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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Mar 08. 2023

저 사람, 예전엔 그렇지 않았어요

신뢰와 협력이 필요 없어진 사람들을 조심하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든 게 아쉽다.

단돈 천 원이 아쉽고, 만 원이 아쉽고, 오만 원이 아쉽다.

늘 부족하다. 항상 더 필요하다. 늘 목마르고, 늘 기본적인 욕구가 충분히 충족되지 않는다.


통장의 잔고는 늘지 않고, 늘 마이너스와 '0' 사이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한다.

뉴스에서 금리를 올린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한숨이 나오고,

이번에는 어떤 것에서 소비를 줄여 이자를 내야하나 고민이 시작된다.


그리고 이렇게 고단한 삶의 무게에 시달리다 보면,

한 가지 철학적 사고에 도달하게 된다.


'그래. 나는 혼자서 버틸 수가 없구나.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가 없구나.

만 가지 일이 있다면, 만 가지가 다 아쉬운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고,

실질적인 도움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언제든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태여야 하겠구나.'


꼭 철학자들만 이런 생각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풍파를 헤쳐나가고 있는 모든 개인은 철학자가 된다.

본인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역경을 거쳐오는 동안 철학적 사고가 생겨나고,

세상을 보는 시각을 갖추게 된다.


그리고 이 철학적 사고는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물론 이 다음 단계는 무의식적일 가능성이 높다.

지극히 자동적으로, 본능적으로, 우리 뇌에 세팅되어 있는 프로그램에 따라

이런 식의 (의식적 혹은 언어적) 생각을 하기라도 한 듯 움직인다.


궁금한가?

바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겠는가라는 사고이다.

누군가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이 모든 것이 아쉬운 보통 사람의 삶에서 중요한데,

나는 어떻게 타인이 내 일에 협력하게 할 수 있을까?


이건 정답이 있는 문제다.

'신뢰'

이것이 정답이다. 타인의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신뢰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하고, 모든 언행심사에서 신뢰의 표시들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친절해야 하고, 감정 조절을 잘해야 하고, 분노를 공격적으로 표출해서는 안되며,

말을 가려서 해야 하고, 타인을 칭찬하거나 때로는 아첨할 줄도 알아야 하며,

능력 있고 실력 있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언제든지 사회에 기여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알려야 한다.

때로는 타인을 위해 내 시간을 내주기도 해야 하고,

거짓말이 들통나거나, 타인에게 손실을 주는 행동을 해서 평판이 나빠져서는 안 된다.

말과 행동에 늘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 생각하고,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


행복에 대한 중요한 질문에

'위급한 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가족, 친구, 지인, 이웃 등이 있는가'라는

질문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개인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위급 상황에서 타인의 협력이 절실한데,

내 자신이 신뢰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하면, 협력을 얻지 못하고, 불행해지기 십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반대로 내 자신이 신뢰 있는 사람이 되면, 위기에서 타인의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고, 행복을 지킬 수 있다.

질문 하나에 이런 엄청난 의미를 담아낼 수 있다니 심리학자들의 능력이 참으로 놀랍다.


Photo by Jorge Vasconez on Unsplash


그런데 말이다.

만약에 이렇게 모든 것이 아쉽기에, 모든 것에 협력이 필요하기에,

타인에게 친철하고, 신뢰 있게 행동하던 사람이

더 이상 아쉽지 않게 되면 어떻게 될까?

세월이 지나면서 돈을 많이 벌게 되었거나, 엄청난 권력을 가지게 되었거나,

사회경제적 지위의 상승으로 풍족한 자원을 지니게 되면 어떻게 될까?


폴 피프 연구팀이 관심을 가진 것이 바로 이것이다.

젊은 시절 중고로 산 소형차를 끌고 다니던 사람이

세월이 흘러 돈과 권력을 가지게 된 후, 최고급 외제차를 끌고 다니게 되었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변할까?


폴 피프 연구팀은 교차로로 나갔다.

보행자가 횡단보도에 서 있으면, 반드시 일단 정지하거나 속도를 줄여야 하는

법규가 적용되는 지역의 교차로였다.

관찰이 시작됐다.

어떤 차들은 보행자가 횡단보도에 서 있을 때, 속도를 줄여 정지했지만,

어떤 차들은 보행자가 횡단보도에 서 있을 때, 더 빠른 속도도 질주하여 교차로를 통과했다.

그리고 여기에는 체계적인 규칙이 있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일수록 규범을 더 잘 지키고, 보행자를 보호하는 행동을 했지만,

상대적으로 비싼 고급 외제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일수록 규범을 무시하고,

보행자를 고려하지 않는 행동을 한 것이다.


중고로 산 소형차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은 원래 착한 사람들이고,

최고급 외제차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은 원래 나쁜 사람들이라고?

그렇지 않다.

폴 피프는 추가적으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지위가 높다는 주관적인 느낌을 가지면 공동체의 신뢰를 저버리기 쉬워지고,

반대로 부와 지위가 낮다는 주관적인 느낌을 가지면 공동체에 신뢰감을 주는 행동을 하게 된다.


다른 말로 하면, 최고급 외제차를 끌고 다니는 사람은 원래 그런 것이 아니라,

높은 부와 권력을 가지게 된 것이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고,

소형 중고차를 끌고 다니는 사람은 원래 그런 것이 아니라,

낮은 부와 권력을 가진 것이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다.


풍부한 자원, 권력, 힘, 돈, 지위는 더이상 타인의 협력이 필요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러한 무의식적인 지위와 권력의 신호는 그 사람을 변하게 할 수 있다.

부와 권력을 가지기 전에는 선하고, 친절하고, 신뢰를 주는 사람이었는데,

부와 권력을 가지면서 더 이상 선할 필요가 없고, 친절할 필요가 없고, 신뢰를 줄 필요가 없게 되자,

이러한 이타심과 윤리성을 내던져 버린다.


그러나 이렇게 내던지 이타심과 윤리성 때문에 공동체로부터 강한 처벌을 받아

권력과 지위와 돈을 잃어버리면,

다시 친절해지고, 선해지고, 신뢰를 주는 행동을 하게 된다.


평범한 대중들에게 권하고 싶다.

돈과 권력,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서 협력이 필요 없어진 사람들을 조심하라.

절대적인 힘은 절대적으로 부패할 수 있음을 상기하자.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권한다.

돈과 권력이 없는 것처럼 살아라.

신뢰가 여전히 필요하고, 협력이 여전히 필요한 것처럼 살아라.

있을 때 잘해야 한다.


*참고문헌

Piff, P. K., Stancato, D. M., Côté, S., Mendoza-Denton, R., & Keltner, D. (2012). Higher social class predicts increased unethical behavior.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09(11), 4086-4091.


Gino, F., & Pierce, L. (2009). The abundance effect: Unethical behavior in the presence of wealth. Organizational Behavior and Human Decision Processes, 109(2), 142-155.


Vohs, K. D., Mead, N. L., & Goode, M. R. (2006). The psychological consequences of money. Science, 314(5802), 1154-1156.


*표지 그림 출처

Photo by Aubrey Odom-Mabe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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