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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Oct 18. 2023

다 기억하지도 못할 책, 읽어 뭐하냐는 핑계에 답하다

오래도록 인간답게 살고 싶다면, 아날로그 독서를 멈추지 마세요

뭔가 이미 잘 하고 있는 사람들과 안하고 있는 사람들을 구분하는 핵심적 특성이 있을까?

이를테면, 공부를 계속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과 안하는 사람,

글을 계속 열심히 쓰고 있는 사람과 안하는 사람,

그림을 계속 잘 그리고 있는 사람과 안하는 사람,

연습을 계속 잘 하고 있는 사람과 안하는 사람들의 명쾌하게 나눠주는 심리같은 것 말이다.


궁금해서 조사를 좀 해봤더니, 답이 나왔다. 복잡하고 길지 않은 답이었다.

'핑계'


사실 이건 심리학 연구에서 처음 발견한 것도 아니다.

심리학 연구 중에는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재검증하는 경우가 많고,

할머니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다시 확인하는 경우가 많은데,

'핑계'라는 답도 마찬가지다.


인생 살면서 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

사회경제적 지위가 평균 이상되는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을

심리학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체계적으로 검증해낸 것 뿐이다.


짧게 설명하자면, 뭔가 하려는 것에는 핑계가 없지만,

뭔가 안하려고 하는 것에는 핑계가 무진장 많다는 것.


공부하는 사람은 핑계가 없다. 꼭 공부 안하는 사람들이 핑계가 많다.

일하기, 글쓰기, 그림 그리기, 연습하기, 작곡하기, 만들기, 코딩하기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핑계가 없다.

꼭 이런 걸 안하는 사람들이 핑계가 많다.

시간도 없고, 방해도 많고, 아프고, 힘들고, 날씨도 안따라주고, 스마트폰 배터리도 없고,

필통이 없고, 책을 다른 것으로 들고 오고, 안경을 안 쓰고 오고, 지갑을 놓고 오고, 이메일을 잘못보내고,

강아지가 과제를 물어 뜯어버리고.

이런 모든 핑계들은 뭔가 안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전설들이다.

(이런 걸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고 하지)


책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책을 잘 읽는 사람은 핑계가 없다.

꼭 책을 안 읽는 사람들이 오만가지 이유를 만들어낸다.

자기들 딴에는 굉장히 과학적이라고 생각하는 핑계도 있다.

이 과학적인 핑계는 심지어 책을 읽는 사람들을 불쌍하다는 듯이 말하기도 한다.

뜸들이지 말라고? 알았다.


이 분들은 자기 자신을 이렇게 합리화시킨다.

"책 읽는다고 내용을 다 기억하나요? 기억하지도 못할 것 읽어서 뭐해요?"

과학적인 자기 합리화를 통해 책을 절대로 읽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결의가 느껴진다.


그리고 이것을 독서하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무기로 전환한다.

어떻게? 이렇게!

"그거 읽으면 다 기억하나요? 아니라고요? 그럼 뭐하라 읽으세요? 그냥 멋있어 보이려고요?"

자기 스스로 책을 읽지 않게 할 뿐아니라,

책을 잘 읽던 사람도 힘빠지게 해서 책 못읽게 만드는 굉장한 공격이다.

물귀신 작전이라고나 할까.


책을 잘 읽고 계신 분들! 정신 차리자!

이런 공격은 과학을 가장하고 있지만, 결국 사이비 미신일 뿐이다.


일단 기억도 못할 것인데, 책을 왜 읽어야 하냐고 자신을 설득하신 분들께 고한다.

책은 내용을 기억하기 위해 보는 것이 아니다.

아니 도대체 누가 책을 기억하기 위해 본다고 했는가?

공부라고 하면, 무작정 외우는 것 생각하니까.

책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 것뿐이지 않을가?

책은 외워야 하고, 외우지 못할 것이면, 시간낭비다라는 논리는 그 전제부터 틀렸다.


책은 외우려고 보는 것이 아니다.

책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인간의 기억력, 더 정확하게는 기억 검색 능력을

분산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다.

머릿속에 일일이 기억하는 것보다는 어디에 지식이 있는지만 알고 있으면,

더 효과적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Photo by Bethany Laird on Unsplash


책 내용을 일일이 다 기억할 것이라면, 사실 책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

구전으로 암송하면서 기억하면 될일이다.

책은 기억의 부담과 기억 검색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외부 기억 장치라는 것을 '기억'하자!

책 내용을 외워야 한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착각이자, 이상한 자기 최면이 아닐 수 없다.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겠다.

