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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Mar 22. 2023

힘 있는 자의 거짓말이 진실처럼 들리는 이유

힘 없는 자가 억울한 누명을 쓰는 이유

2010년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의

사회심리학자 다나 카니(Dana Carney)는 재미있는 실험을 하나 수행했다.


이름하여 거짓말 탐지 실험!

거짓말만으로도 충분히 재미 있는데,

거짓말을 식별해내는 실험이라니 흥미진진하다!


심지어 실험 과제는 무엇이었는지 아는가? 도둑질이다!

완전 대박.

실험실에서 도둑질을 하게 하다니,

아마 연구윤리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드디어 실험실에 참가자가 도착하고, 어떤 방에 들어간다.

어떤 방에 들어간 참가자는 둘 중 한 조건에 배정된다.

한 조건은 열심히 과제를 수행한 후, 옆 방에 가서 돈 봉투를 훔치게 하는 조건이다.

리얼한 상황 연출을 위해 실제로 돈이 들어 있는 봉투를 사용했고,

참가자가 가지도록 했다.


다른 조건은 그냥 어떤 방에서 열심히 과제를 수행하는 조건이다.

이 조건에서 돈 봉투를 훔치라는 지시는 없었다.

여기까지가 실험의 1단계다.


이제 실험의 2단계가 시작된다.

실험실에는 1단계에 참여했던 참가자 외에 한 명이 더 와있다.

1단계에 참여했던 사람을 A, 2단계에서 새롭게 등장한 사람을 B라고 부르자.


B의 역할은 간단하다. 수사 기관에서 나온 수사관처럼 취조를 시작하는 것이다.

어떤 취조냐고? A가 옆 방에서 돈 봉투를 훔쳤다는 것에 대한 취조다!


'당신이 옆 방에서 돈 봉투를 훔쳤죠? 다 알고 있습니다. 자백하세요.'


그럼 A는 이제 어떻하냐고?

사실 A는 B와 대면하기 전에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연구자에게 들은 상태다.

그리고 A의 역할은 무조건 아니라고 잡아 떼는 것이다.

이때 돈 봉투를 훔친 A는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것이고,

돈 봉투를 훔치지 않은 A는 진실을 이야기하게 된다.

여기서부터 돈을 훔친 A는 A1, 훔치지 않은 A는 A2라고 부르자.


취조가 끝나면, B는 A가 돈을 훔친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정한다.

만약 B가 A1이 돈을 훔친 사람이라는 것을 맞히면, A1은 자신이 훔친 돈을 빼앗긴다.

그러나 B가 A1이 돈을 훔친 사람이라는 것일 맞히지 못하면, A1은 훔친 돈을 그대로 가질 수 있다.

반대로 B가 A2가 돈을 훔친 사람이라고 오해하면, A2는 자신이 받게 될 참가비 중 일부를 빼앗긴다.

B가 A2가 돈을 돈을 훔치지 않았다는 것을 맞히면, A2는 자신이 받게 될 참가비를 보존한다.


즉 A1은 거짓말이 들통나지 않아야 이득이고,

A2는 진실이 받아들여져야 이득이다(손해보지 않는다).


Photo by Jelleke Vanooteghem on Unsplash


과연 B는 A1의 거짓말을 제대로 판단해냈을까? 또한 A2의 진실을 제대로 판단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B의 판단은 매우 부정확했다.

A1의 거짓말을 제대로 식별해내지 못했고, A2의 진실을 거짓이라고 오해했다.

그리고 이러한 부정확성에 체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인있었다.

뭐냐고? 바로 A1과 A2가 1단계에서 과제를 수행했던 '어떤 방'의 종류였다!


이 실험에는 한 가지는 조작이 더 있었다.

1단계에서 A가 과제를 수행하는 방의 종류와 수행하는 과제의 종류가 달랐던 것이다.

어떤 A는 넓고 호화로운 사무실에 배정되었고, 직원들에게 연봉을 할당하는 업무를 수행하게 했다.

이는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사람, 힘 있는 사람, 권력 있는 사람이 되어보게 하는 조건이었다.

다른 A는 좁고 궁색한 사무실에 배정되었고, 단순하고 잡다한 업무를 수행했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사람, 힘 없는 사람, 권력 없는 사람이 되어보게 하는 조건이었다.


이 조건을 포함하면, 총 4가지 조건이 생긴다.

힘있는 A1, 힘없는 A1

힘있는 A2, 힘없는 A2

그리고 다시 B가 등장한다.

B는 누구에게 속은 걸까? 또 누구를 오해한 걸까?


먼저 B는 힘있는 A1에게 속았다.

즉 돈 봉투를 훔치기 전에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상황을 체험했던 사람들에게 속았다.

힘있는 A1은 거짓말을 하면서도 불안해하지 않았고, 표정에도 변화가 없었으며,

목소리에 어떤 떨림이나 망설임도 없었다.

자신은 하지 않았다고 단호하게 말했고, 논리적 이유나 합리적인 이유를 대기까지 했다.

B는 '힘있는 A1'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압도되어 그가 진실을 이야기한다고 판단했고,

'힘있는 A1'은 훔친 돈을 지켜냈다!

사회적으로 보면, 힘있는 A1은 법적 처벌을 피해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B는 힘없는 A1에게는 속지 않았다.

돈 봉투를 훔치지 전에 낮은 지위, 낮은 권력을 체험했던 사람들에게는 속지 않았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힘없은 A1은 B를 속이지 못했다.

목소리는 떨렸고, 불안해했으며, 표정 변화가 심하고, 망설였다.

논리적인 이유나 합리적인 이유를 대는 것에 서툴렀고 당당하지 못했다.

B는 '힘없는 A1'의 이런 모습에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확신했고, 그 판단은 옳았다.

'힘없는 A1'는 훔친 돈을 빼았겼다.

사회적으로 보면, 힘없는 A1은 법적 처벌을 받았다.


이제 진실을 말하는 A2에게 가보자.

B는 어떤 A2를 오해했을까? 앞의 결과를 잘 이해했다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맞다. B는 힘있는 A2는 오해하지 않았다.

그의 진실은 실제로 진실처럼 들렸다.


그러나 B는 힘없는 A2를 오해했다.

힘없는 A2는 자신은 돈 봉투를 훔치지 않았음에도 마치 훔친 사람처럼 불안해했다.

힘들어 했고, 표정 변화가 심했다.

이런 모습을 관찰한 B는 힘없는 A2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고,

A2가 돈봉투를 훔쳤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렇게 오해받은 힘없는 A2는 하지 않은 일 때문에 오해를 받아

자신이 받은 실험 참가자비 중 일부를 다시 토해내야 했다.

오해를 받아 손해를 보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다나 카니 교수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힘있는 자의 진실은 더 진실처럼 들린다.

심지어 힘있는 자의 거짓도 진실처럼 들린다.


하지만 힘없는 자의 진실은 거짓으로 오해받아 억울한 누명을 쓰고,

힘없는 자의 거짓은 거짓임이 너무 쉽게 탄로난다.


힘 있는 자는 능숙한 연기자요, 거짓말쟁이요, 포커 페이스가 되지만,

힘 없는 자는 미숙한 연기자요, 거짓말을 못하는 어린 아이가 된다.


*참고문헌

Carney, D. (2010). Powerful people are better liars. Harvard Business Review, 88(5), 32-33.


*표지 그림 출처

Photo by Jametlene Reskp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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