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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Apr 05. 2023

나는 되지만, 너는 절대 안 돼

힘이 생길수록 더 강해지는 내로남불 경향

그때그때 달라요.


만약 이 문장을 읽으면서 어떤 운율이 떠올랐다면,

그래서 자동 음성 지원이 되었다면, 그 사람은 옛날 사람일 것이다.

(잘 모르겠다면, '웃찾사 미친소 (선생님)'을 검색해보라.)

옛날 사람이 뭐 별건가. 그냥 좀 먼저 태어나고, 좀 더 많은 일을 경험했다는 것이지.


그러나 '그때그때 달라요'라는 유행어는 옛날 것이더라도

이 말이 내포하는 의미는 결코 옛날 것이 아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온 철학과 같다.

코미디라는 것이 그렇지 않은가.

코미디는 시대를 반영하고, 문화를 반영하고, 역사를 반영하고, 상황을 반영한다.

코미디는 현실을 반영하고, 상식을 반영하고, 대중들의 공감대를 자극한다.


그래서 코미디의 유행어가 인기를 끄는 것은 잠깐이지만,

그 유행어가 담고 있는 의미는 과거에도 유효하고, 현재도 유효하며, 미래에도 유효한 것이다.


인간은 이 땅에 존재할 때부터 그때그때 달랐고, 수천년전에도, 수백년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때그때 다르다.

사람들은 성격이 그 사람을 보여준다고, 그 사람을 예측한다고 생각하지만,

심리학자들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성격이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적다.

오히려 그 사람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그 사람이 지금 어떤 자극에 노출되어 있는지,

그 사람의 주의를 끄는 것이 무엇인지 등이 그 사람에게 더 강하게 영향을 주며,

그 사람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심리학은 '그때그때 다른 인간에 대해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분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인간은 모든 면에 그때그때 다르지만, 그중에서도 압권은 자신과 타인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그때그때 달라지는 것이다.

자신에게 들이미는 잣대와 타인에게 들이미는 잣대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자신이 뭔가 잘하면, 내가 잘했다고 하지만,

타인이 뭔가 잘하면, 금수저라 좋겠다고 한다.


자신이 뭔가 못하면, 환경과 상황을 탓하지만(못하면 조상탓!),

타인이 뭔가 못하면, 그 사람의 실력과 역량 부족이라고 한다.


자신이 어떤 위험을 예측하지 못하면, 어쩔 수 없었다고 하고,

타인이 어떤 위험을 예측하지 못하면, 왜 그런 뻔한 것도 모르냐고 한다.


자신이 자동차 사고를 내면, 자동차의 잘못이거나, 다른 운전자의 잘못이지만,

타인이 자동차 사고를 내면, 운전 미숙이라고 한다.


이러한 인간의 편향을 심리학자들은 귀인 편향이라고 부른다.

원인을 귀속시키는(귀인) 방법에 있어서 다양한 편향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특히 나에게 일어난 일의 원인을 귀속시키는 방식과

타인에게 일어난 일의 원인을 귀속시키는 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이며,

이러한 차이가 규칙적으로 체계적으로 일어난다. 그렇기에 편향이다.


Photo by Ben Rosett on Unsplash


물론 이 세상에는 이런 편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적어도 이런 편향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숙한 사람들.

시민의식이 높은 사람들.

공동체 의식이 높은 사람들이다.


성숙한 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에게만 상황이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상황이 있음을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귀인 편향이 자신을 사로잡을 때, 한 번 더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자신을 보는 잣대와 타인을 보는 잣대를 최대한 유사하게 하려고,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한다.


타인의 잘못에서 일차적으로 그 사람 탓을 하려는 편향을 되돌려, 그 사람의 상황을 보려 하고,

자신의 잘못에서 일차적으로 환경 탓을 하려는 편향을 되돌려, 자신의 내면을 보려 한다.

성숙한 사람들은 이렇다.


아쉬운 것은 우리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성숙한 시민의식에 이른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특히 가장 성숙해야 하는 사람들.

가장 성숙한 의식을 보여주어야 하는 권력자들,

힘 있는 자들이 오히려 가장 성숙하지 못한 모습을 보일 때가 많다.


그때그때 다른 인간의 본성을 그 누구보다 강력하게 드러내는 것이 힘 있는 자들이요.

권력자들이다.

자신에게 내미는 기준과 타인에게 내미는 기준이 극단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힘 있는 자들이요,

권력자들인 것이다.


네덜란드 틸버그대학의 래머스 박사와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갤린스키가 함께 수행한

연구는 이를 잘 보여준다.

이들의 연구는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일수록

자신이 저지른 윤리적 문제와 규범 위반에 극단적으로 관대해지고,

타인이 저지른 윤리적 문제와 규범 위반에 대해서는 극단적으로 엄격해진다는 것을 관찰했다.

완전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인 것이다.


최소한의 일관성이 있다면,

내가 한 잘못에 관대하면, 타인이 한 잘못에 대해서도 관대하거나,

타인에게 엄격한 만큼, 자신에게도 엄격해야 할 것인데, 완전 반대다.


자신이 한 똑같은 잘못은 별거 아닌 것이고,

타인이 한 똑같은 잘못은 절대 해서는 안되는 파렴치한 짓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언제쯤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 최상위권에 가까울수록

더 성숙해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을까.


죽기 전에 볼 수 있으려나.


*참고문헌

Lammers, J., Stapel, D. A., & Galinsky, A. D. (2010). Power increases hypocrisy: Moralizing in reasoning, immorality in behavior. Psychological Science, 21(5), 737-744.


*표지 그림 출처

Photo by Brett Jorda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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