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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Dec 13. 2023

양심의 가책 따위 없다: 사이코패스

어둠의 트라이앵글(3): 피해를 주었음을 인지하지만, 죄책감은 모르는 자

범죄심리학의 역사는 이것이 등장하기 전과 후로 나뉜다.

바로 사이코패스(Psychopathy)형 범죄!


2000년대 초반까지는 굉장히 생소한 용어였으나,

이제는 너무 유명한 말이 되었고, 거의 일상의 용어가 되어버린 말이다.


사이코패스형 범죄의 대명사는 '묻지마 살인'이다. 말그대로다. 살인을 했는데, 이유가 없다.

심지어 가해자는 피해자와 아무런 사이도 아니고,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

미국에서 잊어버릴만 하면 터지는 총기 난사 사건과 마찬가지다.

가해자의 총에 맞아 죽은 사람들은 가해자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가해자에게 원한을 살 만한 일은 당연히 없었고, 그냥 모르는 사람들이다.

갑자기 땅이 꺼졌고, 우연히 거기 서 있다 죽은 사람처럼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져 재수 없이 죽은 사람처럼

그냥 그 거리에 있었고, 그냥 그 거리를 거닐다가 총기 난사범과 동선이 겹쳐 죽은 것이다.


사이코패스 범죄가 대중적인 용어가 된 것에는 유튜브의 힘도 컸다.

과거에는 사이코패스 사건이 있더라도 대중적으로 널리 퍼지지 않았는데,

지금은 유튜브를 통해 순식간에 퍼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자들이 쓰는 뉴스 기사가 유튜브보다 한 발 늦는 경우도 많다.

이미 유튜브에서 난리가 난 다음에야 기사가 올라오기 때문이다.

심지어 미국의 어떤 사이코패스 범죄자는 실시간 유튜브 생중계를 하면서 게임하듯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도 유튜브 영상을 퍼날랐고,

가장 충격적인 장면만 압축적으로 담은 쇼츠가 날개가 달린듯 조회수가 급상승하기 시작하며,

순식간에 전 세계인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


도대체 이들의 정체는 뭔가? 어떻게 이런 인간같지 않은 인간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왜 옛날에는 없었던 사이코패스들이 현대사회에서는 이렇게 활개를 치고 다닌단 말인가?


일단 오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겠다. 사이코패스는 현대사회에서 갑자기 등장한 신인류가 아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인류의 역사에는 늘 사이코패스가 있었다.

유전학적으로 말하자면, 인류 역사에는 늘 사이코패스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존재했고,

뇌과학적으로 말하자면, 인류 역사에는 늘  사이코패스 뇌를 타고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럼 사이코패스 유전자를 통해 사이코패스 뇌를 타고나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 걸까?

지금까지 연구된 결과에 따르면, 10000명 중 2명 정도다.

생각보다 적어서 놀랐는가?

그럼 이렇게 생각해보자.

한 아파트단지에 5천 명 정도가 산다면, 1명은 사이코패스일 것이다.

서울 시내에서 아침 출근길에 여러분 곁을 지나가는 사람이 대략 1만명 정도인데,

그중 2명은 사이코패스라는 소리다.

강남역과 신도림역을 지나는 사람은 아침 출근길에 2만명과 스쳐지나갈 수 있는데,

그중에서는 4명이 사이코패스였다.

0.02%따위 별것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면 좀 무서워질 수도 있다.

여러분이 무심코 지나가는 중에 적어도 1-2명은 사이코패스일 수 있고,

그 1-2명 중에서는 악질적인 녀석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제 이 사이코패스는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보도록 하자.

사이코패스는

누군가에게 해를 입힐 것을 알지만, 그 일을 행하고,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죄책감이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사람

을 의미한다.

가끔 사이코패스를 누군가에게 해를 입힌다는 자각조차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계신다.

이건 완전히 틀렸다. 사이코패스는 자신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해를 입힌다는 것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다.

자신이 강도 짓을 하면, 누군가가 아프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도둑질을 하면, 누군가의 재산이 손실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고,

누군가를 칼로 찌르면, 누군가가 죽을 것임일 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보통 사람은 이런 상상을 하더라도 그걸 실행에 옮기지는 않는다.

