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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Jan 11. 2023

믿고 등을 맡길 수 있다는 것

신뢰와 협력의 심리학적 뿌리

인간은 약하다.

정신적으로 약하다는 말은 아니다.

다른 동물들에 비해 신체적으로 무척 나약하다.


인간은 곰보다 힘이 약하고, 소보다 힘이 약하다.

인간은 굶주린 사자나 호랑이, 심지어 굶주린 야생의 개나 늑대를 만나면 좋은 먹이감이 된다.

인간 혼자 산에 갔다가 멧돼지를 만났다가는 봉변을 당하기 십상이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새처럼 날아서 위험을 회피할 수 없다.

인간은 물고기처럼 물 속에서 숨을 쉴 수 없다.


그래서 처음 이 땅에 태어난 인간은 공룡을 피해다니기 바빴고,

맹수를 피해 도망다니는 것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두 명의 인간이 같은 산 길을 걷다가 멧돼지를 만났다.

둘은 주변에 있던 날카로운 돌을 집어 들고, 멧돼지에 함께 맞써 싸웠다.

멧돼지는 자신이 능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나약한 인간이 힘을 합쳐 싸울 수 있다는 걸 몰랐다.

그리고 혼자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덩치 크고 힘 센 멧돼지를

두 명의 인간이 앞뒤로 협공하면서 돌로 쳐서 무찔렀고,

둘이서 멧돼지 고기를 충분히 나눠 먹으면서 좀 처럼 얻기 힘든 영양분을 얻었다.


두 사람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힘을 합치면, 협력을 하면 더 큰 동물을 이길 수 있다.

협력하면, 포식자의 먹이감이 아니라, 포식자가 될 수 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뭉쳤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부족이 생기고, 마을이 생기고,

여자보다 힘이 좀 더 센 남자들은 힘을 합쳐 동물을 사냥하고,

여자들은 힘을 합쳐 식물이나 과일을 수집했다.

자연스러운 역할 분담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이 사냥을 나간 남성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사건은 멧돼지 무리와 함께 싸워 이긴 후에 일어났다.

멧돼지 고기를 더 많이 차지하길 원했던 남성 한 명이 동료를 배신하고,

멧돼지 고기를 줄에 묶어 끌고갈 준비를 하고 있던 동료들을

등 뒤에서 찌른 것이다.

멧돼지 고기를 혼자 독차지한 그는 그의 부족으로 돌아가지 않고,

독립해서 새로운 부족을 만들었고, 그곳의 지도자가 되었다.


Photo by Randy Fath on Unsplash


배신.


자연스럽게 협력하고, 서로의 등을 맡겼었기에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배신.

믿음, 신뢰라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고,

그냥 서로 믿는 동료라고 생각했던 부족민들.

그러나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가진 건 아니었고,

모두가 똑같은 품성을 가진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동료를 배신하고,

신뢰를 저버리는 악당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인류는 배신을 경험하면서 신뢰를 알게 되었고, 신뢰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협력에는 신뢰가 필요하다는 것을

배신자가 무리에 섞여 있거나, 신뢰할 수 없는 자가 무리에 섞여 있으면,

언제든지 위험이 발생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내 등 뒤를 맡길 수 있는 사람과 맡길 수 없는 사람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때부터 배신자에 대한 처벌 혹은 신뢰를 저버린 자에 대한 처벌이 시작된다.

멧돼지를 독차지 해서 근처에 새로운 부족 마을을 만든 배신자를 그대로 둘 순 없다.

반드시 복수해야 하고, 처벌해서 일벌 백계해야 한다.

배신자의 말로가 어떤지 똑똑히 보여주어야 한다.

배신 당한 부족의 남자들 중 싸움을 더 잘하는 사람들이 배신자 처단에 참여하기로 했다.

그리고 새벽을 틈타 배신자를 기습 공격! 배신자를 처단하고 돌아왔다.


조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배신자를 검증할 수 있는 두뇌 시스템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배신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검열할 수 있는 두뇌 시스템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낯선 사람,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

친구나 이웃에게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

왼손에 감자 튀김 쥐고, 오른손으로 감자 튀김을 먹는 사람,

공용 물품을 함부로 쓰는 사람,

질서를 지키지 않고, 순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

말로는 뭔가를 하겠다고 하고, 실제로는 하지 않는 사람,

약속 시간을 어기는 사람,

거짓말하는 사람,

친구나 이웃의 애인이나 배우자를 빼앗거나 탐하는 사람,

평판이 좋지 않은 사람(소문이 나쁜 사람),

신을 공경하지 않는 사람,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이라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

우리 뇌는 그 사람을 배신자 혹은 배신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자로 규정하고, 협력에서 배제했다.

사회적 배제라는 심리학적 용어의 시작이었다.


배신자 검증 시스템을 갖춘 후로는 배신이 잘 일어나지 않았다.

믿고 협력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늘어났고,

배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배신자로 낙인 찍히면, 사회적 배제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배신하지 않았다.


정말 가끔 등 뒤에서 칼을 들이대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고,

믿는 도끼에 발을 찍히는 일이 생기긴 했지만, 말그대로 가끔이었기에 감당할 수 있었다.


신뢰 있는 사람들과 신뢰 있는 척하는 사람들로 인해 세상은 평화를 되찾았다.

그리고 지금도 연약한 인류는 신뢰와 협력을 지속하고 있다.

(배신자의 처단도 일어나고 있고 말이다)


*참고문헌

Axelrod, R., & Hamilton, W. D. (1981). The evolution of cooperation. Science, 211(4489), 1390-1396.


Dunbar, R. I. (2003). The social brain: Mind, language, and society in evolutionary perspective. Annual Review of Anthropology32(1), 163-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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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그림 출처

Photo by Michał Parzuchowski on Unsplash


*인지심리학자 이국희 교수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xpwfINPyNYaSKJX7Io2B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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