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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May 31. 2023

당신의 방어기제는 안녕하신가요?(3)

신경증적 방어기제

인간관계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애매함이다.

우리 관계가 어디쯤인지에 대한 애매함.

이런 행동을 해도 될지, 이런 말을 해도 될지 애매함.

경계선이 어딘지, 구획 설정이 어딘지에 대한 애매함.

지도가 군데군데 비어 있고, 지워져 있는 그 참을 수 없는 애매함.


요즘 회사원들은 회식 자리에서 이런 일을 경험한다.

오랜만에 고깃집에 가서 삼겹살을 먹기로 했다.

큰 테이블에 둘러 앉아 고기가 나오길 기다린다.

숯불이 먼저 피워지고, 뒤이어 고기가 나온다.

자! 먼저 팀장님이 고기를 굽기 시작한다.

솔선수범하는 마음도 있지만, 꼰대 소리를 듣기 싫어서 자기가 굽겠다고 한다.

그런데 고기 한판을 다 구워 먹고, 팀장 팔도 슬슬 아파가기 시작하는데,

팀원들 중에 바톤 터치해주는 사람이 없다.

이쯤되면, 이제 "팀장님 좀 쉬세요! 제가 굽겠습니다"라는 사람이 나올법도 한데,

다들 뭐하냐고, 왜 고기 빨리빨리 굽지 않느냐는 표정이다.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지만, 애매하다.


뭐라고 하면 치사한 사람될 것 같고,

이런 사회 생활의 기본도 모르는 것들에게 화를 한 번 내줘야 할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아~ 팔이 아프네~'라는 식으로

돌려서 말하면, 못 알아들을 것 같고.


아. 진짜. 이걸 뭐라고 하기도 그렇고 안하기도 그렇고, 애매하다.


개인이 사회생활하는 스타일, 개인이 부정적인 상황에서 나타내는 반응의 양식에서도

이렇게 애매할 때가 많다.

그 사람의 스타일이 뭔가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맞는데,

지적을 하자니, 정확하게 뭐가 잘못되었는지 표현하기 힘들고.

지적을 안하자니, 그 사람 하나 때문에 여러 사람이 같이 스트레스를 받고, 괜히 눈치보게 되고.


도대체 이들은 뭘까? 알 수 없게 불편하게 만들고, 알 수 없게 눈치보게 만드는 너희들은 도대체 누구냐!

이 기분 나쁘게 애매한 녀석들아! 정체를 밝혀라!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딸이자, 방어기제 연구의 선구자 안나 프로이트도 이 불편한 존재들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이들의 애매함을 멋있게 표현한다.

'신경증적 방어기제'의 소유자들이라고 말이다.

신경증적 방어기제는 미성숙한 방어기제와 성숙한 방어기제의 중간에 있는 애매한 단계다.


정신병적 -> 미성숙한 -> 신경증적 -> 성숙한


안나 프로이트는 방어기제를 이렇게 네 단계로 나누었는데,

신경증적은 딱 세 번째에 속한다.

스트레스나 부정적 상황에 성숙하게 대응하는 사람들과 비교하자니 미성숙하고,

스트레스나 부정적 상황에 진짜 미성숙하게 대응하는 사람들과 비교하자니, 그것보단 성숙하고.


뭐라고 하자니, 그냥 넘어가도 될 문제인 것 같고,

뭐라고 안하자니, 다음에 또 그러면 계속 불편할 것 같고.


딱 이런 위치를 가진 것이 신경증적 방어기제이자, 이 방어기제를 가진 사람들의 특성이다.


신경증적 방어기제를 가진 사람들은 네 가지 특성을 가진다.


첫째, 전위(displacement)이다.

전위란, 스트레스 상황을 묵묵히 참고 견디다가 엉뚱한 곳에서 폭발하는 경향을 말한다.

억눌린 스트레스가 엉뚱한 행동을 만들어낸다는 뜻으로 이해했다면 정확하다.

전위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후, 집에서 화를 낸다.

벽을 주먹으로 쳐서 벽을 깨거나, 자신의 손을 깬다.

자판기를 발로 찬다.

최근에는 다른 곳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와서 반려동물에게 화풀이를 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반려동물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럴거면 키우지를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문을 쾅하고 닫고, 계속 덜그덕 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자신이 화가 났음을 공표한다.

참으로 어린 아이 같은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화가난 어린 아이가 씩씩거리는 것과 뭐가 다른가?


문제는 이렇게 엉뚱한 곳에서 폭발하는 것에 대해 뭐라고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왜냐고? 이들이 엉뚱한 곳에서 폭발하기로 작정하고, 때를 기다리다가 폭발하기 때문이다.

나를 화나게 하거나, 나를 스트레스 받게 한 직접적인 대상은 아니지만,

누군가 하나 잘못하기를 기다렸다가, 그 사람에게 언어적, 정신적 공격을 퍼붓는다.

'한 명만 걸려라'라고 하고 있다가, 한 명이 걸리면, 그 사람은 희생양이 된다.

그것이 가족이 될 수도 있고,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자판기나 책상, 때로는 벽이 될 수도 있다.


Photo by Alexander Grey on Unsplash


이것을 당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뭔가 빌미를 제공한 것은 맞기 때문에

전위된 공격성을 보인 사람에게 뭐라고 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이라면, 같이 생활하기 어렵기에 뭐하고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저렇게까지 과민 반응해야 하나 싶다가도, 그래 내가 말실수를 했지라는 생각도 든다.

정말 미치겠다.

이렇게 애매한 것이 신경증적 방어기제다.


