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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May 10. 2023

고생을 사서 하고 찾아서 할 줄 알아야 청춘이다

비자발적 버티기와 자발적 투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현대인들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된다는 강한 신념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나이가 어릴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 뚜렷해진다.

이들은 스트레스는 '모든 병의 근원이자, 일만가지 악의 뿌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다짐한다.


절대 스트레스 받지 않을꺼야!

부정적인 느낌은 절대 받지 않을꺼야!


스트레스는 무조건 회피할 것이고,

스트레스가 조금이라도 감지되면 그만 둘꺼야!


그래서일까? 젊은이들 중에 무언가 꾸준하게 이어나가고,

투지를 발휘하면서 끝까지 추진력 있게 밀어붙이며,

죽을 것 같이 힘들 때, 한 걸음 더 내딛는 용기를 점점 보기 어려워진다.


'버틴다'을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그렇게 버텨봐야 소용없다는 결론으로 간다.


슬슬 용어의 구분이 필요할 때가 온 것 같다.

그냥 무작정 버티는 것과 투지가 같은가?

무작정 이를 악물고 참는 것과 불굴의 의지가 같으냔 말이다.

나도 무작정 이를 악물고 참는 것 싫어한다.

그런데 불굴의 의지, 투지, 끝까지 밀어붙이고,

죽을 것 같을 때, 한걸음 더 내디딜 수 있는 용기와 끈기는 매주 좋아한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행복한 가정도 이루고, 의미 있는 성취를 죽을 때까지 이어간다.


무작정 버티는 것? 이것도 스트레스다.

투지를 발휘하는 것? 이것도 스트레스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전혀 다른 스트레스다.


무작정 버티는 것은 자신이 자율적으로 하는 것 없이

세상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면서 받는 스트레스다.

나는 동네북 스트레스라고 부르고 싶다.

동네북이 되면, 불행하다. 이를 악물고 참아봐야 한계가 있다.


그러나 투지는 다르다. 투지는 자신이 자율적으로 선택한 것에 대한 스트레스다.

스트레스를 자처한 것이다.

고생을 사서한 것이다.


옛 조상들도 말하지 않았던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말이다.

그런데 요즘 고생을 사서하는 젊은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교수가 내주는 시험문제나 풀고,

교수가 내주는 과제나 하면서 교수에게 끌려다니는 대학생은

그저 버티고 있을 뿐이다.

그저 이를 악물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비자발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다보면, 지치고, 우울하고, 불안하고,

결국 탈진(burn-out)해서 쓰러진다.

아무 쓸모 없는 휴학으로 시간 낭비한다.


그러나 시험은 지나가는 길에 그냥 한 번 봐주고,

자기 스스로 시험문제를 만들고,

자기 스스로에게 글쓰기 과제를 주어서 수행하고,

자기 스스로에게 만들기 과제를 주어서 수행하며,

자기 스스로 말하기 과제를 과제를 주어서 수행하고

기본기를 다지기 위한 과업을 자기 스스로 부여하는 사람은 투지를 발휘하는 사람이다.


Photo by Jan Baborák on Unsplash


자기 스스로 교과서의 새로운 페이지를 써내려가며,

과거의 교과서 내용과 현재의 교과서 내용 중에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하고,

자기 스스로 프로래밍을 위한 함수를 만들어 가고,

자기 스스로 연구를 해서 보고서를 쓰는 사람은

자발적으로 투지를 발휘하는 위대한 사람이다.


큰 전지를 하나 사서 벽에 붙여 놓고

다양한 개념들에 대한 연결 고리를 그려보는 (마치 동굴벽화 그리듯이) 사람은

억지로 버티고 있는 게 아니라, 불굴의 의지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더 좋은 글쓰기, 더 좋은 발표, 더 좋은 시험문제를 자기 스스로 만들어보기 위해

더 좋은 기술, 더 나은 생각을 자기 스스로 만들어보기 위해

매일매일 꾸준히 시간을 투자하면서 실력을 기르는 사람은 행복한 끈기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스트레스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자주하는 말이 있다.

