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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May 24. 2023

당신의 방어기제는 안녕하신가요?(2)

미성숙한 방어기제

사람들은 세상을 보기 좋게 둘로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두 개로 나누는 것은 여러모로 매력적이다.


둘은 하나로 다 뭉쳐 놓을 때보다는 자세하고,

세 개 이상이 되는 것 보다는 간단하다.


너무 복잡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단순하지도 않은 것이 둘의 매력이다.

세상을 너무 가볍게 다루지 않으면서, 어느 정도 정보도 제공하는 것이 이분법이다.


인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둘로 나누는 것을 너무너무 좋아한다.

외향성과 내향성.

내 편과 적.

우리와 그들.

남성과 여성.

애플폰과 삼성폰.

긍정 정서와 부정 정서.

빛과 어둠.


모든 것에 중간 지대가 있고, 수없이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지만,

중간 지대를 인정하는 순간 복잡해지고,

설명하기 힘들어지기에 마치 중간 지대 따위는 없는 것처럼 생각한다.


심리학자들도 마찬가지다.

심리학자들의 특기는 집단을 나눠서 결과를 분석하는 것인데,

여기서 말하는 집단이 언제나 명확하게 구분될 수 있는 집단은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연속성상의 어디 쯤에 위치해 있는 존재이지,

정확하게 절반으로 나눠 이런 부류는 이렇고, 저런 부류는 저렇다고 하기 어렵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은 연구 결과를 비교적 명확하게 설명하기 위해

세상에 뭔가 설명을 제공하기 위해 그렇게 한다.

평균을 기준으로 평균보다 높은 집단과 낮은 집단을 구분하거나

중앙값을 기준으로 이보다 높은 집단과 낮은 집단을 구분하고,

평균에서 1표준편차 이상 떨어져 있는 집단과 그 이하로 떨어져 있는 집단을 구분한다.


성숙한 사람과 미성숙한 사람의 구분에도 비슷한 규칙이 적용된다.

성숙한 사람과 미성숙한 사람은 딱 잘라 구분하기 어렵고,

모든 인간은 미성숙에서 성숙으로 이어지는 수직선 상의 어디쯤에 위치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연속적인 것 그대로 두고 싶어하지 않는다.

성숙과 미성숙의 경계를 구분하고 싶어하고, 범주화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리고 나서 성숙한 사람의 특성과 미성숙한 사람의 특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세상에 알리고자 한다.


구분하기 어려운 것을 구분되게 만드는 과정은 현실적으로 중요한 측면이 많다.

회사에서 사람을 뽑을 때, 당연히 성숙한 인격을 가진 사람을 뽑고 싶지,

미성숙한 인격을 가진 사람을 뽑고 싶어할 인사담당자와 사장은 없다.


여기서 성숙과 미성숙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 어떤 것을 기준으로 할 것인지의 문제가 나타난다.


사람들은 누구나 성숙한 인격을 가진 사람과 친구가 되고 싶고, 애인으로 만들고 싶지,

미성숙한 인격을 가진 사람을 친구로 사귀고, 애인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여기서도 성숙과 미성숙을 식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단서가 필요하다.


안나 프로이트가 관심을 가졌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성숙한 인간과 미성숙한 인간을 구분할 수 있는 뚜렷한 단서가 무엇일까?

그녀의 발견은 '방어기제의 성숙'이었다.

성숙한 방어기제가 관찰되는 사람은 성숙한 인격을 가진 것이고,

미성숙한 방어기제가 관찰되는 사람은 미성숙한 인격을 가진 것이다.


한 사람을 위기에 빠뜨린 후,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보는 것 만큼

인간의 진면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위기라고 할 것까지도 없다. 한 사람을 스트레스 상황에 집어 넣은 후,

그 사람이 어떤 식으로 말하고, 행동하고, 감정적인 반응들을 하며, 태도를 보이는지 관찰하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


안나 프로이트의 생각이 바로 이것이다.

