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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Oct 27. 2021

행복 체감의 법칙? 있다? 없다?

돈과 행복의 다이내믹한 관계

오랜만에 소고기 스테이크를 먹으면, 정말 맛있다.

그다음 날 아침에도 소고기 스테이크를 또 먹는다면? 뭐 맛있긴 한데, 엄청나진 않다.

그리고 같은 날 점심때 소고기 스테이크를 또 먹는다면?

으음... 이제 슬슬 질려 온다.

그런데 저녁에 소고기 스테이크가 또 나온다면?

우와... 이제 못 먹겠다.


이게 바로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다.

어떤 재화를 처음 얻었을 때는 엄청 좋았는데,

반복됨에 따라 느끼는 효용은 점점 줄어든다.


사실 효용(utility)을 심리학자의 언어로 바꾸면, 행복(happiness)이다.

즉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은 행복 체감의 법칙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새 차를 처음 탈 때는 너무 행복하지만, 또 타고, 또 타고, 또 타면, 아무 느낌이 없어진다.

예전 군인들이(요즘 군인들은 잘 모르겠다) 초코파이를 좋아하고 먹고 행복해한다고 해도,

신병 때 한 두 번 먹으면서, 또는 가끔 신병 때 종교행사 가서 먹던 걸 추억하면서 좋은 것이지,

계속 좋아하진 않는다.


군대에 누군가가 있을 때, 면회를 가시면서 제발 초코파이 좀 그만 사가 시라.

요즘 군대 면회에서는 피자, 치킨, 심지어 갈비에 냉면을 먹어도 상관없으니!


이런 걸 보면, 당연히 경제학적 재화 중 최고의 재화이자,

외적 보상 중 최고라고 할 수 있는 '돈'도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 내지는

행복체감의 행복이 적용될 것 같아 보인다.


그리고 여기 실제로 이런 것이 궁금하여 연구를 해본 두 명의 연구자가 있다.

사실 보통 연구자가 아니다. 소위 대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바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다니엘 카네만과 그의 동료 앵거스 디튼이다.


*출처: Kahneman  & Deaton (2010; PNAS)


이 분들의 연구방법은 사실 굉장히 단순했다. 일단 사람들의 연소득 수준을 조사한다.

그리고 연소득이 1만 달러, 즉 연봉 1천만 원이 안 되는 사람들부터 해서

연소득 16만 달러, 즉 연봉이 1억 6천 이상 되는 사람들까지 줄을 세운다.


그리고 이들의 행복을 조사한다. 행복은 총 4가지 방식으로 측정하였다.


1) 긍정 정서: 어제 웃거나 미소 지을 일이 있었다. yes 1점, no 0점

2) 부정 정서 없음: 어제 걱정이나 근심이 있었다. yes 1점, no 0점

3) 스트레스 없음: 어제 압박을 받거나 긴장하게 만드는 일이 있었다. yes 1점, no 0점

4) 행복사다리: 최근 1년 간의 내 삶은 나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삶이다.

0점부터 10점까지 중 하나의 점수를 선택하여 점수가 높을수록 동의함


그리고 이 행복 점수와 돈의 상관관계를 분석해보았다.


위에 있는 그림이 이러한 연구의 결과이다.

먼저 1번부터 3번 문항, 즉 긍정 정서, 부정 정서 없음, 스트레스 없음은 심리학자들이 감정적 웰빙이라고 부르는 영역이라는 것을 말해두도록 하겠다. 감정적 웰빙은 비교적 짧은 시기 중에 어떤 감정적 경험을 했는지를 의미한다. 그래서 '어제'라는 시점이 사용된 것이다.


4번 문항 행복사다리는 인지적 웰빙에 해당한다. 이는 비교적 장기간에 걸쳐 내 삶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의미한다. 그래서 '최근 1년'이라는 기간이 사용된 것이다.


이제 감정적 웰빙과 돈의 관계를 살펴볼 시간이다. 준비되었는가?

보시다시피 소득이 증가할수록 긍정 정서가 늘어나고, 부정 정서가 적고, 스트레스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런 경향이 한도 끝도 없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프의 기울기가 차츰차츰 완만해지는가 싶더니, 연봉 4천만 원(4만 달러)이 넘어서는 시점에서는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


그렇다! 감정적 웰빙 측면에서 보면, 행복체감의 법칙은 존재한다.

감정적 웰빙은 돈을 많이 번다고 계속 증가하는 것이 아니다.

연봉 4천만 원 정도까지는 계속 증가하지만, 그 이상으로 벌게 된다고,

웃을 일이 더 많아지고, 걱정이 더 없어지고, 스트레스가 더 없어지진 않는다.


그런데, 정신 차리고 이 그림을 다시 보자.

이런... 행복체감이 적용되지 않는 그래프가 눈에 보인다. 바로 행복 사다리다!

비교적 장기간에 걸쳐 내 삶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리느냐 아니냐의 문제에 있어서는

돈이 증가할수록 계속 좋은 평가가 이어진다. 떨어질 생각을 안 하고, 기울기가 완만해지지 않는다.

맞다. 인지적 웰빙에 있어서는 행복 체감의 법칙이 성립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라. 돈을 많이 번다고, 계속 웃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런데 돈을 많이 벌면, 나 자신의 자아실현을 할 가능성은 계속 올라가고,

삶의 질도 계속 좋아진다.


돈을 많이 번다고, 기분 나쁘게 하는 문제들을 완전히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런데, 돈을 많이 벌면, 나 자신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실현할 가능성은 계속 높아진다.


이것이 바로 감정적 웰빙과 인지적 웰빙의 차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차이가 돈과 감정적 웰빙에서는 행복체감이 나타나지만,

돈과 인지적 웰빙에서는 행복체감이 나타나지 않는 원인이 된다.


행복 체감의 법칙은 있다. 감정적 웰빙에서.


행복 체감의 법칙은 없다. 인지적 웰빙에서.


*참고문헌

Kahneman, D., & Deaton, A. (2010). High income improves evaluation of life but not emotional well-being.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07(38), 16489-16493.


*관련 홈페이지: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

http://happyfinder.co.kr/


*표지 그림 출처

Photo by krakenimages on Unsplash


*행복을 읽어 주는 인지심리학자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xpwfINPyNYaSKJX7Io2B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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