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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Apr 12. 2023

일은 작게 나눠 매일, 봉사는 크고 길게 가끔

이타적 행동은 가끔, 크고, 길게 해야 행복하다

인간은 하나를 알면 열을 깨우칠 수 있다.

원리를 하나 파악하면, 겉모습은 달라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되는 일들에 쉽게 적용할 수 있다.

규칙을 하나 파악하면, 겉모습은 달라도 동일한 규칙이 적용되는 일들에 금방 적응할 수 있다.


동일한 수학 공식이 적용되는 일들을 발견하면, 쉽게 쉽게 해낼 수 있고,

동일한 만들기 규칙이 적용되는 일을 발견하면, 쉽게 쉽게 해낼 수 있다.

한 가지 스마트폰에 잘 적응하면, 신제품이 나와도 금방 적응할 수 있다.


인간은 유사한 것들을 하나로 묶어 범주화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같은 범주에 들어가는 것들에 동일한 규칙이나 원리가 적용될 것이라고,

일반화(generalization)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컴퓨터가 말을 안 듣는다고? 껐다 키면 된다!

스마트폰이 말을 안 듣는다고? 껐다 키면 된다!

기계가 말을 안 듣는다고? 껐다 켜라!


일반화는 좋다! 끝?

안 끝!


여기서 끝나면 좋겠지만,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된다.

일반화를 너무 좋아하는 인간은 일반화 때문에 이익을 볼 때가 많고,

일반화 덕분에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쉽게 쉽게 일을 처리해내면서 에너지도 효율적으로 쓴다.

그러다보니 때로는 일반화를 하지 말아야 하는 대상인 것이 분명한데도 일반화를 해버린다.


기존에 경험했던 상황이 아니고, 기존에 경험했던 대상이 아니고,

같은 범주로 취급할 수 없는 것인데,

기존 경험으로, 기존 대상으로, 같은 범주로 취급하는 오류를 범한다.


이 지점에서 지혜로운 사람과 지혜없는 사람의 차이가 나타난다.

지혜로운 사람은 일반화할 수 있는 상황과 없는 상황을 잘 구분하지만,

지혜없는 사람은 일반화시키지 말아야 할 것에 자꾸 일반화를 시킨다.


행복한 사람과 행복하지 않은 사람의 차이도 여기서 나타난다.

행복한 사람은 일반화해도 괜찮은 일과 아닌 일의 차이를 알고 각각 다르게 대응해나가지만,

불행한 사람은 일반화해서 될 일과 안 될 일의 차이를 모르고 똑같이 대응하다가 실패한다.


학습 방법이나, 일하는 전략, 과업 수행 전략 등에 대한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내 삶에 적용할 때도 비슷한 차이가 발생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러한 과학자들의 발견이 적용되는 범위를 파악하고,

그 범위 안에서 과학적인 사실을 적용하고 일반화하지만,

지혜없는 사람은 과학적 결과라고 하면 모든 것에 적용된다고 착각하고,

그러다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과학이 다 엉터리라고 욕한다.


과학자들이 내 인생의 중요한 과업들, 매일매일 해야 하는 중요한 과업들,

내 인생의 의미와 가치와 경제력, 사회적 지위 등을 유지하는 것에 필요한 필수적인 일들은

나눠서 하라고, 잘게 쪼개서 하라고, 매일 조금씩 하라고 말하면,

모든 것에 그렇게 하려고 한다.


행복 과학에서 강도보다는 빈도라고 말하니, 모든 것에 빈도를 높이면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무조건 잘못되는 것은 아니다.

운동 잘게 나눠서 매일매일 자주하는 것이 좋다.

운동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공부나 자기계발은 잘게 나눠서 매일매일 자주하는 것이 좋다.

공부는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그런데 잠을 잘게 나눠서 조금씩 자는게 좋을까? 아니다. (밤에 7~9시간 푹 자야 함)

술을 잘게 나눠서 조금씩 마시면 좋을까? 아니다. (알콜 중독의 원인)

미디어 콘텐츠 소비를 잘게 나눠서 계속 사용하면 좋을까? 아니다. (미디어 중독의 원인)


'무조건 외워!'와 같은 방식으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일수록 이러한 무모한 일반화 경향은 더 강해진다.

그리고 나중에 그게 아니라고 하면, 뭐가 그리 복잡하냐고, 그냥 안 하겠다고 한다.


Photo by Tony Tran on Unsplash


일과 봉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논리가 적용될 수 없는데, 자꾸 똑같은 논리를 적용하려고 한다.


나의 생존, 경제력(소득), 사회적 지위를 지키면서 행복도 주고, 의미도 주는 내 일은

매일매일 조금씩해야 한다.

미술가의 미술 작품이 하루 아침에 만들어 질 수 있는가?

매일 조금씩 만들어 가는 것이다.

소설가의 소설이 하루 아침에 만들어 질 수 있겠는가?

매일 조금씩 쓰는 것이다.

과학자의 논문이 하루 아침에 만들어 질 수 있는가?