이런 상상만으로도 일종의 심적 통증(심적 고통)이 느껴지기에 안하는 것이다.

또 이런 상상을 실행에 옮기면 큰 범죄가 되고, 다른 사람의 인생도 망치지만,

자신의 인생도 망가진다는 것을 안다. 이런 죄책감에 의해 범죄가 억제되고, 보통의 삶이 이어진다.


하지만 사이코패스는 그렇지 않다.

이런 상상에 호기심을 느낀다. 이런 상상을 해보면 좋겠다고 느끼고, 즐거움을 느낀다.

누군가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느낀다. 완전 공포영화다.

공포영화보다 더 공포스럽다. 그래서 이들은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상상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철저히 계획을 세운다.

그냥 무턱대도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 계획을 세워 범죄를 저지른다.

때로는 완전 범죄가 될 수 있는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이런 일에 양심의 가책이 없을 뿐이지, 이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는 것은 알기에 그렇다.

다시 말하지만, 사이코패스는 자신이 행한 악한 일이 법적으로 범죄이고,

누군가에게 해를 입힌다는 걸 안다.

다만 그것이 진짜 나쁜 일인지에 대한 자각이 없을 뿐이다.

그동안 사이코패스를 단순한 공감 능력 부족 정도로 생각했다면, 큰 착각이다.


사이코패스의 또다른 특성은 겁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위험한 일을 겁내지 않으며,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공포감을 느끼지 않는다. 즐거움과 재미, 쾌락은 느끼지만, 공포감, 죄책감은 이들에게 없는 감정이다.

무서울 게 없는 사람들이 바로 이들인 것이다.

무서운 놀이기구라고 불리는 것들도 이들에게는 그냥 흥미진진한 놀이기구다.

이들에게는 공포 영화도 그냥 흥미로운 영화일 뿐이고, 잔인한 영화도 그냥 끝내주는 영화일 뿐이다.


Photo by Ryoji Iwata on Unsplash


겁이 없고, 공포를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패스의 마지막 특성은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갑자기 상황이 급변하거나, 위기에 봉착했을 때, 사람들은 당황하고,

심하면 손과 다리를 덜덜 떤다.

그러나 사이코패스에게 덜덜 떠는 일 따위는 없다.

언제는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냉철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

무엇을 챙겨야 하고,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에 대해 냉정히 판단하며서 위기를 모면한다.

사이코패스의 이런 카리스마 있는 모습은 사람들에게 매력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언제 어디서나 침착한 모습. 너무 멋있다!

나쁜 남자가 매력 있는 남자로 인식되는 현상이 이런 것이다.

남들이 벌벌 떠는 상황에서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멋지게 일을 해내니 멋지지 않을 수가 있는가.

그러나 그 침착함이 인간에 대한 냉철한 공격성으로 변하는 순간 지옥이 시작된다.


잘 생각해보라. 주변에 혹시 이런 사람들이 있는가?

공포 영화를 보면서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재밌다고 하는 사람. 조심해야 한다.

잔인한 것들을 보면서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재밌다고 하는 사람. 조심해야 한다.

무서운 놀이기구를 겁없이 즐겁게 막 타면서 무서워하는 사람을 억지로 태우는 사람이 있는가? 조심하라.

뒤통수를 '팍' 때리고, 재밌다고 웃는 사람이 있는가? 조심하라.

윤리 따위 알게 뭐냐고, 내가 재밌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있는가? 조심하라.

너무 침착하고, 감정이 매마른 것 같아 보이는 냉혈 인간이 있는가? 경계하라.


이제 마지막 질문으로 넘어가보자.

사이코패스는 과거부터 존재했다고 하는데, 왜 과거에는 사이코패스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가,

현대사회에서 이렇게 큰 문제가 되는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아주 명확한 이유가 있다.

과거 사회에서 사이코패스는 대부분 '뛰어난 군인 혹은 용사'였다.

생각해보라. 겁도 없고, 공포도 안 느끼고, 누군가를 죽이는 일에 대해 죄책감도 없다.

이들에게 딱 맞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그렇다! 바로 군인이다.


군대에서 왜 이상한 일들이 끊이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가?