책은 기억하기 위해 읽는 것이 아니다.

그럼 왜 공부 좀 했다는 사람들은 자꾸 사람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하냐고?

기억 이외의 다른 이유가 뭐가 있냐고?

너무 많다.


첫째, 책은 우리 뇌의 검색 기능을 늘 활발하게 유지하기 위해 매일 읽어야 한다.

인간 기억의 문제는 망각의 문제라기 보다 검색의 문제이다.

쉽게 말해 여러분이 뭔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잊어버려서가 아니라,

검색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인터넷 검색창에 좋은 검색어를 입력하면 검색에 성공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검색에 실패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여러분이 매일 독서한다면, 머리가 팍팍 돌게 된다.

책을 읽는 사람의 뇌는 혈액과 산소가 골고루 공급되면서 머리가 아주 잘 돌아간다!

그래서 검색 성공률이 매우 높아진다.


둘째, 집중력과 끈기를 훈련시키고 증가시키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책 읽기이다.

집중력이 처음부터 강한 사람은 없다. 집중력이 강한 모든 사람은 훈련해서 강해진 것이다.

장한나 지휘자처럼 음악 악보를 읽고 해석하고 연주하는 것을 통해 집중력을 훈련한 사람도 있지만,

장한나가 아닌 더 많은 평범한 사람들은 더 저렴하고, 쉽게 접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집중력을 훈련해야 한다.

그것이 독서다. 조선시대에 양반들이 글공부를 했던 것은 글을 외우려고 했다기 보다는

집중력과 끈기를 기르는 마음의 수양 성격이 더 강했다.

글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스리고,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통제했던 것이다.

그렇게 매일매일 읽고 또 읽다보면, 내용은 자연스럽게 외워진다.

더 중요한 것은 매일매일 집중하고 마음을 다스리는 습관이었지, 글내용을 외우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셋째, 독서는 다양한 지식과 생각의 융합을 촉진한다.

책 읽기의 시간은 우리 뇌에 들어 있는 내용들을 정리하는 시간이다.

우리 뇌 입장에서 볼 때, 지금 읽고 있는 내용을 기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립하거나 통합하여 새로운 생각을 해내는 것이다.

이런 일이 책을 읽을 때 머리가 팍팍 돌아가면서 이루어진다.

가만히 있을 때나 잘 때도 이런 일이 이루어지지만, 계속 가만히 있거나 잘수는 없다.

깨어서 뭔가 하면서 생각이 정리되고, 뭔가 하면서 새로운 지식이 창출되어야

이 세상에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살 수 있는 것이다.

독서를 매일할 때마다 이런 생각의 통합과 새로운 지식의 창출이 이루어진다.


넷째, 독서는 생각의 흐름을 이어가는 훈련을 시켜준다.

책은 흐름이 있다. 작가가 전개한 논리의 흐름, 이야기의 흐름이 존재한다.

이런 것을 계속 읽다보면, 우리 뇌에서도 자연스럽게 일관성 있게 글을 쓰는 법

일관성 있게 말을 하는 법이 발전한다.

다음에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어색해한 경우가 많은가?

독서가 이런 문제의 해결책이다.


다셋째, 독서는 치매를 방지해준다.

치매는 노인이 되면 어쩔 수 없이 걸려야 하는 병이 아니다.

치매는 더이상 뇌를 쓰지 않아 발생하는 병이다.

치매는 공부를 손에서 놔버린 사람들에게 발생하는 병인 것이다.

이는 나이 들어서도 계속 뭔가 배우고,

책을 읽는 사람들은 치매 발병률이 거의 0에 가깝다는 연구결과들을 통해서도 증명되었다.

독서는 뇌에 혈액을 공급시키고, 산소를 풍부하게 공급하는 가장 손쉬운 수단 중 하나다.

날씨 좋은 날 산책을 하면서 한 손에는 책을 들고 읽는다면 금상첨화겠다.

약한 운동을 통해 혈액 순환을 도우면서 책을 읽어 뇌를 활성화시키니 말이다.


어떤가?

이래도 책을 읽지 않을 것인가?


기억도 못할건데 왜 읽어야 하냐는 핑계는 그만하자.

독서는 인간이 인간되기 위해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죽을 때까지 인간됨을 유지하고 멋있게 살다 가고 싶다면,

책을 읽을 것을 권한다.


*참고문헌

Levitin, D. J. (2020). Successful aging: A neuroscientist explores the power and potential of our lives. Penguin.


Baron, N. (2021). How we read now: Strategic choices for print, screen, and audio. Oxford University Press.


*표지 그림 출처

Photo by Blaz Phot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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