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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Dec 20. 2023

어둠의 화신: 소시오패스

철저한 계획으로 사회를 파괴하는 자: 사이코패스 + 마키아벨리즘

여러분은 사이코패스(psychopath)와 소시오패스(sociopath)의 차이를 아는가?

그냥 같은 말 아니냐고? 사이코패스는 좀 쎈거고, 소시오패스는 좀 약한 거 아냐고요?

완전히 잘못 알고 있다.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는 태생부터가 다르다.

용어 정리가 안되면 정리정돈을 해주고 싶어지는 심리학자가 나설 때가 되었다.

직업병이니 이해달라. 용어를 혼동해서 쓰거나 마구잡이로 섞어 쓰면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


일단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 중 하나는 선천적이고, 다른 하나는 후천적이다.

여러분 생각에는 뭐가 선천적일 것 같은가? 정답은?

사이코패스다!

사이코패스는 사이코패스 유전자를 물려 받아 만들어진 사이코패스 뇌 구조,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뇌 구조에서 발생하는 사고방식과 행동이 특성이다.


5천 명에 1명 꼴로 이런 사이코패스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고,

(동네에 미친X 한 명은 꼭 있기 마련)

번식(?)에 성공하면 후손들에게 유전자를 물려준다.

과거에는 전쟁의 영웅, 즉 전사들로 높은 대우를 받던 유전자이기에 소위 '전사 유전자'라고도 불린다.

현대사회에도 많은 군인, 혹은 용병들이 이 유전자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고,

조직폭력배 등의 범죄집단의 구성원들도 이 유전자일 것으로 추측된다.

현대사회에서 전사 유전자(사이코패스)는 점점 쓸모가 없어지는 추세다.


물론 사이코패스 유전자가 있다고 다 범죄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사이코패스 유전자가 범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아동청소년기에 충족되어야 할 조건이 있다.

바로 극심한 스트레스이다.

보통의 경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부모로부터 공격을 받거나, 학대를 당하거나,

제대로된 돌봄을 받지 못하고, 지속적인 불안과 걱정, 근심,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이

전사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다면, 거의 100% 사이코패스 범죄자가 된다.

어려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당하지 않았지만, 사이코패스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범죄라는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지 않으면서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어떤 면에서는 이게 더 나쁠 수도 있겠다)


반면 소시오패스는 후천적이다.

사이코패스가 유전이 만든 괴물이라면, 소시오패스는 환경이 만들어낸 괴물이다.

소시오패스는 지속적인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의 경험과 실패의 경험으로 만들어진다.

실패, 무시, 거부, 따돌림을 계속 경험하다가 마침내 흑화된다고나 할까.

처음에 실패하고, 좌절감을 경험하면 다소 의기소침해질 것이다.

그러나 실패와 좌절감이 계속 되면, 사회에 대한 불신이 쌓여가고, 불만이 증폭되며, 분노가 폭발한다.

계속 무시, 거부, 따돌림을 당하다보면, 처음엔 좀 소심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이 계속되면,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다.

가해자에 대한 복수심, 사회에 대한 복수심이 차오른다.

그리고 자신을 괴롭힌 자들에 대한 그리고 그걸 방치한 사회에 대한 복수를 시작한다.

그래서 소시오패스의 우리말 번역이 반사회적 성격장애인 것이다.


Photo by Jaanus Jagomägi on Unsplash


소시오패스가 무서운 것은 마키아벨리즘 성향과 사이코패스 성향을 동시에 가진다는 것이다.

이들이 분노에 차있다고 하여 그것을 팍팍 티내면서 다닐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들은 자판기를 부수거나, 벽을 치거나, 창문을 치거나, 문을 발로 차는 식으로 화풀이하지 않는다.

무섭게 철저하고, 무섭게 계획적이며, 무섭도록 성실하게 복수를 준비한다.

소시오패스에게 잘못 걸리면, 이들이 만든 철저한 함정에서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게 될 것이다.

자신이 언제 걸려든 줄도 모르게, 속된 말로 쥐도새도 모르게 당하고 있을 수 있다.


더 무서운 것은 이렇게 철저한 계획을 실행하면서 떨거나 망설이거나,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무협지에 보면 칼을 냉정하게 휘두르는 고수들에게 '손속에 정이 없다'는 표현이 붙을 때가 있는데,

소시오패스의 손속에는 정이 없다. 느꼈겠지만, 이 점은 사이코패스를 닮았다.


요약하면 소시오패스는

남을 이용하고 심적으로 지배하여 함정에 빠뜨리는데 필요한 철저한 계획성은 마키아벨리즘을 닮았고,

냉철한 판단과 과감성, 두려움 없이 돌진하고,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은 사이코패스를 닮았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송혜교씨가 담당했던 캐릭터 문동은이 딱 소시오패스다.

괴롭힘을 당하던 피해자가 소시오패스 가해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나중에는 과연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구분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동은을 응원했지만 말이다.)


사이코패스는 다소 우발적으로 범죄를 저지를 수 있지만,

소시오패스는 우발적으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

소시오패스가 경찰이나 검사에게 붙잡혀 정신병을 호소하거나, 우발적이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조차 계획에 포함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선천적 사이코패스보다 더 무서운 것은 후천적인 소시오패스다.

사이코패스는 청소년기에 잘 돌봐주면, 범죄자가 되는 것은 막을 수 있지만,

만들어지는 소시오패스는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른다. 예측불가다. 이게 공포스러운 것이다.


지금까지 조사된 바에 따르면 소시오패스는 10명 중 1명 꼴로 나타난다.

아까 사이코패스가 인구에서 나타나는 비율을 기억하는가? 비교해보라. 깜짝 놀랄 것이다.

사이코패스는 하루 종일 마주치는 사람들 중에 1명 있을까 말까지만,

소시오패스는 아침에 출근하는 전철과 버스에서만 20명도 넘게 마주칠 수 있고,

공원을 산책하면서 5분에 한 명 꼴로 마주칠 수 있다.

한 반에 30명인 중고등학교에서 3명은 소시오패스일 수 있고,

대학의 심리학과에서 신입생을 100명 뽑았다면, 이중 10명은 소시오패스일 수 있다.


이런 비율을 아는 나는 사이코패스보다 소시오패스가 더 무섭다.

100명 짜리 수업에 사이코패스는 단 1명도 없을 수 있지만,

소시오패스는 10명이나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


이 사실을 안 후부터 나는 학생들에게 싫은 소리하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한다.

학생들의 복수심이 불타오르지 않도록 아주 신중하게 말을 고르면서 수업해야 겠다고 늘 다짐한다.


참고로 이단사이비종교의 교주는 타고난 사이코패스일 때가 많다.

그러나 그 밑에 있는 2인자는 소시오패스일 때가 많다.

사이코패스 교주 밑에서 당하면서 흑화했다고나 할까.

그리고 2인자인 소시오패스의 활약으로 인해 또다른 소시오패스들이 양산된다.

이렇게 교주를 따르는 소시오패스들이 늘어갈수록 사이코패스 교주의 권력은 점점 더 강화된다.

이게 이단사이비종교의 존재 방식이다.


누군가에게 사이코패스 성향(겁 없고, 냉정함)과 마키아벨리즘 성향(철저한 계획성, 가스라이팅)이 동시에

발견된다면, 도망쳐라! 악마가 만들어낸 더 강력한 악마가 탄생한 것이니.


*참고문헌

Jonason, P. K., & Webster, G. D. (2010). The dirty dozen: A concise measure of the dark triad. Psychological Assessment, 22(2), 420–432.


*표지 그림 출처

Photo by Peter Scherbatykh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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