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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Aug 03. 2022

음미하지 않는 수학은 수학이 아니다

한국에 수포자는 없다! 왜? 학교에서 진짜 수학을 배운 적이 없으니까!

수포자.

'수학을 포기한 자'의 줄임말이다.


내가 재직 중인 대학에도 수포자가 많다.

심지어 수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컴퓨터 사이언스, 건축, 인공지능, 기계공학, 전자공학 전공자들 중에서도 수포자가 있다.


나는 너무 궁금해서 이들에게 물어본 적이 많다.

'왜 수학을 포기하게 되었느냐'고 말이다.


이구동성으로 나오는 말들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수학적 지능은 타고나야 하는데,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이런 대답을 들을 때면, 나는 슬슬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애써 억누르며, 이렇게 다시 질문한다.

'어떤 경험들을 통해 자신에게는 수학적 지능이 없다고 결론 내렸느냐'고 말이다.


그럼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계산이 느려요. 문제를 시간 내에 풀지 못해요. 그래서 포기했어요.'

'문제를 보고 파악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요. 그래서 포기했어요.'

'풀이과정을 외워야 하는 게 너무 많아요. 그래서 포기했어요.'

'재미가 없어요. 그래서 포기했어요.'


여러분은 어떠신가? 혹시 비슷한 이유에서 수학을 포기하셨는가?

아니면, 여러분 주변에 이런 이유로 수학을 포기한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시길 바란다.


지금까지 언급된 수포자들의 답변을 하나씩 살펴보면,

한국 교육의 문제점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1) 한국 교육은 제한된 시간 안에 주어진 문제의 정답을 맞히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특히 수학이 그렇다. 보통 1시간 내에 주어진 문제의 정답을 찾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계산이 느린 사람들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계산 속도가 마치 수학 실력인 것처럼 둔갑한다.

그런데 수학이 계산 속도 경쟁일까? 계산 속도가 빠른 것이 수학을 잘하는 것일까?


이건 수학이 무엇이냐는 철학적인 질문을 하게 만든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수학은 계산이 아니다.

수학은 이 세상과 자연과 우주만물에 깃들어 있는 규칙과 패턴을 발견하고,

그런 규칙들을 자기 자신만의 언어와 기호 등으로 표현하고 설명해내는 학문이다.

물론 수학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기호들이 있지만, 반드시 그렇게 표현할 필요는 없다.

이 세상의 법칙, 자연의 규칙, 우주의 패턴을 그림으로, 말로, 기호로, 상징물로, 몸짓으로

표현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이해시킬 수 있다면, 그 모든 것이 수학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우리 아이들이 공교육을 수행하는

12년 간 배우는 것은 수학이 아니다. 그냥 계산일 뿐이다.

공교육 12년 간 제한 시간 안에 문제를 잘 푸는 사람이 된다고 하여

이 세상과 자연과 우주의 법칙, 규칙, 패턴을 이해한 게 아니다.

오히려 학교에서 내주는 수학 문제를 못 풀어도 세상과 자연과 우주의 규칙 및 패턴을

발견하려고 하고, 그것을 자신만의 언어와 그림으로 표현하려고 한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이 오히려 수학적 사고를 한 것이고, 수학을 잘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의 공교육은 이렇게 진짜 수학을 잘하는 사람을 오히려 무시하고, 이상한 사람 취급한다.

그러니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수 없는 것이다.



2) 한국 수학 교육은 세상과 자연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지 않고, 공식 외우기로 시작한다.

아이들은 그것이 어디에 써먹는지도 모르면서 수학적 공식을 외운다.

그것을 외웠는지 아닌지 시험을 보고, 그것을 평가에 반영한다.

구구단을 외우고, 그도 모자라 십구단을 외운다.

그것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 왜 외워야 하는지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그 공식을 적용하여 문제를 푸는 것을 무한 반복한다.

풀고, 또 풀고, 숙제를 또 내주고, 사실 똑같은 계산 방식을 적용하는 것이기에

한 번만 이해했으면 굳이 더 확인할 필요가 없는데, 계속 풀어내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수학이 너무 지루하고, 재미없고, 왜 배워야 하는지 모르는 그런 과목이 된다.

어디에 써먹을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정체불명의 과목이 수학인 것이다.


그런데 수학이 이런 걸까?

수학은 이 세상을 먼저 보여줘야 수학이다.

진짜 수학이라면, 자연의 현상을 먼저 보여줘야 하고,

이 세상에서 있는 고대의 건축물들을 먼저 보여줘야 한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외우게 하지 말고,

피타고라스 정리를 어디에, 어떻게, 왜 적용하는지를 알려준 후,

피타고라스 정리를 외우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세상에 있는 것들과 자연에 어떤 수학적 법칙이 들어 있는지

이런 법칙들을 쉽게 배우기 위해 지금 외우는 공식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려줘야 한다.

이렇게 해야 진짜 수학이고, 수학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인식시킬 수 있다.



3) 한국의 수학 교육은 문제 자체를 고민하게 하지 않고, 남이 내준 문제의 정답을 찾게 한다.

