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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Oct 05. 2022

할만하다고 생각되도록 만들라

나눠서 작게 시작하기, 준비해두기, 마감에 몰려서 하지 않기

어떤 일을 시작하지 못할 때,

해야 하는 건 알지만, 하지 않고 있을 때,

마감 기한은 다가오는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

해야 할 일이 잔뜩인데, 자꾸 딴짓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바라볼 때,

사람들은 자신의 인내심을 탓한다.


난 왜 이렇게 인내심이 부족할까.

나는 왜 절제력을 타고나지 못했을까.

나는 어째서 자제력이 부족하게 태어났을까.


때로는 이것 자체가 그럴듯한 핑계가 되기도 한다.

내가 시작하지 못한 건, 내 인내심이 부족하기 때문이야.

내가 자꾸 딴짓을 하는 건, 자제력을 타고나지 못해서야.


여러분은 어떠신지 궁금하다.

뭔가 일을 시작하지 못하고, 진행하지 못하고, 딴짓을 하는 것이

내 인내심과 자제력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이런 문제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해온 심리학에 물어보자.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아쉽지만, 여러분의 기대와는 다를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심리학적 대답은 '자제력의 문제가 아니올시다!'이다.


여러분이 일을 시작하지 못하고, 진행하지 못하는 건 자제력 문제가 아니다.

이런 심리학의 답변에 저항하고 싶어 지고, 심기가 불편해지는 분들이 많은 수 있다.

그렇다고, 과학자인 내가 거짓말을 할 순 없지 않은가.


지금까지의 심리학은

거의 모든 사람들(99.999%)의 인내심과 자제력은 다 거기서 거기라는 결과를 얻어 왔다.

대부분의 인간은 인내심과 자제력이 떨어진다.


무슨 소리냐고 외치고, 싶은가?

내 주변만 해도 인내심이 굉장한 사람들이 어마어마한 과업들을 척척 해내고 있는데,

심리학적 연구결과가 과연 믿을만한 결과이냐고 따지고 싶은가?


얘기를 끝까지 들어보시라.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사람, 인내심과 자제력이 엄청나 보이는 사람은

누가 내린 평가인가? 그 사람 본인이 그렇게 평가한 것인가?

뇌과학적으로 증명한 것인가?

아니면, 그냥 당신이 볼 때, 주변 사람들이 볼 때, 인내심과 절제력이 높아 보인 것인가?


가장 마지막 문장이지 않은가?

그 사람의 인내심과 절제력을 과학적으로 측정한 적도 없고, 뇌과학적으로 증명한 적도 없는데,

그냥 내가 볼 때, 주변에서 얘기할 때, 인내심과 절제력이 어마어마하다고 평가한 것이 불과한 것 아닌가?

100이면 100. 그럴 것이다.


이 부분에 아주 중요한 진실이 숨어 있다.

우리 눈에 인내심과 절제력이 뛰어나 보이는 것과

그 사람의 실제 인내심과 절제력은 다르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인식한 어떤 사람의 인내심 혹은 절제력은 그 사람의 진짜 인내심이 아니다.


그럼 그 사람들은 뭘까? 인내심이 뛰어나 보이는 사람들의 정체는 뭐냔 말이다.

역설적이게도 일 잘하는 그 사람들은 인내심을 발휘하지 않는다.

일을 척척해내는 사람들은 절제력을 쓰지 않는다. 자제력을 쓰지 않는다.

쓰더라도 아주 조금만 쓴다.

오히려 일을 많이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절제력을 많이 쓴다.

모든 생활을 참아야 할 것들의 연속으로 만든다.


무슨 말이냐고?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인내심과 절제력을 쓰지 않도록 자신의 일을 새롭게 정의하고, 조정한다.

인내심과 절제력을 발휘하지 않아도 되도록 일을 조정하고, 새롭게 조직한다.

그래서 쉽게 시작할 수 있고, 그래서 쉽게 진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인내심이 특히 뛰어나서 일을 척척하는 게 아니다.

그 사람들은 인내심을 어떻게 해서든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일을 척척 잘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보겠다.

많은 일을 척척 해내는 사람들은 일단 일을 잘게 쪼갠다.

진짜 해야 할 일이 100개라면, 100개를 전부 바라보지 않고,

10개씩 혹은 더 작게 5개씩 나누고, 5개를 시도한다.

100개를 다하려고 할 때는 그렇게 부담스럽고,

인내심과 절제력을 발휘해야 하는 일이었는데,

5개씩 20조각으로 나누고 나서,

한 조각만 바라보니, 뭔가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고,

시작해볼 만해진다.

인내하지 않아도 되고, 자제하지 않아도 된다.

5개쯤이야.

그리고 5개를 다 한 후에는 또 다음 한 조각 5개를 바라본다.

한 조각을 하는 동안 일에 탄력을 받게 되고,

때론 몰입도 하면서 다음 조각을 하기는 점점 더 쉬워진다.

일 잘하는 사람은 이런 식으로 20번 반복한다.