한 사람의 인격적 성숙은 그 사람이 위기나 스트레스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지에 대한 개념인 '방어기제'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럼 어떤 것들을 살펴봐야 할까?

안나 프로이트는 다음의 여섯 가지 미성숙한 방어기제들이 나타나는지 아닌지를 살펴야 한다고 제안한다.


Photo by Noah Silliman on Unsplash


그녀가 제시한 미성숙한 방어기제의 첫 번째 항목은 투사(projection)이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반드시 만나야 하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투사 전략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거나 생각한다.


"그 사람(내가 만나야만 하는 사람)이 나를 싫어해."

"그 사람이 나를 불편해해."

"그 사람이 나를 좀 껄끄러워 하는 것 같아."


사실은 내가 싫은 것이고, 내가 불편한 것이고, 내가 껄끄러운 것이지만,

내가 아닌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 것으로, 둔갑술을 펼친다.

내가 '주어'의 자리에 와야 하는데, 그 사람이 '주어'의 자리에 오고,

'주어'의 자리에 왔어야 할 나는 '목적어'로 간다.


어떤 장소나 자리에 가기 싫지만, 가야만 할 때,

'그 장소나 자리가 나와 잘 안 맞아.'라고 한 적이 있다면, 여러분도 투사를 사용해본 적 있는 것이다.

내가 그 장소를 싫어하는 것이지만, 그 장소가 나를 거부하는 것처럼 한 것이다.


미성숙한 방어기제, 그 두 번째는 공상(fantasy)이다.

뇌과학적으로 공상과 상상은 같다. 상상이 곧 공상이고, 공상이 곧 상상이다.

상상과 공상 모두 머리속으로 이미지나 영상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상상은 창의성, 생산성, 미래에 대한 전망과 계획 등 긍정적인 요소에 사용하고,

공상은 부정적인 것을 피하고 싶거나, 부정적인 것을 계획하고 싶을 때 사용한다.

상상은 긍정적이지만, 공상은 부정적이다.


누군가를 돕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에 대한 이미지나 영상을 머리속으로 만들어냈다면, 상상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복수를 하고,

손실을 입히는 이미지나 영상을 머리속에서 만들어냈다면, 공상이다.

너무나 하기 싫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프로젝트가 있을 때,

그 프로젝트를 망가뜨리는 쪽으로 자꾸 상상을 한다면, 그건 부정적인 공상이다.

나에게 막말과 폭언을 하는 사람에게 복수를 해주거나,

모욕을 주거나, 폭력을 가하는 상상을 한다면, 그것도 공상이다.


공상은 그 사람이 직접 이런 공상을 했다고 말하기 전에는 알기 어렵다.

그러나 본인이 이런 것을 자주한다면, 방어기제가 미성숙한 상태라고 판단하면 된다.

물론 술을 먹어서 자제력이 약해진 사람은 자신이 한 공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떠벌리는 경우도 있다.

"내가 누구를 때려주는 걸 상상했다니까, 꿈이었지만, 참 통쾌했어!"

이런 말을 들은 공동체 구성원들은 그냥 웃어줄수도 있겠지만,

그 사람을 별로 신뢰하진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저런 상상을 할 수 있는 미성숙한 사람이자,

그러한 공상을 언제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위험한 사람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어떤 사람의 말실수에서도 그 사람이 평소에 어떤 위험한 공상을 하는지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예수님도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그 사람 마음에 가득한 것이 입으로 나온다고 말이다.


세 번째로 살펴볼 미성숙한 방어기제는 건강염려증(hypochondriacal neurosis)이다.

스트레스 상황에 직면하거나, 직면할 것 같을 때, 꼭 아픈 사람들이 있다.

'머리가 아프다. 배가 아프다. 다리가 아프다. 허리가 아프다. 손이 아프다. 힘이 없다. 몸살이다' 등등

스트레스 상황에 따라 아픈 곳이 달라진다.

머리를 쓰는 일이 싫으면, 머리가 아파야 그 일을 피할 수 있고, 실제로 머리가 아파진다.