최고의 군인이 되기 위해서는 최고의 사이코패스가 되는 것이 좋으니 말이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과거에는 경찰 권력도 군인하고 비슷했다.

나쁜 놈을 잡으려면, 나쁜 놈이어야 하는 것이다.

나쁜 놈 잡는 나쁜 녀석들의 오구탁 반장, 범죄도시의 마동석 같은 캐릭터가 우연히 등장한 것이 아니다.

사이코패스같은 범죄자들을 잡으려면, 사이코패스같이 냉혈인간이어야 하는 것이다.


일제시대에 우리나라 사람들을 그렇게 괴롭혔던 순사들을 보라.

사이코패스가 아니라면, 그렇게 할 수 없다.

사이코패스가 합법적으로 돈도 벌고, 멋도 부릴 수 있는 직업으로 순사는 정말 딱이다.

군인도 딱이었고 말이다.


군사정권 시절, 군사정권에 빌붙어 권세 좀 누려보겠다고 나쁜 짓 했던 사람들보라.

사실 다 사이코패스들이다.

다만 그 사이코패스들이 권세자가 되었기에 누구도 뭐라할 수 없었을 뿐이다.


이처럼 과거 사회는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합법적인 직업을 주고, 심지어 권력을 얻게 해주던 시스템이었고,

이런 시스템 덕분으로 인해 이들이 정상인처럼 살 수 있었다.

권력을 가장 얻고 싶어하는 것이 사이코패스였고,

그들이 쉽게 권력을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있던 사회가 과거 20세기까지의 사회였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과거에 문제가 되었던 군인과 경찰들처럼 누군가를 고문할 수 없고, 협박할 수 없고, 권력을 남용하기 힘들다.

인성 검사라는 시스템과 인성 면접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사이코패스들은 공직에 진출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들이 일반 시민들이 사는 사회에서 낙오자처럼 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쀨(feel) 좀 받으면, 그 시민들을 상대로 무차별적인 폭력을 행사한다.


그냥 알아서들 군대에 좀 가주고, 최전방 근무나 특수부대 업무를 수행해주면 좋겠는데,

사이코패스라고 군대를 가고 싶어하진 않는다.

자신이 처음부터 높은 계급으로 군대의 명령 시스템을 장악할 수 있다면 모를까.

쫄병부터 시작하고 싶어하진 않는 것이다.


전쟁이 있다면, 이런 계급과 상관없이 매일매일 자기가 좋아하는 전투를 즐기면서

신나게 살고, 전쟁에서 세운 공로로(적군을 많이 죽인 공로) 높은 계급(권력)을 손에 쥐기도 쉽겠지만,

지금은 전쟁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시대이다.


현대사회는 사이코패스들에게 최악의 사회라 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물을 흐린다는 속담처럼

5천 명 중 1명 꼴인 사이코패스가 한 동네를 엉망진창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가 생각할 점이 있다.

어떻게 하면 사이코패스 유전자를 타고난 사람들이

분노에 차서 시민 사회를 공격하지 않도록 만들 수 있을까?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과거 전쟁의 선봉장이었던 이들이

이제는 우주개발의 선봉으로 나서주면 어떨까 싶다.

겁없고, 무서울 것 없는 이들을 우주선에 태워 우주를 마음 껏 개척하게 하면 어떨까?

우주 정거장으로 보내고, 달에 보내고, 화성으로 보내면 어떨까?

우주에서 발생하는 위기 상황이나, 돌발 상황에 침착하게 개척하면서 침착하게 임무를 수행하지 않을까?

물론 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을 때 이야기지만,

NASA같은 곳에서 우주비행사를 뽑을 때, 사이코패스 성향의 사람들이

뽑힐 수 있도록 멋있게 광고를 만들어서 이런 사람들을 뽑으면 좋지 않을까?

(아주 강력하고 겁 없는 우주 전사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광고!)


더 나은 방법과 사회적 시스템이 마련되어

정상적인 시민들이 불안에 떨지 않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길 기대해본다.


*참고문헌

Jonason, P. K., & Webster, G. D. (2010). The dirty dozen: A concise measure of the dark triad. Psychological Assessment, 22(2), 420–432.


*표지 그림 출처

Photo by Lacie Slezak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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