해 현재를 희생한다. 번아웃과 우울증을 촉발하면서 말이다.


전통적 봉건제 사회였다면 성장을 추구하지 않고 주어진 신분과 환경에 만족하며 살았을 사람들이 현대에 이르러 겉으로만 반듯이 꾸며진 자본주의에 속아 열심히 살아가지만 그 꿈은 너무 쉽게 좌절된다.

왜? 한국은 형식적으로 자본주의를 표방할 뿐 본질적으로는 여전히 봉건제이니까. 개인이 아닌 앨리트 계층과 재벌에게 자본과 권력이 집중되어 있으니까.

서양의 경우처럼,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쳐 애덤스미스의 <국부론>까지. 사회운동과 철학적 사유를 거친 것이 아니라 국가적 주도로 행해진 자본주의이니까.


그래서 지금의 문제는 어쩌면 당연하다. 청년실업과 0.7의 출산율, 높은 자살률은 이 위선적인 사회구조로부터 태어난 것이 분명하다. 그동안 왜 몰랐냐면, 학교에서 근현대사를 깊이 배우지 않기 때문이다. 그깟 정치적 이슈로인해 여기 눈치보고 저기 눈치보다 위선적이며 기괴한 사회구조가 탄생하였다. 이제 우리는 그 미루었던 것을 감당해야 할 차례인지도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타인에 대한 시선거두기( 함부로 게으름을 판단하지 않기)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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