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탸의 즐거웠던 고독생활

책리뷰 : 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by 이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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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주인공 한탸는 삼십오년간 폐지더미를 압축하는 일을 해온 사람이다. 그는 삼십오년간 반복적인 압축을 하면서도 삶의 즐거움을 발견하는데 바로 밀려오는 폐지더미 속 선대 지식인들이 써내려온 책들을 발견하고 읽는 것이다. 그렇게 삼십오년간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은 한탸는 술과 작업, 독서를 반복하면서 일생을 살아오다 사랑했었던 여인, 만차와의 일을 회상하고 요즘들어 자주 마주치는 집시여자들을 떠올린다.

어느날 한탸는 자신의 압축기는 초라해보일 정도인 거대한 폐지 처리 기계를 마주하곤 박탈감과 타락한 문명상을 느끼곤 허무에 빠져 좌절한다.





글도 짧고 쭉 읽었지만 문장의 농도가 너무 진하고 이해하기 어려워 완전히 마음에 다다르지는 못하였다.


그럼에도 책을 읽어나가면서 노동과 창조사이에 껴있는한 인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소설은 계속적으로 노동의 허무함과 창조(독서,꾸러미)의 즐거움을 대비시키며 주인공 한탸에 주목한다. 그는 삼십오년씩이나 반복적인 작업을 수행해오면서 고용주로부터 많은 핍박에 시달리고 있는 터라, 대충보면 그의 생활은 더 나아질 겨를도 없고 외로우며 비루하다. 그런 끔찍한 고독속에서 삼십오년간이나 살아간다는 상상만 해도 비참해지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 한탸는 보란 듯이 예상을 깨며 고독 속에서 즐거움을 맞이한다. 그는 오랜기간의 폭언과 반복노동,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그 나름의 창조활동을 계속 해왔다. 폐지사이 하나 둘 씩 숨어있는 책을 발견하고 천천히 탐독하고, 그런 책들과 쓰레기들 사이 명화들을 한데로 묶어 자신만의 꾸러미를 만들어 낸다. 이렇게 그는 멀리서 보면 비루한 삶뿐인 그의 일상을 창조의 순간들로 바꾸어나가면서 행복한 삶을 보내고 있던 것이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격언의 정확한 반례인 것이다. 그에게는 가까이서도 자신의 삶 자체를 희극으로 만드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행복은 어느날 산산히 부서진다. 인근 공장에서 거대한 폐지기계가 새로 들어왔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 직접 그 광경을 보게 되었던 바로 그 순간부터. 공장 속 노동자들은 모두 젊고 쾌활한 젊은이들이었다. 그리고 한탸는 절망한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이며 획일적인 작업방식이 곧 도래할 것이라는 것을 그는 이미 예감했던 것이다. 그렇게 곧 자신의 작업장도 '효율적인' 작업에 능숙한 젊은이들로 대체되고 그는 파양된다.





태어날때부터 기획적이고 효율적 사고에 길들여진 우리는 이 한탸에게 공감하기 어렵다. 효율적인 작업방식이 도대체 왜 그를 좌절하게 만들었는지, 빠르고 발전적으로 '일'하는 것이 도대체 뭐가 그리 나쁜지 우리는 감히 예상할 수 없다. 현대기술사회의 바깥을 볼 수 없는 것이 우리의 비극이다.




그래도 그간의 독서들로 다른 세계들을 둘러보고 온 나는 조금 알 수 있다. 우리가 효율적인 작업 방식으로 커리어를 성장해 나갈 수록 인간으로써의 개인은 소외된다는 것을. 직장에서 커리어성장을 일구는 동안 '나'의 정신적 성숙과 창조의 시간은 반납된다는 것을.





한탸는 이러한 사실을 공장의 그 순간에서 단숨히 꿰뚫어보지 않았을까. 소설의 배경이 체코의 사회주의 시대이지만, 현대의 자본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대의 이념이 무엇이 되었든 전체주의와 권위주의를 버리지 못한다면, 그것들은 모두 인간을 획일화 하고 권위로 억눌러 창조의 시간을 방해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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