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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Sep 29. 2021

분명히 더 부자가 되었는데, 왜 더 행복하지 않을까?

중요한 건 사회경제적 지위의 실질적 상승이다: 이스털린 역설(1)

"이것만 하면 행복해지겠지?"

"이것만 되면 행복해지겠지?"


살다 보면, 이런 생각을 마주칠 때가 많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생각 중 가장 자주 마주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돈 많이 벌면 행복해지겠지?" 일 것이다.


연구결과를 보면, 이런 생각이 아주 잘못된 것은 아닌 것 같다.


Easterlin (2001)


세계적인 경제학자 이스털린이 2001년에 출판한 연구에 따르면,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행복 수준이 높다.

소득이 높을수록 아주 행복하다(very happy)라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은 증가하지만,

행복하지 않다고(not too happy)라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은 감소한다.

이 연구만 본다면, 역시 돈이 최고인 것 같아 보인다.

돈과 행복이 거의 정비례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다음의 그래프를 살펴보자.


Layard (2006)


2006년에 레이얼드라는 경제학자가 출판한 연구의 주요 결과이다.

X축은 시간의 흐름이 5년 단위로 표시되어 있고,

Y축은 소득의 증가와 아주 행복하다고 보고하는 사람의 수를 함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그래프가 약간 이상하다.

분명 1945년에 비해 개인들의 실질적인 소득(real income)은 매년 증가하였다.

인플레이션 수준(물가상승 수준)을 감안한 실질 소득이 증가했다는 것은 진짜로 소득이 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주 행복하다고 응답하는 사람의 비율은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

50년 전에도 아주 행복한 사람은 25%였고, 지금도 아주 행복한 사람은 25%이다.


뭔가 역설적이다. 이스털린의 2001년 연구에서는 분명히 소득이 증가할수록 행복해졌는데,

레이얼드의 2006년 연구를 보면, 소득 증가와 행복이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니 말이다.


실제로 이 역설적 효과는 경제학자들과 행복심리학자들에게 아주 유명한 것으로

이스털린 역설(Easterlin)이라고 부른다.


이 역설이 나타나는 이유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이스털린의 2001년 연구와

레이얼드의 2006년 연구가 연구방법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쉽게 말해 전자는 횡단 연구이고, 후자는 종단 연구이다.

횡단 연구는 특정 시점에서 그 사회에서 나타나는 주요 특성들을 비교한 것이다.

종단 연구는 특정 기간 동안 그 사회에서 나타나는 주요 특성들의 변화를 추적한 것이다.


이런 전제로 이 두 연구의 결과를 비교하면,

돈과 행복의 관계에 대한 횡단 연구는 돈이 많을수록 행복한 사람이 많음을 발견한 것이고,

돈과 행복의 관계에 대한 종단 연구는 돈을 지금보다 많이 벌게 되었다고 하여

그 사람이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는 건 아님을 발견한 것이다.


그렇다. 횡단적으로는 돈과 행복이 정적 관계가 있는데,

종단적으로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을까?


여기서 바로 사회경제적 지위와 계층 이동성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심리학적으로 본다면, 사회비교와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용어도 사용할 수 있겠다.


무슨 말이냐고?

한 개인의 소득이 과거보다 증가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 사람의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

왜냐면, 같은 기간 동안 다른 사람들의 소득도 비슷하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최근 10년 동안 내 실질소득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같은 기간 동안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소득이 늘어서

나의 사회경제적 지위는 똑같고, 계층이동도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난 여전히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돈을 지금보다 더 많이 벌어도 반드시 행복하지 않은 상태가 된다.


그럼 돈이 많을수록 행복해지는 횡단 연구의 결과는 무엇이냐고?


어떤 사회에서든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 행복해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

돈 자체의 효과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말로 하면, 돈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반영하는 것이지, 그 자체로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실질적인 계층 이동을 통해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진다면 더 행복해질 수 있겠지만,

단순히 소득이 증가했다고 하여 더 행복해지진 않는다.


소득 증가가 사회경제적 지위와 연결될 때만 더 행복해지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가 돈의 효과라고 알고 있는 것의 본질은 돈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진실은 사회계층, 사회경제적 지위에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Easterlin, R. A. (2001). Income and happiness: Towards a unified theory. The Economic Journal, 111(473), 465-484. http://dx.doi.org/10.1111/1468-0297.00646


Layard, R. (2006). Happiness and public policy: A challenge to the profession. The Economic Journal, 116(510), C24-C33.


*관련 홈페이지: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

http://happyfinder.co.kr/


*표지 그림 출처

Photo by Vinicius Wiesehofer on Unsplash


*행복을 읽어 주는 인지심리학자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xpwfINPyNYaSKJX7Io2B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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