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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Mar 15. 2023

지금 아픈 사람은 아픈 사람의 마음을 모른다

아파 본 후 괜찮아진(잘 지내는) 사람과 지금 아픈 사람은 다르다!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의 마음을 안다'라는 말과

'아파 본 사람이 아픈 사람의 마음을 안다'라는 말은 같은 말일까 다른 말일까?


당신은 평소에 이 두 가지 문장을 얼마나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는가?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 마음을 안다잖아'라는 말을

'아파 본 사람이 아픈 사람 마음을 안다잖아'라는 말과 정확하게 구분해서 쓰고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혹시 아픈 사람이나 아파 본 사람이나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이 되는가?

왜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것에 딴지를 거냐고 말하고 싶은가?

이것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위에 제시한 두 문장 중 하나는 완전히 잘못된 문장이기 때문이다.

하나는 맞는 이야기지만, 다른 하나는 과학적 사실과 정반대이기에 사용할 수 없는,

더 나아가 사용하면 안 되는 문장이다.


심리학자 아닐까봐, 또 직업병이 도진 거냐고? 그렇게 말해도 할 수 없다.

전문가와 비전문가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르다.

일처리 속도가 다르고, 정확도가 다르며, 퀄리티가 다르다.

생각이 다르고, 사용하는 용어가 다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다른 것은 바로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한 세밀한 범주화,

비전문가들이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개념들에 대한 세밀한 구분과 나눔이 다르다.


비전문가들이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고, 거기서 거기인 줄 아는 것이지만,

전문가들이 볼 때는 매우 달라서 절대로 함께 사용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먼저 '아파 본 사람이 아픈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문장의 과학적 사실 여부에 대해 이야기해 주겠다.

이것은 맞는 말이다. 과학적 사실이며, 경험적으로 참이다.

공감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가. 이 문장이 나타내는 것은 공감, 연민을 말한다.

과거에 아파봤기 때문에 지금 아픈 사람의 심정을 이해한다.

과거에 힘들어 봤기 때문에, 너무 고생스러운 경험이 있기 때문에,

지금 고생하면서 힘들어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여전히 좀 더 세밀하게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긴 하다.

단순히 '아파 본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것보다

'과거에 아파 봤으나, 지금은 괜찮아진 사람'이라고 표현해서 정확할 것이다.

'아파 본 사람'이라고만 써도 행간을 읽어 낼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 있으니,

이렇게 세세하게 정황하게 늘어놓지 않을 뿐이다.

'아파 본 사람'이라고 쓰고,

'아팠으나 지금은 괜찮아진 사람'이라고 읽는다.


Photo by Obie Fernandez on Unsplash


관계의 문제에서 어려움을 겪어본 사람, 사랑하는 연인에게 배신 당해 본 사람,

믿었던 사람에게 이용 당해 본 사람, 나쁜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따돌림을 당해 본 사람,

무시 당해봤고, 멸시 받아 봤고, 거절 당해봤던 사람,

온갖 종류의 사회적 배제(사회적 배척)을 경험하면서 아팠했던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괜찮아 졌다. 비온 뒤에 땅이 굳듯이 더 튼튼해지고, 단단해지고, 더 강해졌다.

이제는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무시 당하지 않고, 거절 당하지 않고, 따돌림 당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존중하고, 신뢰하고, 응원하고, 지지한다.


이런 사람들은 타인에게 공감하고, 연민을 느끼면서 그들에게 친절하고, 도우려한다.

이렇게 공감하고 이해하는 사람들

타인의 현재 상황을 자신이 겪었던 과거로 잘 대응시키는 사람들은 이타적이고, 친사회적이다.

이들의 이타적 행동과 친절은 또 다른 친절과 이타적 행동을 낳아 계속 더 좋은 상태로 이끈다.


다음으로 넘어가자.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문장의 과학적 사실 여부를 알려줄 차례다.

결론적으로 이 문장은 완전한 거짓이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적이 없다. 심지어 과학적으로는 정반대의 사실이 증명되었다.


더 설명을 해달라고? 좋다.

현재 아픈 사람은 절대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한다.

지금 죽을 것 같이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은 타인의 고통을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아픔과 고통과 배신과 사회적 배제가 현재 진행형인 사람은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타인의 눈으로 그 상황을 헤아리는 능력이 마비상태가 된다.


생각해보라. 나도 지금 죽게 생겼는데, 타인의 아픔이 보이겠는가?

지금 힘들고 고통스러운 사람은 철저하게 이기적이 된다.

타인에게 친절하지 않고, 경계한다.

힘든 사람은 날카롭고, 예민하다. 날이 서있다. 언제든 공격할 준비가 되어 있다.

방어적이 되고, 언제든 폭발할 준비를 해놓은 폭탄과 같이 된다.

이들은 베풀지 않는다. 나누지 않는다.

받으려고 하고,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이렇게 힘든 나에게 모든 사람이 잘 해주어야 하는데,

잘해주지 않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잘해주면 마땅히 받을 것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언행과 태도 속에서 또 다른 사회적 배제의 고통이 따른다.

거부와 거절, 무시와 멸시가 또 발생한다. 악순환이 이어진다.

반사회적 행동이 또 다른 반사회적 행동을 유발함으로써 상황이 계속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다.


(과거에) 아파 본 사람은 아픈 사람의 마음을 안다.

그러나,

(현재) 아픈 사람은 아픈 사람의 마음을 모른다.


*참고문헌

Twenge, J. M., Baumeister, R. F., DeWall, C. N., Ciarocco, N. J., & Bartels, J. M. (2007). Social exclusion decreases prosocial behavior.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92(1), 56-66.


Lee, G. H., & Park, C. (2019). Social exclusion and donation behaviour: What conditions motivate the socially excluded to donate?. Asian Journal of Social Psychology22(2), 203-212.


Twenge, J. M., & Baumeister, R. F. (2005). Social Exclusion Increases Aggression and Self-Defeating Behavior while Reducing Intelligent Thought and Prosocial Behavior. In D. Abrams, M. A. Hogg, & J. M. Marques (Eds.), The social psychology of inclusion and exclusion (pp. 27–46). Psychology Press.


*표지 그림 출처

Photo by Ben Whit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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