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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Apr 19. 2023

봉사는 내 삶을 지키면서 하는 것

내 삶과 일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이타적 행동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인간은 누구나 착한 사람이 되고자 하고, 착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한다.

예외에 속하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말그대로 예외이며, 그 숫자가 매우 적다.


인간이 착하고자 하고, 착해 보이고자 하는 것이 언제나 순수한 이타심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 곧 나를 돕는 것이기에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면, 공동체도 나를 위해 봉사할 것이기에

이미지 관리를 잘해두면, 나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높일 수 있는 기회의 문이 더 크게 열리기 때문에

이타성을 발휘하는 것이 이성의 호감을 끄는 것에 도움이 되기에

인간은 이타적으로 행동하고, 말하고,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다.

리처드 도킨스가 그의 책 《이기적 유전자》에서 일찍이 언급한 '이기적인 이타심'이다.

이타심의 근본에 이기적인 이익 추구가 존재할 수 있음을 간파한 멋진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아쉬운 것은 세상 일이 언제나 리처드 도킨스의 멋진 표현처럼 돌아가진 않는다는 데에 있다.

이기적인 이타심이 되어야 할텐데, 오늘도 그냥 이타심, 내일도 그냥 이타심, 모레도 그냥 이타심,

일년내내 그냥 이타심으로 끝나는 것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그 사람의 속마음은 '내가 이렇게 잘하면, 뭔가 돌아오는 것도 있겠지?'라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가는데,

정작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그 사람의 봉사와 헌신, 그 사람의 호의와 도움 제공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냥 즐기듯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 사람은 자신의 시간을 써서 타인을 돕고,

심지어 자신이 해야하는 중요한 일을 포기하면서 까지 타인을 위해 헌신하고,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고, 필요한 호의와 도움을 제공했지만, 그 자신은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한다.


이타적인 사람이 아니라, 만만한 사람.

호구! 영어로는 푸시오버(pushover)가 된 것이다.


회사에서 호구가 된 사람은 여기 저기 불려다니느라 자신의 일은 계속 처리하지 못한다.

타인을 돕느라, 자신의 주된 일은 뒷전이 된다.

다른 사람들 도와주는 것에 자신의 에너지를 다 써서 자신의 일은 정작 처리를 잘 못한다.

타인들은 고맙다는 한 마디로 그 사람의 모든 도움을 끝내버리거나,

그나마 고맙다는 인사조차 하지 않는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면, 호구가 된 회사원은 지친다. 힘겨워 진다.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 된다.

업무에서는 늘 과부하가 걸리고, 주객이 전도된 자신의 삶에서 그 어떤 보람과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일하는 것이 점점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게 된다.

탈진(번아웃) 증상이 심해지면, 몸도 아프고,

일하고 싶어도 더 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우울해지고, 불안해지고, 갑자기 공포가 밀려오는 시간도 늘어난다.


결국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의 근간이 되는 일을 그만두게 되거나, 강제로 그만 둠을 당한다.

이건 호구가 되었던 그 자신에게도 손해이지만, 그 공동체에도 손실이 된다.

사람을 다시 뽑아야 하고, 그 사람에게 받던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된 사람들은 결국 실적이 떨어진다.


호구가 된 사업가나 프리랜서에게도 비슷한 일이 나타난다.

봉사활동은 말 그대로 봉사활동이다.

그런데 호구가 된 사업가나 프리랜서가 여기저기 봉사활동에 불려다니게 되면,

정작 자신에게 중요한 사업이나, 프리랜서로서의 중요한 업무를 하지 못하게 된다.

주객이 전도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것이 장기화되면, 경제적인 어려움, 신체적인 아픔, 정신적인 아픔이 한꺼번에 그 사람을 친다.

고통과 상처만 남는다.

착하게 살았는데, 그에게 남은 것은 고통과 상처뿐인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호구인 사람, 호구가 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의 특성을 하나 알 수 있다.

거절하지 못한다는 것. 거절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또하나 알 수 있다.

세상의 이기적인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을 이용한다는 것.


Photo by KOBU Agency on Unsplash


그럼 호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나?

일단, 거절해야 한다.

어떻게 거절하냐고? 이 한 마디를 그냥 외우시라!


'미안, 내가 좀 바빠'


그러면, 당신을 이용하려는 사람은 또 이렇게 말할 것이다.

진짜 잠깐이면 된다고 말이다.

그럼 또 이렇게 말하라.


'미안, 바빠서'


당신을 이용하려는 사람은 포기하지 않고 또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너 지금 안 바쁜 것 같은데,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중이었어(그런데 니가 말시켰잖아)'


이쯤되면, 부탁하는 사람도 돌아가게 마련인데, 끈질기게 한 번 더 물어오면 이렇게 하라.


'내가 할 일 더 마치면, 그때 도우러 갈께(싫음 말고)'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고장난 레코드' 전략이다.

상대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비슷한 의미의 말을 계속 반복하라.

그리고 한 가지를 명심하라.

당신이 하는 모든 말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진실이다.


바쁜 것이 진실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 진실 아닌가?

그렇다. 이것이 당신의 진실이다. 그냥 그동안 말을 못했을 뿐이다.

이제 말을 하면 된다.


이렇게 한 후, 자신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들을 해결하라.

자신의 삶을 지키고, 자신의 일을 지키고,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지키는 일부터 처리하라.

봉사가 먼저가 아니다.

자신의 일, 자신의 과업, 자신에게 소득을 주고, 지위를 주고,

보람과 의미와 가치를 주는 그 일부터 해야 한다.


봉사와 도움 행동, 이타적 행동은

그날그날 해야 하는 나의 일을 다 마친 후에 하라.

내 일 다 하고, 남 일을 도와라.

내 일부터 다 하고, 공동체를 도와라.

내 일이 끝나지 않았을 때는 바쁘다고 거절하고, 나중에 하겠다고, 생각 중이라고 거절하라.


명심하라. 이타적 행동은 내 삶을 지킬수 있는 한도 내에서 하는 것이지,

이타적 행동으로 인해 내 삶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삶과 과업에 대한 생산성을 지키면서 봉사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것이지,

타인을 위해서만 사는 호구들은 불행해진다.


회사의 리더들(팀장, 사장, 회장)도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

아무 때나 동료를 도와주는 문화를 만들기보다

동료 도와주는 시간을 별도로 정해서 그 시간에만 돕게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자신의 일에 집중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능력 있는 호구들이 여기저기 끌려다니다가

자기 일을 못하게 되고, 회사는 그 능력있는 사람을 놓치게 될 것이다.


일과 봉사 둘의 균형을 잡지 못하고, 일을 더 우선순위에 두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자기 일만 하는 이기적인 사람보다 불행하고,

자기 일만을 위해 이기적으로 사느니만 못한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봉사는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삶을 지키면서 하는 것이다.


내 것을 다 해놓고, 남의 것을 도우라.

내 것을 못했으면, 남의 것에 신경쓰지 말라.


건강한 이타주의자는 철저한 이기주의자가 아닐까?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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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그림 출처

Photo by Kaleidic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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