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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Oct 11. 2023

멀티에 대한 우리 뇌의 진단: 놀고 있는 중 입니다!

내 삶의 주인이 나라면, 전두엽과 해마가 그렇게 놀고 있지 않겠죠

인간은 직관적이고, 감정적이다.

감정적이고 직관적인 인간은 깊이 생각해보고 어떤 일을 하기보다

일단 느낌대로 해버리고 그후에 그에 대한 평가를 한다.


공부나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계획을 세우고, 자신의 환경을 적절히 통제한 후,

하나씩하나씩하면 참 좋을텐데, 이런 성숙한 사람이 되기를 포기하고,

그냥 마구잡이식으로 손에 잡히는대로

머리에 떠오르는대로 해버린다. 본능에 따르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머리에 떠오르는대로 마구잡이식으로 공부나 일을 해버린 인간은

그것이 마구잡이식었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또 싫어한다.

그래서 멋있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자신의 마구잡이식 공부와 일처리를 합리화한다.


그 이름이 바로 멀티이다.

멀티! 멀티태스킹! 우리말로 다중과업처리!

키야~ 멋있다!

마구잡이식으로 이것저것 왔다갔다 했지만,

그걸 멀티라는 멋진 이름으로 포장을 하는 인간의 능력이라니!


그러나 멀티하는 사람들의 인생은 생각보다 멋지지 않다.

정신 없이 왔다갔다 에너지만 낭비하고, 피곤하기만 할 뿐,

뭐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고, 해결되는 것 없이 일이 쌓여가기만 하는데,

어떻게 삶이 멋질 수가 있으랴.

멋진 이야기를 지어내길 좋아하고, 자기 합리화를 부드럽게 해내는 우리의 좌뇌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지어내면서,

괜찮다고, 멀티라고, 마구잡이가 아니라고, 계속 그렇게 해도 된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악마의 속삭임일뿐이다.

좌뇌를 가만히 내버려두면 계속 영양가 없는 자기 합리화와 핑계거리를 찾아주겠지만,

그런 인생은 어딘가 어둡고, 암울하고, 우울한 인생이 되어갈 뿐이다.


좌뇌를 통제해서 소설을 쓰고, 드라마 극본을 쓰는 김은숙 작가나 김은희 작가 같은 사람들을 보라.

무척 절제되고 계획적인 삶을 살면서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

절대로 좌뇌가 지멋대로 이야기를 지어내도록,

의식의 흐름이 자유롭게 아무렇게나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멀티를 못한다고 고백하면서 한번에 하나씩 천천히 작업하지만,

그걸 매일 꾸준히 하기에 굉장한 생산성을 보인다.

인생이 멋지고, 생활이 멋진 사람들은 우리 뇌를 그냥 아무렇게나 내버려두지 않는다.


생각나는대로 핸드폰 봤다가, 게임 했다가, 영상 봤다가, 웹툰 봤다가, SNS 갔다가,

과제 잠깐 하다가, 신문 좀 봤다가 이딴 식으로 하면서

멀티를 했으니 잘하고 있다고 핑계대고 합리화하지 않는 것이다.

이건 그냥 자기 뇌를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고,

내가 나를 통제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같은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고 고백하는 것과 다름 없다.


Photo by Alison Wang on Unsplash


할 것이 너무 많아서 멀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핑계도 마찬가지다.

할 것이 너무 많으면, 우선 순위를 정하거나,

30분 안에 금방 끝내버릴 수 있는 것들을 빨리 다 헤치워버린다거나 하면서

결국 의미있고, 중요하며,

내 사회경제적 지위를 지켜주는 본질적인 일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이런 게 자기 통제이고, 우리 뇌를 통제하는 것이다.


일상에서도 많이 쓰고, 여기저기 많이 튀어나오는 말 중에

'내 삶의 주인은 나다'라는 말이 있다.

옳은 말이다. 이 말의 의미가 잘못쓰이고 있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특히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내 삶의 주인은 나다'라는 말은

나에게 간섭하지 말라. 내 욕구대로, 재미를 쫓아서, 쾌락을 쫓아서 살 것이니, 내버려두라는

의미로 쓰이는 추세다.


그런데 이 말이 그런 뜻이 아니다.

'내 삶의 주인은 나다'라고 했을 때의 실제 의미는

나를 나의 건강한 의식과 의지로 통제하고 있느냐는 의미이다.

내 삶의 주인이 나라면, 나의 건강한 의식과 의지로 내 삶이 통제되고 있어야 한다.

무절제 해서는 안되고, 되는 대로 살아서는 안 되고,

쾌락만 쫓아서는 안 되며, 머리에 떠오는 직관대로 살면 안 된다.

건강한 의식과 의지로 내 삶을 붙잡아 가면서, 나를 올바른 길로 이끌고 나가야

그 삶의 주인이 내가 되는 것이다.


자기 꼴리는 대로 하는 것을 삶의 주인이 되었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데,

그건 그냥 좌뇌의 핑계와 합리화에 휘둘리는 본능적인 삶, 동물적인 삶이지,

건강한 인성과 성숙한 인격으로 자신을 통제하는 나로서의 삶은 아니다.


뇌과학적으로 내 삶의 주인이 내가 되고 싶다면,

계획성을 가지고, 성실하게, 한번에 하나씩 통제된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어야 한다.

의식의 흐름대로 여기저기 왔다갔다 휘둘리면서 사는 삶은

진화 시스템이 심어놓은 본능대로 사는 삶일 뿐 그 사람이 통제하고 있는 삶이 아니다.


심지어 이런 식으로 멀티라고 합리화하면서,

더 정확하게는 자기자신을 기만하면서 이것저것 하면서 공부하고 일하는 척해봐야

우리 뇌에서는 정보처리를 하지 않는다.

딴짓하면서 공부하거나 일할 때 정보처리의 중추인 해마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딴짓하면서 일하거나 공부할 때는 시각정보를 처리하는 선조체라는 부분만 활성화될 뿐,

기억의 중추, 정보처리의 중추는 놀고 있다.

다시 강조해 줄까? 정말 놀고 있다!

멀티하면서 일해봐야 실력도 되지 않고, 역량도 되지 않고, 기억도 되지 않는다.

그냥 놀고 있을 뿐!


이런 식으로 놀고 있으면서 내 삶의 주인은 나라고 주장하지 말라.

내 삶의 주인이 나라면,

해마를 일하게 하고 있을 것이고,

전두엽을 일하게 하고 있을 것이다.

전두엽과 해마를 펑펑 놀게 하면서

내 삶의 주인이 나라니...


그래요... 정말 놀…….

(어이쿠! 전두엽을 사용해서 참아야지!)


*참고문헌

Levitin, D. J. (2014). The organized mind: Thinking straight in the age of information overload. Penguin.


Levitin, D. J. (2020). Successful aging: A neuroscientist explores the power and potential of our lives. Penguin.


*표지 그림 출처

Photo by National Cancer Institut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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