100개를 바라보면, 부담이 크고, 난이도가 높아 보여

인내심과 절제력을 쥐어 짜내야 했지만,

5개씩 20번을 하니, 난이도도 낮아지고, 할만하고, 좋다.


할 것이 10개라면, 10개를 다 바라보지 않고,

일단 1개만 하려고 해 보라.

1개 정도는 할 만하다고 여겨지기에 툭 시작하는데 부담이 없다.

그렇게 1개를 하다 보면 탄력을 받게 되고,

1개만 하려던 것이 2-3개로 금방 넘어간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일을 잘 못하는 사람들은 항상 10개를 다 바라본다.

그리고 이렇게 좌절한다. 언제 다하냐...


2페이지에 달하는 글을 써야 할 때,

성공하는 사람들은 일단 한 문장을 쓰려고 하고,

한 문단을 완성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재료들이 머릿속에서 모아지고,

두 문단, 세 문단 쓰게 되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일 못하는 사람들은 2페이지 공백을 모두 바라보면,

한 숨을 쉰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한다. 언제 다하냐.


Photo by STIL on Unsplash


두 번째, 많은 일을 척척 해내는 사람들은 다음날 할 것을 전날 미리 좀 해둔다.

전날 계획을 세웠던 일도 다음날 막상 하려고 하면,

챙길 것이 많고, 잡념도 들고 시작하기 힘들어진다.

인내심과 절제력을 써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지혜롭게 다음날 할 일 중 쉽게 할 수 있는 것들 몇 개를

전날 미리 해두면, 다음날 그냥 툭 시작하기가 좋아진다.

준비물도 챙겨두고, 목차도 잡아두고, 자료도 좀 찾아두고,

표 형식으로 자료 정리를 해야 하면 표 형태를 미리 만들어 두고,

어떤 식으로 글을 쓸지도 대충 생각해서 메모해둔다.

이렇게 해 두면, 내일 진짜로 그 일을 시작할 때, 장벽이 낮아진다.

뭔가 조금만 더 하면 되겠다는 느낌도 들고 말이다.

인내심과 절제력을 발휘할 필요가 없다. 이게 일 잘하는 비결이다.


세 번째, 많은 일을 척척 해내는 사람들은

마감 시간에 몰려서 하지 않는다.

핀치에 몰려서 일을 하면, 많은 분량을 몰아서 하게 되고, 미리 해둔 것도 없고,

가볍게 시작하기도 어려워진다.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공부와 일이 재미 없어진다.

이런 습관이 들면, 장기적으로 공부와 일을 포기하게 될 수도 있다.


힘을 나눠서 썼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몰아서 했기에 후유증이 길게 간다.


마감시간에 몰려서야 집중이 잘 된다는 사람은

아쉽지만, 실패하는 사람의 특징을 가졌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마감시간이 있더라도

그 마감시간이 닥치기 전에 미리미리 여유 있게 해 준다.


미리 해두기에 수정할 여유도 생기고,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여유도 생긴다.

인내심과 절제력을 발휘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인내심을 발휘하지 말라.

절제력? 자제력 발휘하지 말라.


인내심과 절제력을 써야 하는 상황이 왔다면,

그건 벌써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신호다.


일을 나눠서 작게 시작하고, 일할 준비를 해두고, 마감에 쫓기지 않는 습관을 들인다면,

여러분도 인내심과 절제력을 발휘하지 않고,

많은 일을 척척해내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가장 인내심이 강해 보이는 사람들이

가장 인내심을 발휘할 일이 없고


가장 인내심이 약해 보이는 사람들이

가장 인내심을 발휘할 일이 많다는 역설을 기억하라.


*참고문헌

Tangney, J. P., Baumeister, R. F., & Boone, A. L. (2004). High self‐control predicts good adjustment, less pathology, better grades, and interpersonal success. Journal of Personality, 72(2), 271-324.


Hofmann, W., Baumeister, R. F., Förster, G., & Vohs, K. D. (2012). Everyday temptations: An experience sampling study of desire, conflict, and self-control.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02(6), 1318–1335.


Galla, B. M., & Duckworth, A. L. (2015). More than resisting temptation: Beneficial habits mediate the relationship between self-control and positive life outcome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09(3), 508–525.


De Ridder, D. T., Lensvelt-Mulders, G., Finkenauer, C., Stok, F. M., & Baumeister, R. F. (2012). Taking stock of self-control: A meta-analysis of how trait self-control relates to a wide range of behaviors.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Review, 16(1), 76-99.


Kivetz, R., Urminsky, O., & Zheng, Y. (2006). The goal-gradient hypothesis resurrected: Purchase acceleration, illusionary goal progress, and customer retention. Journal of Marketing Research, 43(1), 39-58.


Hull, C. L. (1932). The goal-gradient hypothesis and maze learning. Psychological Review, 39(1), 25-43.


*인지심리학자 이국희 교수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xpwfINPyNYaSKJX7Io2B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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