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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Feb 01. 2023

혼낼 상황을 만들지 않는 심리학의 지혜

처벌 말고, 반응 방지

처음에는 '어허~'하면서 싸늘하게 웃는다.

그다음에는 '하지마'하면서 정색한다.

그러다가 이를 악물고 '하지 말랬지'라고 말한다.

마침내 배에서부터 힘을 모아 '내가 하지 말랬잖아!'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진다.

이 순간 깜짝 놀란 아이의 울음소리도 쩌렁쩌렁하게 커진다.


이게 뭐냐고?

부모가 아이에게 뭔가 지적할 때 나타나는 상황 전개 패턴이다.

부모 나름대로 세 번까진 참아 주지만, 세 번을 넘어가면 폭발하는 패턴이랄까?

(왜 꼭 세 번인지는 의문이다, 한국에서는 꼭 세 번은 참아준다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아시는가?

이런 식으로 서서히 강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자녀를 훈육하는 것은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을...


훈육의 강도를 천천히 높이는 과정이 일종의 예방주사 같아서

더 높은 수준의 훈육이 아니면, 훈육이라고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을...


지적을 하고 싶고, 훈육을 하고 싶다면, 처음부터 강도 높게 훈육을 하는 것이 좋다.

어설프게 강도를 높여 가는 것, 세 번까진 참아준다는 식의 접근은 가장 안 좋은 훈육이고,

훈육의 효과만 떨어뜨린다.


우아! 이제 되었다!

오늘부터는 초장부터 따끔하게 매운맛을 보여주어야겠다!

지금 혹시 이렇게 생각하셨는가?


아주 틀린 생각은 아니지만, 좀 걱정스럽다.

훈육은 폭력이 아님을 이해해야 하고, 학대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아이를 대상으로 한 처벌과 훈육은

이해력이 성인 수준에 이르지 못한 아이가

자신의 말이나 행동에 잘못이 있었음을 느끼게 만들어주는 과정이다.

폭력과 학대는 그냥 범죄지 처벌과 훈육이 아니다.


큰소리치지 않고도, 화내지 않고도

어떤 행동이 일어나자마자 설명해주고, 말해주고, 반복적으로 알려줌으로써

아이 스스로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을 수 있다.

그렇다면 처벌과 훈육이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을 하라는 말이다.


그러나 한 가지 영역에 대한 처벌과 훈육이 제대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아이들은 늘 또 다른 잘못과 실수를 저지르기 마련이다.

그럼 이 새로운 상황에 대해 또 설명하고, 이해시키고, 타일러야 한다.


부모가 사람인 이상 이런 식으로는 곤란하다.

아무리 체력이 좋은 부모라고 해도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지친다.

그래서 그냥 화를 한 번 내는 것으로 상황을 종료해버리고 싶어지는 것이다.

너무 힘드니까.


설명해줘야지, 잘 타일러야지, 이렇게 화내고 끝내선 안되지라는 걸 머리로는 잘 알고 있다.

너무 힘들어서 실천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Photo by Filip Urban on Unsplash


지금부터 이럴 때 사용할 수 있는 심리학의 지혜를 하나 말씀드리도록 하겠다.

바로 '반응 방지(response prevention)'라는 것이다.


반응 방지란

"처벌할 행동이 발생하는 것 자체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 혼낼 만한 상황 자체를 미리 예측하여 제거하라는 것이다.


아이가 손을 뻗어 잡을 만한 높이에 칼이나 가위 같은 위험한 도구를 둔 후,

아이가 그걸 만질까 봐 걱정하고,

만지면 지적하고, 만지지 말라고 소리 지르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행동이다.


칼이나 가위를 보이지 않는 곳에 치워두면서 그런 것으로 지적하는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는 것이 지혜롭다.


아이가 숙제를 시작해야 하는 시간에 스마트폰을 계속 쓸까 봐 걱정하고,

실제로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화를 낼 준비를 하고 있는가?

지혜롭지 못하다.


차라리 스마트폰을 부모가 제어할 수 있는 앱을 통해 시간을 미리 제어해두고,

숙제를 다 했다고 하면, 확인한 후, 시간 제어를 풀어주는 방식으로 하는 것이 좋다.


아이가 건드려서 깨지기 쉬운 것들이 있다면, 아이가 건드리지 못하는 곳에 옮기고,

식탁에서 아이가 컵을 쳐서 물을 쏟을 것 같다면, 아이가 건드리지 못하는 곳에 컵을 두는 것이 좋다.


식당에서도 아이들이 음식 먹는 것에만 신경 쓰다가

식탁 위에 있는 물컵을 쳐서 떨어뜨리는 경우가 많은데,

물이 뜨거운 물일 경우에는 위험하다.

또한 탄산음료를 떨어뜨리는 경우도 있는데, 식당 바닥이 끈적끈적해지고,

외식하는 즐거움이 줄어들 수도 있다.


이럴 때도 지혜로운 부모는 아이의 손이 닿지 않을 만한 곳에 물컵이나 탄산음료를 두고,

아이가 달라고 할 때만 준다.

지혜롭지 못한 부모는 결국 이런 상황을 만들어서 물컵이나 탄산음료를 쏟게 만들고,

화를 내고, 감정 상하고, 외식 분위기를 망친다.

아이를 누가 잘 봤네 못 봤네 하면서 부부 싸움이 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반응방지다.


반응방지를 적절히 사용한다면,

훈육의 빈도가 줄어들고, 감정 상할 일도 줄어들 것이다.

반응방지로 인해 훈육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

그 자체로 삶의 질이 향상될 수도 있다.


일이 일어날 법한 상황을 만들어놓고,

일이 일어났다고 처벌하는 것은 심리학의 지혜가 아니다.

일이 일어날 만한 상황 자체를 만들지 말라.

이것이 심리학이 우리에게 주는 지혜다.


*참고문헌

Agras, W. S., Schneider, J. A., Arnow, B., Raeburn, S. D., & Telch, C. F. (1989). Cognitive-behavioral and response-prevention treatments for bulimia nervosa. Journal of Consulting and Clinical Psychology, 57(2), 215–221. https://doi.org/10.1037/0022-006X.57.2.215


Chance, P. (2013). Learning and behavior. Cengage Learning.


*커버 사진 출처

Photo by Tanaphong Toochind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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