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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May 03. 2023

죄책감과 수치심은 길이 다르다

내가 일을 잘못했어요(죄책감) vs 내가 잘못된 사람이에요(수치심)

심리학은 똑같은 상황에서 사람들의 반응 차이를 알아보길 좋아한다.

이러한 반응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연구하는 사람이 바로 심리학자다.


길에서 10만원을 주웠을 때, 크게 기뻐하는 사람이 있고,

그냥 안도하는 사람이 있다.

무슨 차이일까? 외향성과 내향성의 차이일 수도 있고,

10만원을 줍기 전에 아무일도 없었는지, 아니면 10만원 손해보는 일이 있었는지의

차이일 수도 있다.


서로 다른 날에 진행된 노래 경연대회에서

모두 세 번째 순서로 참가하게 되었는데,

어떤 날에는 긴장하지 않으면서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날에는 너무 긴장되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똑같은 세 번째 순서인데, 무슨 차이냐고?

한 날에는 두 번째 순서로 나온 사람이 너무 못했고,

다른 날에는 두 번째 순서로 나온 사람이 너무 잘했다.

또한 하루는 경연대회 전에 평소보다 큰 사이즈로 커피를 먹었고

(그래서 카페인 효과로 인해 심장의 두근거림이 커져서 불안해짐)

다른 날에는 커피를 먹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떤 일을 똑같이 망친 두 사람의 반응에서도 이러한 반응 차이를 볼 수 있다.

한 사람은 어쩔 수 없었어, 아직 때가 되지 않았어, 더 잘 준비하자,

좋은 경험이었어, 이번 일을 통해 배웠어, 실력을 더 키워서 다시 도전하자 등의 반응을 하면서

회복하고, 다시 일어서지만,


다른 사람은 난 왜 이 모양이지, 난 역시 안되는 사람이야, 난 이제 끝장이야,

나 같은 사람이 뭘 할 수 있겠어, 내가 너무 싫어, 내가 다 망쳐놨어 등의 반응을 하면서

더 깊은 우울과 불안, 스트레스의 늪에 빠져 허우적 거리다 이내 가라앉는 사람도 있다.


직장에서 똑같은 프로젝트에 실패한 A씨와 B씨의 반응도 결코 동일하지 않다.


A씨는

'내가 공동체의 일을 망치다니, 책임감이 무겁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이번 일을 만회해야 겠어!'라고

전의를 불태우는 반면,


B씨는

'내가 공동체의 일을 망치다니, 나의 존재 자체가 실수고, 실패다. 회사를 떠날 때가 디었어!'라고 하며

사직서를 작성한다.


도대체 뭐가 다른 걸까? 왜 똑같은 일에 대해 반응이 이렇게 까지 다른 걸까?

여기에는 사람들이 잘 구분하지 않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정서가 개입된다.

바로 죄책감과 수치심이다.


-죄책감은 저지른 잘못에 대해 책임을 느끼는 마음이다.


-수치심은 몹시 부끄러워 다른 사람들을 볼 낯이 없거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마음이다.


죄책감과 수치심의 실제 의미가 이렇게 다르다는 걸 여러분은 알고 있었는가?

모르긴 몰라도, 오늘 처음 알게 된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느끼실 필요는 없다.

심리학 전공자들 중에서도 죄책감과 수치심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좀 더 깊은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죄책감은 단순히 어떤 망쳤다고, 실패했다고, 실수했다고, 손실을 봤다고 느끼는 감정이 아니다.


만약 여러분이 자기 혼자 어떤 일을 했는데, 그 일을 망쳤다고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느낄까?

여러분 혼자서 주식 투자를 했고, 혼자 돈을 날리면 죄책감이나 수치심이 들까?

아니다.

내가 한 일을 아무도 모르고, 아무에게도 피해를 준 일이 없고, 그냥 내가 시작해서 내가 끝냈는데,

무슨 죄책감과 수치심이 있겠는가.

이렇게 혼자 하고, 혼자 망치면, 그냥 좀 기분이 나쁘고, 화가 나고, 우울해질 수는 있어도,

여기서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느끼진 않는다.


Photo by @felipepelaquim on Unsplash


그런데 여러분이 주식 투자에 실패해서 여러분 가족도 같이 피해를 보게 되었다면?

여러분이 회사의 일을 망쳐서 우리 팀원들도 같이 피해를 보게 되었다면?

야구의 마무리 투수가 9회 말 투아웃에서 실투를 해서 홈런을 맞고, 팀이 역전패하게 되었다면?

그렇다. 이럴 경우에는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느낀다.

이처럼 죄책감과 수치심은 내가 공동체의 문제에 깊이 관여했고,

이렇게 내가 깊이 관여한 공동체의 일이 잘못되었을 때 느끼는 서로 다른 감정이다.


그럼 누가 죄책감을 느끼고, 누가 수치심을 느끼는 걸까?

먼저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은 평소 자신을 존중하고, 공동체를 존중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이 사람은 소속감을 가지고, 자신이 여러가지 일들을 잘 통제하고 있다고 느끼면서 행복했던 사람일 것이다.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은 공동체 구성원들과 건강한 관계, 신뢰 있는 관계를 맺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 비난하는 사람보다 자신과 함께 아픔을 공유하고,

해결하기 위해 나서줄 사람이 더 많다고 느끼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렇게 책임감을 느낀 사람은,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게 되고,

더 잘하겠다고, 더 열심히해서 보상하겠다고,

더 열심히 공부하고, 분석하고, 대비하고, 실력과 역량을 쌓고, 혁신하고, 변화해서

다음에는 절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다시 일어선다.