그런데 진짜 수학 교육이 되려면, 문제를 만들게 하고, 문제를 찾게 하고,

누구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을 문제라고 이야기하게 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또한 해당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다른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구체화시키고,

발전시키는 사고 과정을 가지게 해야 진짜 수학 교육이다.

수학은 항상 이런 질문이 던져져야 한다.


-자연에 어떤 패턴과 규칙이 있지?

-이것을 어떻게 설명하고, 기호나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런 기호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왜 말이 될까?


그런데 한국 수학 교육에서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하는가? 아니다!

수학 숙제를 내준다면, 이 세상의 법칙과 자연의 패턴을 찾아서 자신의 언어나 그림으로

설명하게 하는 그런 과제를 내주어야 할 것이다.

연습문제나 풀게 하지 말고 말이다.


남이 내준 문제의 정답을 찍어 맞추는 것은 수학적 사고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사실상 이런 교육은 그냥 아무것도 아니다. 시간 낭비일 뿐이다.

수학적 사고는 실수하고, 생각하고, 그 생각을 발전시키는 기회를 얻을 때 자라나지

제한 시간에 문제 풀게 하고, 같은 패턴의 문제를 숙제로 잔뜩 내줄 때 자라지 않는다.



4) 한국의 수학 교육은 타고난 몇몇만 잘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일 심어준다.

한국 청소년들 중에는 이렇게 지루하고,

재미없고, 왜 배우는지도 모르는 수학 교육을 묵묵히 따라가는 학생들이 존재한다.

선생님들은 그들을 예뻐하고, 좋아하고, 타고난 수학 영재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렇게 묵묵히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은

자신에게 수학적 머리가 없다는 신호를 계속 접하게 되면서

결국 수학을 포기해버리고 만다.

시스템이 문제일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 채 자신을 나쁘게 규정하고,

세상은 타고난 자들이 이기는 곳이라는 잘못된 마음가짐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그럼 그 영재들은 지금 다 어디서 뭐 하고 있는가?

왜 세계적인 석학이 되어 우리에게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가?

그들은 그냥 선생님 말씀 잘 듣는 순종적인 아이들이었을 뿐이지,

수학을 잘하는 아이들이 아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정말 아쉽다.


수학적 사고를 진정으로 가르치는 나라들의 교육을 보면,

수학 수업 시간에 두 문제 정도를 깊게 생각하면서 푼다.

토론하고, 이야기하고, 발표하고, 실수하고, 실수를 기뻐하고, 수정한다.

다른 아이들의 아이디어를 살펴보면서 자신의 사고도 발전시킨다.


수학 교육을 제대로 하는 나라들의 수학 교육에서는

21 - 6을 푸는 방법을 무한하게 만들어 내고,

이것이 20 - 5와 동일하다는 것을 스스로 발견해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준다.

이 과정에서 누구나 수학을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고, 도전 정신을 가지게 되며,

수학을 계속 공부하려는 동기도 부여된다.

그런데 한국 학생들은 그냥 계산만 해서 답을 찾아낸다.

정답을 맞히지 못할까봐 늘 조마조마하며,

수학 수업과 수학 시험은 늘 긴장하여 스트레스 받는 날이 된다.


수학 교육을 제대로 하는 나라들의 수학 교육에서는

18 × 5를 풀 수 있는 방법을 무궁무진하게 생각해내고,

그림으로도 그린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풀이 방법들이 왜 말이 되는지 설명하고, 논쟁한다.

이 세상에서 18 × 5를 적용하는 다양한 상황들을 배우고, 적용하고, 상상한다.

이 과정에서 누구나 수학을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고, 도전 정신을 가지게 되며,

수학을 계속 공부하려는 동기도 부여된다.



그런데 한국 학생들은 이 문제를 풀 때,

구구단을 외우고, 세로형으로 풀이과정을 쓰면서 한다. 이게 끝이다.

곱셈이 왜 필요한지, 이런 공식 말고 어떤 방법이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답을 맞추지 못하면, 놀림감이 되거나, 교사로부터 무안을 당한다.

수학 시간이 수학적 사고를 키우는 시간이 아니라, 수학적 사고를 죽이는 시간이 된다.


수학은 시간제한 없이,

천천히 세상을 음미하고, 자연을 음미하고,

숫자를 음미하고, 기호와 그림을 음미해야 하는 과목인데

우리 청소년들은 이런 기회를 박탈당한 체

수학적 사고를 기를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린다.


학교에서 제대로 된 교육이 회복된다면, 그리고 평가 제도가 개선된다면,

아이들은 굳이 사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다.

그런데 학교 교육이 계속 정답 맞히기를 요구한다면,

학생들은 비효율적인 공부를 할 수밖에 없고,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공교육을 받은 한국인 중에 수포자는 없다.

왜냐고?

공교육에서 제대로 된 수학을 배워본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참고문헌

Boaler, J. (2015). Mathematical mindsets: Unleashing students' potential through creative math, inspiring messages and innovative teaching. John Wiley & Sons.


Boaler, J. (2019). Limitless mind: Learn, lead, and live without barriers. HarperCollins.


*표지 그림 출처

Photo by NeONBRAND on Unsplash


*인지심리학자 이국희 교수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xpwfINPyNYaSKJX7Io2B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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