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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Mar 29. 2023

한 번 더 살피기: 선행과 악행 모두 한 번 더 보자

신뢰 검증과 관대한 팃포탯

선의가 선의로 돌아오지 않고, 악의로 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당황한다.

당황함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선의를 악의로 돌려준 그 사람에 대해 생각하다가, 마침내 분노한다.

그리고 그 분노의 끝은 받은 악의를 또다른 악의로 돌려주거나,

다시는 그 사람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연락을 차단하고, 그 사람에 대한 평판을 나쁘게 하며, 그 사람에게 제공했던 기회를 몰수한다.


심하면 그 사람을 해당 공동체에서 완전히 매장시킬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서 실행할 수도 있다.

배신자, 뒤통수를 치는 자, 배은망덕한 자, 사기꾼, 화장실 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너무 다른 자,

모든 것을 다 내어줄 것 같이 하다가 원하는 것을 얻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른 척 하는 자 등등

온갖 수식어를 붙여서 그 사람이 다시는 복귀하지 못하고, 기회를 얻지 못하게 만든다.


눈에 눈, 이에는 이다.

배신자에게는 처절한 복수와 처벌 뿐이다.

배신자의 말로는 배신의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이다.


되갚음.

이것은 인간 세상에 가장 많이 적용되는 규칙이다.


나에게 준 자에게는 똑같이 준다.

나에게 호의를 베푼 자에게는 똑같이 호의를 베푼다.

나에게 이익을 준 자에게는 똑같이 이익을 얻게 해준다.


그러나 나에게 뺏은 자에게는 똑같이 뺏는다.

상처 입힌 자에게는 상처 입힌다.

손해를 입히면 똑같이 손해를 입힌다.


받은 만큼 똑같이 갚아준다.

팃포탯(Tit for tat), 되갚음의 원리이자 호혜성의 원리는 만국 공용이다.

공동체를 형성하고, 신뢰를 기초로 협력을 하면서 살아가던 인류에게 팃포탯은 사회적 규범이었다.

타인에 대한 신뢰,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지키는 자에게는 공동체가 계속 기회를 준다는 것을 알려주고,

타인에 대한 신뢰,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는 자에게는 공동체가 모든 기회를 박탈한 다는 것을 알려준다.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권선징악의 주제는 모두 팃포탯이다.

선은 선으로 보상을 받고, 악은 악으로 처벌을 받는다는 원리를 이야기를 통해 알려주는 것이다.

남들이 보지 않는 것 같은 곳에서라도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착한 일을 하면,

결국에는 알려지고, 그에 대한 보상을 받는다.

인간이 모르더라도 신이 다 보고 계시고, 갚아 주신다.

그러나 남들이 보지 않는 것 같은 곳에서 악을 행하면, 그런 악도 결국엔 알려지고, 벌을 받는다.

인간이 몰라도 신이 다 보고 계시고, 악을 악으로 보응하신다.


Photo by Cytonn Photography on Unsplash


그런데 말이다.

언뜻보면 상식적이고, 그래서 의심할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이 팃포탯의 원리,

권선징악의 원리, 호혜성의 원리가 공동체에 가장 이득이 되는 규범이 맞을까?


무슨 말이냐고?

어떤 사람이 선한 행동을 했는데, 그 선한 행동이 의도치 않게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 선한 행동에 보상을 주는 것이 맞을까?

심지어 의도가 악했는데, 그 의도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선한 일을 한 것처럼 되었다면?

그 사람의 속을 훤히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이런 것을 알 수 없는데,

그 사람의 선행을 있는 그대로 믿어주는 것이 좋을까? 한 번은 더 검증해 봐야 하지 않나?

신뢰를 한 번만 검증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두 번, 더 좋게는 세 번 정도 검증해봐야 안전하지 않을까?


악행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이 배신을 하고, 선을 악으로 갚는데, 그것이 실수였다면?

그 사람의 의도는 그것이 아니었는데, 어떤 우연이 겹쳐서 악을 행한 것처럼 오해가 발생한 것이라면?

또한 사실 아무런 의도가 없이 한 일이었는데,

그 일에 여러가지 우연이 중첩되면서 악행을 한 것처럼 되었다면? 억울할 것이다.

그럼 이 사람의 악행을 있는 그대로 벌하기 보다는 한 번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을까?

실수했을 가능성, 우연일 가능성, 오해이고 억울할 가능성을 염두에 주고,

한 번은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의 마틴 노웍과 칼 지그문트가 궁금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과연 팃포탯이 가장 좋은 길일까? 단기적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봤을 때, 공동체에 가장 이익을 주고,

공동체를 가장 풍성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과연 되갚음일까?

수십만번의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를 통해 그들이 얻은 결론을 무엇이었을까?


되갚음은... 최적의 전략이 아니었다!

선행을 무조건 되갚는 것, 배신을 무조건 되갚는 것!

이 두 가지는 모두 최적의 전략이 아니었다.

선행을 두 번 정도 관찰함으로써 그 선의가 실수나 우연이 아님을 검증하는 것,

배신자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줌으로써 배신이 실수나 우연이었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

배신자가 마음을 돌이켜 선한 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더 주는 것,

신뢰는 검증하고, 관대하게 팃포탯을 적용하는 것,

이것이 최적의 전략이었다.


신뢰 검증과 관대한 팃포탯을 실시하는 공동체가 장기적으로 가장 큰 이익을 얻었으며,

신뢰를 검증하지 않고, 팃포탯을 있는 그대로 실시하는 공동체는 그 다음의 이익을 얻었다.

그 되갚음은 최고의 전략이 아니라, 차선의 전략이었던 것이다.


단 한 번의 선행을 믿기보다 한 번은 더 살펴보라.

단 한 번의 악행을 처벌하기 보다 한 번은 기회를 주라.


이 전략이 공동체의 미래에 더 큰 번영과 이익을 안겨줄 것이다.


*참고문헌

Nowak, M., & Sigmund, K. (1989). Oscillations in the evolution of reciprocity. Journal of Theoretical Biology137(1), 21-26.


Nowak, M. A., & Sigmund, K. (1992). Tit for tat in heterogeneous populations. Nature355(6357), 250-253.


Nowak, M., & Sigmund, K. (1993). A strategy of win-stay, lose-shift that outperforms tit-for-tat in the Prisoner's Dilemma game. Nature364(6432), 56-58.


*표지 그림 출처

Photo by Christina @ wocintechchat.com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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