'조금만 더 해볼까?'

'한 걸음만 더 걸어가볼까?'

'조금 쉬었다가 다시 해볼까?'


이렇게 실력과 역량을 기른 사람들은

시험과 과제에 끌려다니지 않는다.

이미 준비가 되어 있기에 시험은 그냥 보면 되고,

이미 준비가 되어 있기에 과제는 그냥 하면 된다.

시험과 과제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진짜 실력을 길렀기에

시험 점수와 과제 점수에 그렇게 목매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런 사람들이 시험을 망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이렇게 자기 스스로 고생을 자처한 진짜 공부쟁이들은 시험도 잘 본다.


매년 《트렌드 코리아》로 공동체에 큰 기여를 하고 계신

서울대 김난도 교수님도 사실 이런 메시지를 던지신 적이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에서 말이다.

이 책을 볼 때마다 참 안타깝다.

책 제목만 보고, 내용을 읽어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책에 대해 오해하고, 비난한다.

부당한 오해이고, 부당한 비난이다.

책을 제대로 읽어 봤으면, 나올 수 없는 비난이고, 오해다.


이 책의 핵심은 단순하다.

'젊을 때 고생을 자처하는 사람이 건강하고 성공적인 삶을 꾸려간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다 아파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젊을 때 고생을 사서하라는 것이다.

수백번 수천번을 반복해도 맞는 이야기다.

옳소!

젊을 때 고생을 사서해야지!

이 당연한 인류 역사의 지혜가 왜 욕을 먹어야 하고,

책도 읽지 않은 일부 가수들이 비판적인 가사의 소재로 쓰는지 이해가 안 된다.


젊은이들이여. 세상에 끌려다니면서 억지로 참지 말라.

실력을 기른다는 것, 역량을 키운다는 것, 전문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

하버드 성인발달연구에서 말한 것처럼 40대 이후에 전문성을 가지고, 직업적 안정성을 가진다는 것은

그 이전 시기에 엄청난 투지를 발휘했다는 의미다.


그 젊은 시기에 고난을 자처하고, 스트레스를 자처하고,

자기 스스로 할 과업을 찾아 투지를 발휘하고, 의지를 발휘하고,

한 걸음 더 내디딜 때, 건강하고 성공적인 삶이 점차 윤곽을 드러낸다.


고난과 스트레스를 자처하는 사람,

고생을 사서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 간다.

탈진하지 않는다, 지치지 않는다, 늘 여유가 있고 준비가 되어 있다.


남이 시키는 일만 하면서 끌려다니고, 자기 스스로 자처하는 고생이 없는 사람은 가짜다.

이 세상의 실력자들, 전문가들, 진짜배기들은 다 자기 스스로 자처하는 고생이 있다.


세상에 끌려다니면서 억지로 버티다가 쓰러지고,

고생을 자처하는 것과 무작정 버티는 것을 구분하지 못해

투지를 발휘해야 하는 일에서 조금만 어려움이 발생하면 포기하고,

스트레스를 어느 정도 자처해야 자기계발도 되고,

전문성도 쌓을 수 있는데, 스트레스가 등장하면, 자기랑 맞지 않는 일이라고 결론내려 버리고,

이런 식으로 하는데 어떻게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이리저리 비자발적으로 끌다니면서 스트레스 받는 사람은 아프다.


그러나 자기가 할 고생과 스트레스를 찾아다니면서 자발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은

성공하고, 행복하고, 건강하다.


고생을 자처할 줄 알아야 청춘이다!


*참고문헌

김난도. (2010). 아프니까 청춘이다. 쌤앤파커스.


조수빈. (2022). 청춘은 청춘에게 주기 아깝다. 파람북.


이국희. (2019). 메모리 크래프트. 이너북스.


Duckworth, A. (2016). Grit: The Power of Passion and Perseverance. Random House.


*표지 그림 출처

Photo by Gaelle Marcel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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