다리를 쓰는 일이 싫으면, 다리가 아파야 그 일을 피할 수 있고, 실제로 다리가 아파진다.

손을 쓰는 일이 싫으면, 손이 아파야 그 일을 피할 수 있고, 실제로 손이 아파진다.


건강염려증은 심리학자들이 후에 자기 불구화(self-handicapping)라고 부르는 것과도 연결된다.

이는 실패의 구실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 핸드캡을 만들고, 스스로 장애를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미성숙한 방어기제를 가진 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쓰는 전략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스트레스에서 도망치는 것만으로는 결코 성숙한 인격이 될 수 없다.


네 번째 미성숙한 방어기제는 소극적(소심한) 공격(timid aggression)이다.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대상을 직접 공격하기는 어려우니, 간접 공격하는 것이 소극적 공격이다.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어떤 일을 비난하는 익명의 투서를 한다거나,

어떤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거나, 어떤 일을 계속 미루거나, 열심히 참여하지 않는다.

회사의 소모품을 낭비하거나, 문제가 되지 않는 수준에서 집으로 가져가는 것도 소극적 공격의 한 예다.


행동화(acting out)는 다섯 번째 미성숙한 방어기제이다.

행동화란, 당한 그대로 되갚아주는 것을 말한다.

눈에 눈 이에는 이(tit-for-tat)다.

행동화 경향이 강한 사람은 보복하려는 마음을 행동으로 옮긴다.

내 앞으로 갑자기 끼어든 차가 있는가? 그대로 되갚아 준다.

나를 툭 치고 지나갔는가? 나도 툭 치고(때로는 더 세게 치고) 지나간다.

욕을 하는가? 욕을 해준다.

스트레스를 주는가? 똑같이 스트레스를 준다.

불편하게 하는가? 똑같이 불편하게 만들어 준다.

혹시 이것이 상식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이 미성숙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안나 프로이트는 이렇게 말한다. 복수는 미성숙한 사람들의 행동이라고 말이다.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미성숙한 방어기제는 해리(dissociation)라고 불린다.

해리는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에 집중하지 않고, 전혀 다른 일을 하는 것을 말한다.

몸은 회의에 참여했지만, 책상 아래에 스마트폰을 두고, 누군가와 계속 채팅을 한다.

몸은 강의실에 있지만, 한쪽 귀에만 이어폰을 끼고, 교수 몰래 영화를 본다.

몸은 수학 강의를 듣고 있지만, 실제로는 영어 문제지를 꺼내놓고 풀고 있다.

몸은 박물관에 와있지만, 박물관 휴게실에서 유튜브를 보고 있다.

이처럼 해리는 해당 장소와 맥락에 부합하는 일을 하지 않고,

불일치하는 일, 부합하지 않는 일,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이다.

옛날에 선생님들이 그러시지 않았는가,

꼭 공부 못하는 애들이 국어 시간에 수학하고, 수학 시간에 영어한다고.

이런 것이 바로 미성숙한 방어기제, 그 중에서도 해리다.


만약 누군가가 최근 일주일 동안 이 여섯 가지 미성숙한 방어기제 중

세 가지 이상을 사용한 적이 있다면, 그 사람은 미성숙한 방어기제를 가진 사람이요.

미성숙한 인격을 가진, 미성숙한 사람이다.


여러분의 지인들을 이 기준으로 점검해보시라.


그리고 여러분 자신을 이 기준으로 점검해보기 바란다.


*참고문헌

Vaillant, G. E. (2008). Aging well: Surprising guideposts to a happier life from the landmark study of adult development. Hachette UK.


Vaillant, G. E. (2012). Triumphs of Experience. Harvard University Press.


Vaillant, G. E. (1995). The wisdom of the ego. Harvard University Press.


Vaillant, G. E. (1992). Ego mechanisms of defense: A guide for clinicans and researchers. American Psychiatric Pub.


*표지 그림 출처

Photo by Giulia Ma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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