떠나는게 책임이 아니고, 책임을 짊어 지고, 나아가야 책임임을 알고 전진해 나간다.


죄책감은

사과와 용서의 길, 다시 도전해서 만회하고 더 발전시키는 길, 더 열심히 하는 길로 나아간다.


그러나 수치심은 다르다.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은 평소 자신을 존중하지 못하고, 공동체도 존중하지 못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공동체 구성원들과 신뢰 있고, 안정적이며, 건강한 관계를 맺지 못했던 사람일 것이고,

자신이 어떤 일들을 잘 통제하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일 것이다.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은 공동체 구성원들이 다 나를 비난할 것이라고 느끼고,

머릿속으로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얼굴을 상상하면서 불안과 부끄러움을 느낀다.

자신의 아픔을 들어줄 사람이 없고, 외딴 섬에 혼자 있다고 느끼면서, 몹시 외롭고, 또 고독하다.


이렇게 수치심을 느낀 사람은 공동체 구성원과 거리를 두게 되고,

자신은 존재 가치가 없는 사람, 투명 인간 취급받아 마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떠날 준비를 한다. 그리고 심각하면 실제로 세상 자체를 떠나버린다.


과거 메이저리그 야구 선수 도니 무어는 84-86년 동안에 68세이브를 기록했던 최고의 마무리 투수였다.

그러나 1986년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 5차전에서 데이브 핸더슨에게 9회에 홈런을 맞고,

패전 투수가 되었다. 그는 죄책감이 아니라, 수치심을 느꼈다.

그후 도니 무어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고, 가정은 완전히 파탄이 났다.

3년 후인 1989년 그는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실투 하나가 그를 죽인 것이다. 잘못 던진 공 한개에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은 이렇게 될 수 있다.


나는 여러분이 죄책감을 느낄 지언정, 수치심을 느끼진 않았으면 한다.

죄책감의 기반은 행복이요.

수치심의 기반은 불행이다.

죄책감의 기반은 건강하고 신뢰로운 관계요.

수치심의 기반은 경쟁하고 모욕하고 관계다.


수치심이 자신을 자꾸 어둠으로 몰고 간다면, 일단 이렇게 해보자.


첫째, SNS를 끊자.

SNS는 사회 비교를 통해 자신을 더 못난 사람으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

건강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올릴 수 있게 준비되기 전까지는 SNS를 완전히 탈퇴하라.


둘째, 의미 일기를 쓰자.

실패한 일에도, 실수한 일에도, 나쁜 일에도 분명 의미가 있기 마련이다.

또한 이런 나쁜 일들에 대한 의미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 분명히 올 것이다.

그때를 놓치지 말고, 의미 일기를 쓰자.

나쁜 일을 의미 있는 일로, 실수를 의미 있는 일로, 실패를 의미 있는 일로 바꾸는 연습이

당신을 건강하고, 자존감 높고,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우리 삶을 지탱해주는 것은 쾌락이나 재미가 아니라, 의미임을 기억하자.


셋째, 가볍게 운동을 하자.

팔굽혀 펴기 2개부터 시작하라.

스쿼드를 5개만 하라.

계단 오르기를 5분만 하라.

그리고 조금씩 늘려가라.

운동은 우리에게 작은 성취감을 느끼게 하고, 뇌의 혈액을 풍부하게 공급하면서

신체 기능과 정신 기능을 향상시켜 준다.

자신감을 회복하게 해줄 것이고, 세상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넷째, 독서를 하자.

어떤 책이든 좋다. 쉬운 책, 잘 읽히는 책, 정 힘들면 아이들 동화책부터 읽자.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정리되고, 어휘력도 풍부해지고, 표현력도 풍부해질 것이다.

작가들의 풍부한 어휘력을 통해 자신의 감정이나, 상황을 해석하는 능력도 더 풍부해질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게 될 것이고, 들리게 될 것이며,

이렇게 아는 것이 늘어갈수록 나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풍부한 간접 경험을 통해 감정을 컨트롤하여 평정심을 유지하는 능력도 향상되고,

세상을 더 큰 틀에서, 큰 그림에서 보게 될 것이다.

넓은 시야는 독서에서 나온다. 넓은 시야를 가지게 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불안도 감소한다.


다섯째, 방청소를 하자.

내가 일하는 공간, 내가 머무는 방을 정리정돈하는 것은

물리적 공간을 정리하는 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물리적 공간을 정리하면서 마음도 정리할 수 있다.

엄마가 방청소 좀 하라고 하는 것이 그냥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엄마 말을 잘 듣자.

방청소를 해야 마음과 생각도 정리되고,

우리 뇌는 이렇게 마음과 생각이 정리될 때, 안도감과 안전함을 느낀다.

당신이 있는 곳을 정리하는 것은

당신이 있는 곳을 안전하게 만든다는 뜻이며,

마음의 불확실성을 해소한다는 뜻이다.


그대여! 수치심의 길을 가지 마오!


*참고문헌

Grange, P. (2020). Fear less: How to win at life without losing yourself. Random House.


Edmondson, A. C. (2018). The fearless organization: Creating psychological safety in the workplace for learning, innovation, and growth. John Wiley & Sons.


이국희. (2019). 『메모리 크래프트』. 서울: 이너북스.


*표지 그림 출처

Photo by Ethan Syke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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