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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May 17. 2023

당신의 방어기제는 안녕하신가요?(1)

정신병적 방어기제: 망상, 부인, 왜곡

인간은 누구나 극도의 스트레스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이 있다.


실제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 처했을 때(현재 진행형 스트레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태도, 말, 행동 등의 반응을 하는가 하면,

강한 스트레스가 예측되는 상황에 처했을 때(전망적 스트레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태도, 말, 행동 등의 반응을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현재 진행형 스트레스와 전망적 스트레스에 대한 사람들 간의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사랑하는 애인과 통화를 하고 싶은데,

무슨 일인지 애인이 전화를 받지 않는 상황이 2시간 쯤 이어졌다고 해보자.

당신은 이 현재 진행형 스트레스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내 애인이 다른 파트너를 만나고 있는가?

내 애인이 나 몰래 다른 파트너와 (성적) 관계를 하고 있는가?

이러한 상상을 계속하다보면, 상상의 해상도가 높아진다.

처음에는 희미한 스케치 수준이던 상상에

구체적인 이미지가 더해지고, 청각적인 요소가 더해지면서 고해상도 영상이 되어 간다.

이쯤 되면, 이제 이건 상상이 아니라, 기정 사실이다.

"그래! 지금 나 몰래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


혹시 이런 식의 전개된다면, 당신은 '망상(delusion)'이라는 증상을 보인 것이다.

검증되지 않은 상상, 관찰에 근거하지 않은 상상,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상상의 해상도를 높여서

기정사실로 만들어가는 반응, 이것이 바로 망상이다.

확인되지 않은 것을 기정사실로 믿어버리는 것, 이것이 망상의 핵심이다.


같은 상황에 대한 다른 반응도 있다.


내가 통화하고 싶을 때, 통화도 못하다니, 사실 나만 좋아했던 것 아닐까?

우리가 사실 사귀고 있다는 것이 내 착각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을 곱씹고, 또 곱씹다가 당황스런 결론으로 나아간다.


"그래! 나는 원래부터 애인이 없었어! 나는 애인 따위는 만들지 않는 사람이야!

나에게 애인 관계는 처음부터 없었던 거야!"


망상과 비슷해 보이지만, 약간 다르다. 심리학자들이 '부인(denial)'이라고 부르는 증상이다.

말그대로 현재 상황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다.

심지어 현재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기에 그 상황의 근거가 되는 최초의 상황 조차 부인하는 것이다.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이 "나는 취업한 적이 없었던 거야!"라고 한다면 이런 것이 부인이다.

"그래, 이건 꿈이야. 내가 꿈 속에 있는 거야!"라고 하는 것도 부인의 일종이다.

이처럼 부인의 핵심은 현실 부정이다.


이제 세 번째 반응을 살펴볼 차례다.


내가 싫어진거야!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아! 난 외톨이야! 난 사랑받을 자격이 없어!


이런 생각들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가다가 급기야 거대하면서 잘못된 잘된 결론을 내리게 된다.


"이 세상이 날 거부해, 이 세상이 날 외면해, 이 세상은 거짓말쟁이와 위선자들로 가득차 있어!"


이런 반응은 망상, 부인과는 또 다른 양상이다. 비슷해보일 수도 있지만, 핵심이 다르다.

내가 싫어졌다는 반응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세상이 날 거부한 것은 아니다.

어떤 한 사람과의 관계가 틀어졌다고(사실 틀어진 것도 아니고, 전화 통화를 2시간 동안 못한 것 뿐이지만),

이 세상 사람 모두와의 관계가 끝장난 것은 아니다.

이는 지나친 일반화이고, 심리학자들은 '왜곡(distortion)'이라고 부르는 증상이다.

왜곡의 핵심은 논리적으로 연결될 수 없는 것을 연결시키는 것이다.


어떤가? 망상, 부인, 왜곡 중에 당신에게 자주 해당되는 사항이 있는가?

아니면, 이 세 가지를 골고루 자주 사용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 - 1939)의 딸인

안나 프로이트(Anna Freud, 1895 - 1982)가 제시한 방어기제의 네 가지 유형에서

정신병적 방어기제를 가진 것이다.


Photo by engin akyurt on Unsplash


방어기제란

"(개인이) 경험하고 있거나 예측할 수 있는 스트레스로부터

자신의 몸과 마음을 지키기 위해 수행하는 내적 혹은 외적 반응들의 집합"을 의미한다.


