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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Jun 29. 2022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하고 싶니?

명사형 목표가 아닌 동사형 목표: 목표는 직업이 아니다

명절에 친척들이 모이면,

40-50대 고모, 이모, 삼촌들이

10대 청소년들에게 꼭 물어보는 게 있다.


"너 나중에 뭐할 거야? 넌 뭐하고 싶어?"


이 질문을 받은

대부분의 10대들은 뭐하고 싶은지가 명확하지 않기에

그냥 떠오르는 것을 대충 이야기한다.

아니면, 솔직하게 딱히 하고 싶은 게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럼 친척들의 표정이 변한다.

잡아먹을 것 같은 표정들이다.

어떻게 그런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냐는 듯

혹은 어떻게 하고 싶은 게 없을 수 있냐는 듯 계속 묻는다.


-그래도 뭔가 좋아하는 게 있을 것 아냐?

-너 큰일이다. 구체적으로 생각해봐야 해.

-지금부터 구체적으로 생각해두지 않으면, 나중에 큰 일 난다.

-대학에서 공부하고 싶은 전공이라도 명확히 정해야지.


이런 질문을 받은 10대는 집단의 압력에 못 이겨

뭔가 직업명을 하나 이야기하게 된다.

그럼 또 친척들은 그 직업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냐고 말한다.


흐음... 내가 묻고 싶다.

그렇게 묻는 그대들은 10대 때 직업적 목표가 명확했는가?

그 직업을 가지기 위해 뭘 공부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았는가?

그리고 더 정확하게는 10대 때 정한 직업대로 지금 살고 있는가?

10대 때 정했던 그 직업 혹은 그 대학 전공대로 살고 있는가?


내가 많이 봐왔다. 그리고 직접 들었다.

그리고 나 조차도 그렇다.

10대 때 생각했던 직업대로 인생이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10대 때 생각했던 대학 전공대로 인생이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지금 어떻게 지금 위치에 있게 되었느냐고?

어쩌다 하게 된 걸 열심히 하다 보니 이 자리에 있게 되었다.

어쩌다 생기는 기회들과 어쩌다 생기는 길들을 열심히 걸어갔더니 이 자리까지 왔다.

특별한 직업적 목표나 뭘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온 게 아니다.

그냥 주어진 환경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열심히 하다 보니,

보이는 길들이 있었고, 때로는 운도 따랐고,

때로는 노력의 빛을 발하면서 이 자리에 왔다.


그런데 뭐? 직업을 명확히 정하라고?

직업적 목표가 분명하지 않은 사람은 목표가 없는 거라고?

직업적 목표를 명확히 정하지 않으면 인생 힘들어진다고?


Photo by Fahrul Azmi on Unsplash


미안하지만, 심리학자들은 정반대의 현상을 관찰하고 있다.

10대 때 직업적 정체성을 명확히 했던 사람들일수록 30대 후반과 40대 초반에 방황을 더 크게 한다.

10대 때 하고 싶은 것이 명확했던 사람들일수록

30대 후반과 40대 초반에 우울해지고, 슬럼프가 크게 온다.

그리고 이것을 극복하기는 매우 힘들다.

10대 때 하고 싶은 것을 명확하게 정했던 사람들일수록 사회경제적 지위가 평균보다 낮아질 확률이 높다.

쉽게 말해, 10대 때 하고 싶은 직업을 명확히 정하면, 행복해지기는 커녕 불행해진다!


왜냐고? 이렇게 10대 때, 직업적 정체성이 명확하여 그것만 추구하다 보면,

인생의 다양한 기회들을 놓치고, 다양한 가능성들을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10대 때 직업적 정체성을 정해놓고, 그것만 추구하다 보면,

유연성이 떨어져서, 사회의 변화에 적응하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10대 때 직업적 정체성을 정해놓고, 그것만 추구하다 보면,

그것이 좌절되었을 때, 더 큰 실패감과 패배감을 맛보게 되고,

관점을 전환하여 다른 기회를 모색하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10대 때 직업적 정체성을 명확하게 정할수록

기회가 제한되고, 사회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이 떨어지면서

불행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니까.

저기요! 어른님들! 10대들에게 직업 정하라고 강요하지 마세요! 쫌!


어른이 할 일은 10대들에게 직업을 정하라고 압박하는 것이 아니다.

10대들이 유연하게 사고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10대들이 다양한 기회를 만들어가고, 창출해가는 방법을 알려주어야 한다.

어쩌다 하게 된 것들을 열심히 하는 자세를 가르쳐주어야 한다.


목표를 정하게 하고 싶다면, 어떤 직업을 가지라고,

즉 정확한 명사형 목표를 가지라고 스트레스를 주기보다,

어떤 것을 하면서 공동체에 도움이 되고 싶은지,

무엇을 하면서 공동체에 보탬이 되고 싶은지를 물어보라.


직업을 물어보면서, 직업을 대라고 압박하면서

결국 안정적이고, 돈 잘 버는 직업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지 말라.

인생은 그대로 되지 않기에, 좌절을 맛볼 뿐이다.


그냥 사회에 어떻게 보탬이 되고 싶은지를 질문하라.

공동체에 어떻게 보탬이 되고 싶은지 질문하라.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질문하라.

이런 걸 동사형 목표라고 부른다.


'의사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하게 하지 말라!


'사람들의 건강을 지키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라는

동사형 목표를 가지게 하라.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하게 하지 말라!

'아이들에게 내가 아는 것을 잘 가르쳐 주면서 도움이 되고 싶어요.'라는

동사형 목표를 가지게 하라.


그리고 동사형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음을 알려주라.

가능성은 여러 가지고, 길을 여러 가지며, 때로는 돌아갈 수도 있음을 알려주라.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지만,

로마로 가는 길은 결코 한 가지가 아니다!


의사는 한 가지 직업일 뿐, 가능성이 아니다.

이런 단편적인 직업적 정체성은 무너지기 쉽고,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러나 사람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사람은 꼭 의사가 아니어도 된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는 사람도 사람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사람이고,

누군가를 위해 비누나, 샤워 용품을 개발하는 사람도 사람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사람이고,

깨끗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청소를 하는 분들도 사람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사람이다.


동사형 목표는 이런 다양한 가능성을 보게 해 주면서 다양한 가능성들을 모색할 수 있게 도와준다.


10대의 목표가 직업이 되는 순간, 인생의 허리에 해당하는 30-40대에 더 큰 혼란을 겪는다는 것을 명심하라.


그리고 10대들에게 이렇게 질문하라.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하고 싶니?


*참고문헌

Leijen, Ä., & Kullasepp, K. (2013). All roads lead to Rome: Developmental trajectories of student teachers' professional and personal identity development. Journal of Constructivist Psychology, 26(2), 104-114.


McLean, K. C., & Pasupathi, M. (2012). Processes of identity development: Where I am and how I got there. Identity, 12(1), 8-28.


*표지 그림 출처

Photo by Krzysztof Grech on Unsplash


*인지심리학자 이국희 교수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xpwfINPyNYaSKJX7Io2B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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