매일 조금씩 연구하고, 분석하고, 쓰는 것이다.

이처럼 일은 매일매일 조금씩 잘게 나눠서 해야 효과적이다.


그런데 과연 봉사도 그럴까?

나의 생존, 소득, 지위와 관련 없는 이타적 행동, 친사회적 행동.


의미와 보람과 가치를 주지만, 다소 힘들 수 있고, 스트레스도 유발할 수 있으며,

오히려 금전적으로는 손해를 봐야하고, 시간적으로도 손실을 봐야하는 봉사를

과연 매일 조금씩 잘게 쪼개서 해야 하는 걸까?


어떤 사람들은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한다.

일도 잘게 쪼개서 하고, 봉사도 매일매일 잘게 쪼개서 한다.

특히 이타적 행동이 행복한 삶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알려진 후부터

이렇게 매일매일 잘게 쪼개서 봉사하는 분들이 많아 졌다.

매일매일 자기 시간을 내고, 자기 에너지를 쓰고, 자기 돈을 쓰면서 봉사한다.


그리고 이들은 3개월 후에 모든 봉사를 그만둔다.

심지어 자기 일도 못하게 될 정도로 지친다.

완전히 소진되고, 스트레스가 가득하여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에 빠진다.

건강도 나빠지고, 우울해지는 경우도 있다.


매일매일 자기 일을 조금씩 하면서 봉사도 병행하는 것이

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기는 커녕 불행하게 만든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결국 일반화 시키지 말아야 할 것에 일반화를 시킨 것부터가 잘못이다.

봉사가 아무러 좋고, 행복에 도움이 되더라도

일과 봉사는 다르다.

일과 봉사는 구분해야 한다.

일과 봉사는 모양새는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다.

이 둘은 절대 같은 범주로 묶일 수 없다.


일을 하는데 적용되는 과학적 사실이

봉사를 하는데 적용되면 문제가 발생한다.


봉사는 매일 조금씩 해서는 안 된다. 그럼 불행해지고, 지친다.

봉사 때문에 내 일까지 제대로 못하게 된다. 주객이 전도되면 인생이 힘들어 진다.

봉사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봉사를 일처럼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고? 여기에는 전혀 다른 과학적 원리가 적용된다.


첫째, 봉사는 가끔 해야 한다.

일주일에 한 번 혹은 격주로 한 번 정도가 적당하다.

한 달에 한 번도 큰 문제가 없다.


둘째, 봉사는 한 번 할 때, 긴 시간 해야 한다.

매일 한두 시간 잠깐 봉사하는 것이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이렇게 찔끔찔끔하는 봉사에서는 의미와 가치를 느끼기도 어렵다.

이렇게 봉사해봐야 티도 안날 때가 많다.

그래서 봉사는 특정한 날을 잡아서 한 번에 길게 해야 한다.

그래야 티도 나고, 의미와 가치를 느끼게 되며, 이렇게 느낀 의미와 가치가 스트레스를 이길 수 있다.


셋째, 봉사는 하루 날 잡아서 여러가지 일을 한 꺼번에 처리해야 한다.

일은 하루 날 잡아서 여러가지를 처리하는 것이 좋지 않다.

그러나 봉사는 일과 다르다. 일과 반대로 하루 날잡아서 여러가지를 수행하는 것이 좋다.

장애인이나 소년소녀 가장을 위한 봉사를 한다면, 매일 찔끔찔끔하기보다

하루 날 잡아서 쇼핑도 같이 하고, 밥도 같이 먹고, 집에 보일러도 수리하고,

빨래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집 청소도 해주고, 머리도 감겨주는 것이 좋다.

이 모든 것을 하루에 날 잡아서 해야지 매일 조금씩 하거나 하나씩 하는 것은

봉사하는 본인에게도 좋지 않고, 장애인에게도 좋지 않다.

장애인도 개인 생활(사생활)이 필요할 것 아닌가.


정리하면,

일은 매일 조금씩, 잘게 나눠서,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이렇게 할 때, 지치지 않고 롱런할 수 있다.


그러나

봉사는 1-2주 정도에 한 번, 장시간, 여러가지를 수행하는 것이 좋고,

이렇게 봉사할 때, 삶의 의미와 가치와 보람을 느끼면서 행복해진다.


일과 봉사는 다르다.

일에 적용되는 행복 공식을 봉사에 일반화하지 말고,

봉사에 적용되는 행복 공식을 일에 일반화하지 말찌어다!


*참고문헌

Maslach, C., Schaufeli, W. B., & Leiter, M. P. (2001). Job burnout. Annual Review of Psychology52(1), 397-422. https://doi.org/10.1146/annurev.psych.52.1.397


Lyubomirsky, S., Sheldon, K. M., & Schkade, D. (2005). Pursuing happiness: The architecture of sustainable change. Review of General Psychology9(2), 111-131. https://doi.org/10.1037/1089-2680.9.2.111


*표지 그림 출처

Photo by Ismael Param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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