그냥 막 화를 낸 것이라면, 무조건 그 사람 잘못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이성적으로 때를 기다렸다가, 나에게 잘못을 해주길 기다렸다가,

내가 화내도 괜찮은 함정을 파놓고 기다렸다가 화를 내기에 그 사람 잘못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아니라고 하기도 그렇다.


미성숙한 방어기제를 가진 사람들이 직접적인 복수를 하는 것보다는 괜찮아 보이지만,

엉뚱한 곳에 화풀이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충분히 성숙한 반응은 아니다.

그냥 복수를 하는 사람들은 이성을 잃고, 감정적으로 반응하기에 미성숙하지만,

전위를 하는 사람들은 이성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합리적으로 화를 내고,

이성적으로 화를 내고, 이성적으로 짜증을 내기에 뭐라고 하기 어렵게 누군가를 기분 나쁘게 한다.


그러나 이제 알아야 한다. 결국 이것도 성숙한 사람의 태도는 아니다.

신경증적 방어는 미성숙한 것과는 다르지만, 확실히 성숙하지는 않은 반응이다.


둘째, 고립(isolation)이다.

신경증적 방어기제를 보이는 사람들 중에는

스트레스가 예상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 노출된 후, 잠수를 타는 분들이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전화 안되요! 문자 안되요! 어딨는지 몰라요!

완전 연락두절이다.

사실 다른 사람에게 어마어마하게 피해를 준 것은 아니기에 뭐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그냥 숨은 것뿐이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고 또 가고 또 가서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싶어한다.

SNS의 배경화면이 바뀌고, 어딘지 모를 흐릿한 사진이 올라오는 것으로 봐선 살아 있긴 한데,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건지, 일을 하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사람들은 그 누구도 그 사람을 감옥에 가둔 적이 없지만,

자기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고 꽁꽁 숨는다.

감옥문도 스스로 닫는다. 잘 살펴보면, 감옥문이 밖에서 잠그는 방식이 아니라, 안에서 잠그는 방식이다.

우리 주변에 이렇게 자기 스스로 만든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고, 안에서 문을 잠그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뭐라고 할수는 없지만, 건강하지 못한 방어기제임에는 틀림없다.


셋째, 억압(repression)이다.

억압은 다른 별명이 있다. '나 못해 전략'이다.

신경증적 방어기제 중 억압 전략을 활용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무능함의 결정체로 만든다.

주변 사람들은 다 당신이 할 수 있다고, 당신이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당사자는 계속 피한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나는 그런 능력이 없다고, 사람 잘못 봤다고 도망다닌다.

자신의 능력을 꽁꽁 숨기고, 자신의 역량에 촘촘한 쇠그물을 감아 절대로 빠져나오지 않도록 한다.

자신은 큰 사람이 될 수 없다고, 스스로를 억압하고, 탄압하고, 주눅들게 만든다.

기회가 주어져도 자신은 기회를 살릴 능력이 없다 한다.

나 못해라고 말하지만, 진실은 나 안해다.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이다.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능력 발휘를 하기 싫다는 것이다.

스트레스 받기 싫어서, 고생하기 싫어서, 싫은 소리 듣기 싫고, 평가 받기 싫고, 수정하기 싫다는 뜻이다.

다 큰 어른이라, 혼내기도 뭐하지만, 철없는 행동이 이런 것이리라.


마지막 네 번째는 (미묘한) 반동형성(reactance)이다.

반동 형성은 간단히 말해 의도적으로 미묘한 반항을 한다.

반동형성을 하는 사람들은 일부러 그렇게 한다. 무의식적이 아니다.

다 알면서, 보라는 듯이 자발적으로 그렇게 반항한다.


'내일을 어떤 검사를 해야 하니까, 술 먹지 마세요'라고 하면, 술을 먹는다.

그런데 뭐라고 할 수 없게 아주 조금 먹는다. 정말 소주 한잔, 맥주 한캔 정도?

뭐라고 하기도 그렇고, 안 하기도 그렇게 만든다.


'내일 중요한 회의가 있으니까, 일찍오세요'라고 하면, 지각을 한다.

그런데 꼭 뭐라고 할 수 없게 아주 조금 늦는다.

꼭 출석 다 부르자 마자 들어와서, 출석부 한 번 더 보게 만드는 식이라고 할까!

(이 녀석들! 반항하냐!)

지각으로 하기도 그렇고, 안하기도 그렇고 애매하게 만들고, 마음만 불편하게 한다.


'자료를 내일까지 보내주세요'라고 하면, 꼭 기한을 어긴다.

그런데 꼭 살짝 어긴다. 5분이나 10분 정도 늦게 보낸다.

기한을 어겼으니, 무시해야 할지, 받아줘야 할지,

받아주자니 짜증나고, 받아주지 않자니 치사하다는 소리 들을 것 같게 만든다.


이처럼 신경증적 방어를 가진 사람은 자신도 피곤하겠지만,

주변 사람들을 마음에 살짝 살짝 스크래치를 내면서 지치게 한다.


성숙한 척하고 싶지만, 건강하지 않은 방어기제를 가진 이런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에서 가장 힘들고, 어렵고, 짜증나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이국희 아재가 아재 개그, 말장난을 좀 하자면,

신경증적 방어기제는 주변 사람을 참 신경질나게 만드는 방어기제다.


*참고문헌

Vaillant, G. E. (2008). Aging well: Surprising guideposts to a happier life from the landmark study of adult development. Hachette UK.


Vaillant, G. E. (2012). Triumphs of Experience. Harvard University Press.


Vaillant, G. E. (1995). The wisdom of the ego. Harvard University Press.


Vaillant, G. E. (1992). Ego mechanisms of defense: A guide for clinicans and researchers. American Psychiatric Pub.


*표지 그림 출처

Photo by Timothy Eberl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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