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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Jul 27. 2022

지식과 기술을 내 것으로

인지심리학적 음미하기: 정교화

공교육은 학생들에게 무엇을 남길까?


더 정확하게는 공교육을 받은 학생들에게 공부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어떤 것이 생각날까?


지나친 단순화라고 비난받을지 모르지만,

솔직히 이 두 가지 단어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시험'과 '정답 찍기'


학생들은 공부라 하면, 시험을 생각하고,

시험에서 정답을 찍는 법을 배우는 것을 공부라 생각한다.


학교에서 보다 학원에서 배우는 것이 더 많다며,

학교 무용론을 말하는 학부모와 학생들을 만나면, 이런 생각이 더 강함을 알 수 있다.

학교에서 시험에서 정답 찍는 법을 제대로 가르쳐줘야 할 텐데,

그렇지 않다며 비난한다.

도대체 학교가 얼마나 더 정답 찍기를 잘 가르쳐야 하는 걸까?


사실 공부는 어떤 지식과 기술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하는 것이고,

어떤 지식과 기술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든다는 것은 정답 찍기와는 무관하다.

지식은 변화하며, 기술도 진보한다.

지속적인 업데이트와 융합, 통합이 이루어져야 하는 살아 있는 생명체 같은 것이 공부다.

그런데 12년 간의 공교육이 남기는 것이 고작 정답 찍기라니...


정답 찍기 잘하는 사람이 대학 가고,

정답 찍기 잘하는 사람이 공무원이 된다.

정답 찍기 잘하는 사람이 회사에 간다.


그리고 그들은 알게 된다. 그들이 찍은 정답과 그들이 해결해야 하는 실제 문제들이

너무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그들이 직면하게 된 인생의 현실과 그들이 풀어온 문제의 정답이 너무 다르다는 걸 말이다.


시를 읽고 감상하고, 음미하고, 그때그때 재해석해도 되는 것인데,

왜 그 시를 저자의 입장에 맞게 해석해야 하고 정답을 찍어야 하는 건가?


소설을 읽고 감상하고, 내 안에서 천천히 소화하면 되는 것인데,

왜 그 소설에서 정답을 골라야 하는 건가?


수학 교육은 이런 시험과 정답 찍기의 폐단이 가장 두드러진 과목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학생들은 구구단, 그도 모자라서 십구단을 외운다.


이 세상에 있는 다양한 패턴들과 규칙들에 대해

생각하고, 추론하고, 천천히 음미하면서 아름다운 수학적 사고를 키워가도 모자란 아이들에게

좌절을 안기고, 실망을 준다.


수학은 재미없으며, 재능 있는 몇몇만 따라올 테면, 따라와 보라는 식으로 교육한다.

같은 풀이 방식을 계속 써야 하는 연습문제들을 숙제로 내주고,

그걸 다음 날 검사해서, 숙제를 안 해온 친구들은 처벌을 하거나, 창피를 준다.


압권은 이거다. 수학을 시간을 제한을 두고, 시험을 본다.

하... 하하... 수학이 시간을 제한을 두고, 시험 본다고 될 일인가?

깊게 생각하고, 자기 스스로 추론하고,

어떤 것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데, 시간제한이라고?

그러니까. 결국 학생들은 정답 찍는 법을 배우게 되고, 풀이과정을 외우게 되고,

패턴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수학 문제를 풀지 못하게 되며,

그렇게 수포자(수학포기자)들이 만들어진다.


이런 방식을 보면,

학생들로 하여금 수학을 포기하게 만들겠다고 작정한 사람들이 만든 교육과정 같아 보인다.


공부는 지식과 기술을 천천히 음미하는 것이다.

지식과 기술을 매일매일 느리게 천천히 음미하면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공부란 말이다.

그런데 우리 교육에서는 이런 음미하기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시간에 쫓기게 만들고, 빨리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정답을 찍게 만든다.

이걸 잘하는 사람이 공부 잘하는 사람이란다.

이런 걸 잘하는 사람들이 나라의 살림을 책임지는 공무원이 되고 말이다.

하아...


Photo by Mike Von on Unsplash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그 사람이 만든 문제의 정답을 찍으면,

지식과 기술은 절대로 내 것이 될 수 없다.


그 틀을 만든 사람은 그 지식이 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 틀 안에 있는 사람은 그 지식이 없는 것이다.


지식과 기술은 누구도 만들어 보지 않은 틀을 만들 때 형성되고,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갈  때 만들어진다.


동영상 강의를 들으면서 정답 찍기를 배우는 사람은 지식과 기술을 가지지 못한다.


동영상 강의를 만들면서 문제와 모범답안을 만드는 사람이

그 과정에서 다양한 지식과 기술을 음미하게 되고,

부족한 점을 깨닫고 보충하게 되며, 결국 지식과 기술을 내 것으로 만든다.


남이 만든 웹툰을 보기만 하는 사람은 지식과 기술을 가지지 못한다.


웹툰을 만들면서 어떻게 스토리텔링을 할지, 표현은 어떻게 할지,

등장인물과 배경은 어떻게 그릴지 고민하는 사람이

그 과정에서 다양한 지식과 기술을 음미하게 되고,

부족한 점을 깨닫고 보충하게 되며, 결국 지식과 기술을 내 것으로 만든다.


남이 만든 글을 보기만 하는 사람은 지식과 기술을 가질 수 없다.


스스로 글을 쓰면서 표현 방식, 단어 선정, 문장 전개 등을 고민하는 사람이

그 과정에서 다양한 지식과 기술을 음미하게 되고,

부족한 점을 깨닫고 보충하게 되며, 결국 지식과 기술을 내 것으로 만든다.


지식과 기술은

그 지식과 기술을 사용하려고 할 때 만들어지고,

그 과정에서 지식과 기술을 자연스럽게 음미하면서 정교화된다.


이것이 바로 인지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정교화이자,

지식과 기술을 음미하여 내 것으로 만드는 최고의 방법이다.


지식과 기술을 음미하여 내 삶의 자본으로 만든다는 의미를 담아

지식의 자본화(capitalization)라고도 부른다.


학교 다니면서 제대로 된 공부를 하지 못했다면, 이제 다시 시작해보자.

지식과 기술을 사용하려고 하면서, 써먹어 보면서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천천히 음미해보자.


그때 지식은 당신의 것이 된다.


*참고문헌

Pressley, M. (1982). Elaboration and memory development. Child Development, 53(2), 296–309.


Eysenck, M. W., & Eysenck, M. C. (1979). Processing depth, elaboration of encoding, memory stores, and expended processing capacity.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Human Learning and Memory, 5(5), 472–484.


Raposo, A., Han, S., & Dobbins, I. G. (2009). Ventrolateral prefrontal cortex and self-initiated semantic elaboration during memory retrieval. Neuropsychologia47(11), 2261-2271.


*표지 그림 출처

Photo by Jordan Brierley on Unsplash


*인지심리학자 이국희 교수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xpwfINPyNYaSKJX7Io2B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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