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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Jul 06. 2022

전공 따지지 말고, 기회를 주는 곳으로 가라

목표에 이르는 과정에 정답은 없다

대학 홈페이지에 가보면,

전공별로 어떤 진로를 선택할 수 있는지가 기술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전공의 명칭 자체가 어떤 직업을 상징하는 경우도 많다.

시각디자인학과, 시각디자인을 해야 할 것만 같다.

건축학과, 건축을 꼭 해야 할 것만 같다.

애니메이션학과, 애니메이션을 꼭 만들어야 할 것만 같다.


흐음...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인생이 이런 식으로 풀리던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의대가 가면, 다 의사가 되는 건가?

의대생들에게 물어보라.

의대에 가는 것과 의사가 되는 것이 정확하게 같다고 볼 수 있느냐고.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디자인학과에 들어가는 것과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똑같은가?

그럼 역사학과에 들어가면, 할 일이 역사 선생님밖에 없는 것인가?

대학에서 인문학을 배우면, 취업이 안 된다고?

왜? 인문학과 취업 분야를 마땅히 연결시킬 게 없다고?

이런 게 바로 고정관념이다.


인문학을 배웠으면, 모두가 작가로 데뷔해야 하고,

시인이 되어야 하는가? 그런데 그렇게 될 수 있는 확률이 낮으니까, 인문학은 하지 말라고?

무슨 이상한 소리들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우리 좀 솔직해지자.

진짜로 경영을 하기 위해서 혹은 회계사가 되기 위해서 경영학과에 갔는가?

대학 원서를 그런 식으로 제출했느냐는 말이다.

그냥 어쩌다 고등학교 선생님이 원서 써준다고 하니까 쓰는 경우도 있고,

내신과 수능 성적 맞춰 보니까,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쓰는 경우도 있으며,

그나마 가장 나은 것 같으니까, 무난하니까 쓰는 경우도 있다.


쉽게 말해 대학 전공은 대부분 어쩌다가 정하게 된다는 소리다.

뭔가 선택을 해야겠고, 마감 기한은 다가오고,

의사결정은 해야겠고, 그래서 진짜 깊이 있는 고민을 통해 선택했다기 보디 어쩌다 정한다.


물론 이에 반발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진짜로 깊게 고민하고, 소신 지원했다는 것이다.

좋다. 인정한다.

그런데, 그래서 그 전공을 살린 일자리를 구하거나,

사업을 하거나, 관련된 업종에서 종사할 수 있을 것 같던가?


미안한데, 그렇지 못할 확률이 무지막지하게 높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좋다. 설명해주지.


Photo by Sam Balye on Unsplash


소신 지원하여 전공을 정한 분이 4학년이 되어,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다고 가정하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몇 개 정도 써야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까?

10개? 20개? 아. 그래 인심 썼다. 한 30개?


이 사람들이... 세상 물정 모르네.

평균적으로 150개에서 200개 정도를 쓰면, 1~2곳에서 연락을 받게 된다.

그것도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상당히 정성스럽게 썼을 때 이야기다.

200개 정도 되는 회사의 취업 공고를 보고,

직무를 분석한 후,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200개를 모두 다르게 썼을 때,

두 곳 정도에서 면접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자. 또 이야기하겠다.

이렇게 150~200개 정도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쓰는 동안

자기 전공을 살릴 수 있을까?

미안한데, 그런 식으로 고르고 있다간 기회를 얻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전공 관계없이, 비슷하다 싶으면, 어떻게 해서든 스토리텔링 하고,

경력을 끼워 맞춰서라도 지원해야 한다.

전공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이렇게 해서 두 곳 정도에서 연락이 오는 것이다.

대부분 정말 의외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연락이 온다.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라. 전공 분야에서는 연락이 안 올 것이다.)


그리고 그 두 곳의 면접에서 붙어서 최종 합격할 확률은?

아마 둘 중 한 곳 정도만 최종 합격 통지를 받을 것이다.


자. 그런데 뭐? 전공을 살려?

이쯤 되면, 대학의 전공을 어쩌다 선택하게 되었듯이

직업적 정체성, 직업적 목표도 어쩌다 생긴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붙는 곳에 가는 것이고,

나에게 기회를 주는 곳에 가는 것이다.


기회가 있는 곳, 기회를 주는 곳에 가서 시작해야 한다.

길을 만들면서 간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그렇다.

없는 길을 만들어가면서 가는 것이 사회생활이고,

내 정체성을 발전시켜가는 과정이다.


그렇게 전혀 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한 일을 시작하게 된다.

그럼, 그것을 열심히 배우라. 열심히 해보라.

그렇게 2년, 3년, 이상 하다 보면 뭔가 이상함을 느낄 것이다.

분명히 전공을 살려서 일한 것은 아닌데,

사실 전공에서 배운 것들을 응용하고 있는 것도 생긴다.

세상에 태어나서 배운 것들이 무슨 일을 하던 다 쓸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일을 잘하게 됨에 따라 이제 이 일이 내 적성인 것 같이 느껴진다.

그것이 바로 정체성이 발전한 순간이다.


그렇게 10년쯤 하다 보면, 이 일을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것이 바로 직업적 정체성이다.

발견이 아닌, 발전인 것이다.


주어진 것 안에서

나의 의사결정과 선택 안에서 최선을 다하라.

나름 계획을 세우는 것도 좋다.

그러나 우연의 힘도 있다는 걸 잊지 마라.


그리고 계획 안에 있었던 없었던

기회가 주어지는 곳으로 내 발걸음을 옮겨라.


고민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기회가 열리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 또 다른 세상이 열리고,

또 다른 길도 열릴 것이다.


*참고문헌

Grant, A. (2021). Think Again: The Power of Knowing what You Don't Know. Viking.


Sonenshein, S., Dutton, J. E., Grant, A. M., Spreitzer, G. M., & Sutcliffe, K. M. (2013). Growing at work: Employees' interpretations of progressive self-change in organizations. Organization Science24(2), 552-570.


*표지 그림 출처

Photo by Magnet.me on Unsplash


*인지심리학자 이국희 교수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xpwfINPyNYaSKJX7Io2B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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