안나 프로이트는 이러한 방어기제의 수준을 네 가지로 구분하였는데,

가장 낮은 수준의 방어기제를 정신병적 방어기제라고 불렀고,

망상, 왜곡, 부인의 증상이 하나 이상 나타나는 사람을 정신병적 방어기제를 가진 사람이라고 칭했다.


안나 프로이트에 따르면, 정신병적 방어기제는 어린 시절 부모와 따뜻한 관계를 맺지 못했기에 발생한다.

더 정확하게는 부모 혹은 보호자, 선생님 그 누구와도 따뜻한 관계를 맺지 못했을 뿐 아니라,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고, 냉정하고 냉랭한 반응만 받았으며,

무시와 거부(거절)을 당하는 것이 일상이었을 경우에 방어기제가 정신병적으로 형성된다.

특히 청소년기에 부모나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정서적 학대, 신체적 학대, 성적 학대, 방치를 당한 사람은

정신병적 방어기제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다양한 연구결과에서 정신병적 방어기제를 가진 사람은 불행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 세상일들 중에는 좋은 결실을 맺기 위해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가야 하는 것이 많은데,

정신병적 방어기제를 가지고서는 그 무엇도 오랜 시간 지속하기 어렵고,

그에 따라 열매를 얻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좋은 사회적 관계를 지속하기도 어렵고, 직장생활을 지속하기도 어려우며, 학업을 이어나가기도 어렵다.


또한 정신병적 방어기제를 가진다는 것은 걱정, 불안, 공포, 불확실성을 자기 스스로 구매하는 것과 같다.

걱정 하지 않아도 될 것을 사서 걱정을 하고,

불안 하지 않아도 될 것을 사서 불안해 하고,

공포를 만들고, 불확실성을 스스로 조장한다.


인간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많다고 느낄수록 편안하고, 안전감을 느끼고, 만족스럽다.

그런데 정신병적 방어기제를 가진 사람은 이러한 자기 통제감을 스스로 버린다.


'정신병적'이라는 말은 일상적인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문제에 직면한다는 것이다.

정신병적 방어기제를 가진 사람은 일상생활이 불가능하고, 사회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


이런 부분이 참 안타깝다.

어린 시절에 불행으로 정신병적 방어기제가 만들어 졌는데,

그러한 어린 시절의 불행을 시간이 지나 보상받지 못하고,

오히려 그렇게 만들어진 정신병적 방어기제 때문에 불행한 어른이 되어 버린다.

불행은 더 큰 불행을 만드는 악순환과 비극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러한 불행의 악순환과 비극의 반복을 막기 위해서는

전문가와의 상담과 약물 처방을 통해 마음에 대한 수술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정신병적 방어기제에 물들어 버린 마음을 치료해야 하고, 회복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마음을 치료한다는 것은 뇌과학적으로 두뇌의 신경구조를 바꾸는 것과 연결된다.

심리치료를 하면서 망상, 왜곡, 부인을 조장했던 두뇌 신경조직의 배열이나 구조를

정상적으로 사고를 하는 구조로 바꾸어야 한다.

신경 가소성 혹은 두뇌 가소성이라는 우리 뇌의 신비한 능력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 인간은 나 자신을 대상으로 더 건강한 방어기제를 연습시키고, 훈련시키고, 공부함으로써

예전의 나와 다른 나를 만들 수 있다.

성격도 바꿀 수 있고, 지식과 기술의 수준도 바꿀 수 있고, 습관도 바꿀 수 있고,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더 빠르면서도 올바른 방향으로 바뀌게 된다.


이렇게 전문가의 도움과 내 노력을 결합한 연습, 훈련, 공부를 통해

두뇌 신경조직의 배열이나 구조가 바뀌면, 건강하고 정상적인 사고와 습관이 나타난다.


정신병적 방어기제로 인해 불행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버리고, 비극의 반복을 끝내버리길.


행복의 선순환으로, 해피 엔딩의 반복으로 나아가길 바라고, 또 바란다.


*참고문헌

Vaillant, G. E. (2008). Aging well: Surprising guideposts to a happier life from the landmark study of adult development. Hachette UK.


Vaillant, G. E. (2012). Triumphs of Experience. Harvard University Press.


Vaillant, G. E. (1995). The wisdom of the ego. Harvard University Press.


Vaillant, G. E. (1992). Ego mechanisms of defense: A guide for clinicans and researchers. American Psychiatric Pub.


*표지 그림 출처

Photo by Milada Vigerov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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