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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Dec 06. 2023

숭배를 강요하다: 나르시시즘

어둠의 트라이앵글(2): 왜 나를 숭배하지 않아! 내가 누군지 알아!

나는 수업을 한 후, 질의응답을 받는다.

온라인으로 질문을 받고, 질문한 사람이 누군지는 나만 알며, 다른 수강생들에게는 질문 내용만 공개된다.

이런 질의응답 방식 때문일까? 내 수업에서는 많은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질문을 하는 편이다.

한 수업 당 10개의 질문은 꼭 나오고, 많은 날은 20개도 나온다.


여담이지만 요즘 학생들이 질문이 없다는 것은 약간 오해가 있다.

질문이 있으나, 손들고 질문하고 싶어하지 않을 뿐이다.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숨어서 질문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가르치는 직종에 계신 분들은 참고하시길.


오늘 이야기는 이렇게 받았던 질문들 중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던 한 질문에서 시작해볼까 한다.

이 질문의 요점은 이렇다.


심리학 책들에서 일치하지 않는 내용들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책에서는 나를 사랑해야 한다고 하고,
다른 책에서는 나를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더군요.
도대체 뭐가 맞는 것입니까?


바로 답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교수가 당황한 표정 따위를 지을 순 없기에

질문의 핵심을 내 스스로 정리하는 말을 하고, 질문에 공감한다는 표현을 하면서 시간을 좀 끌었다.

시간을 끄는 사이에 내 뇌의 자동검색 시스템이 뭔가 답을 찾아내기를 기대한 것이다.

다행히 이국희의 뇌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고, 답을 찾아냈다.


이 질문의 핵심은 자존감과 나르시시즘을 구분하는 것에 있었다.

둘 중 하나는 좋은 것이고, 다른 하는 나쁜 것이다. 여러분 생각에는 뭐가 좋은 것 같고, 뭐가 나쁜 것 같은가?

짜잔! 자존감(self-esteem)은 좋은 것이다. 나르시시즘(narcissim)은 나쁜 것이다.

자존감은 좋은 자기 사랑이고, 나르시시즘은 나쁜 자기 사랑이다.


자존감을 간단히 정리하다면,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긍정적 판단'을 의미한다.

자존감이 높다는 것은 자신의 과거에서 의미를 찾고, 현재에 만족하며, 희망찬 미래를 전망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사랑을 적용한다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신의 과거를 사랑하고, 현재를 사랑하고, 미래도 사랑한다.

이런 자기 사랑은 너무나 아름답고, 적극 권장해야 하는 자기 사랑이다.

나는 여러분이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사랑할 수 있는 자존감 높은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심리학 책에서 자기자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할 때는 바로 이런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나르시시즘은 다르다.

자아도취라고 번역되기도 하는 나르시시즘은 질적으로 전혀 다른 자기 사랑이다.

나르시시즘은

'자신은 그 누구보다 사랑받을 자격이 있으며, 심지어 특별한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판단'을 의미한다. 벌써 정상이 아니다. 도대체 어떤 면에서 자신은 특별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걸까?

이렇게 보면, 나르시시즘은 일종의 특권 의식에 가깝다.

문제는 공동체 구성원들은 그 사람에게 특권을 부여한 적이 없는데,

자기가 자기에게 특권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셀프 특권이라고 할까?

이런 셀프 특권도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인 건 맞다. 그런데 아무 나쁘고, 건강하지 않은 자기 사랑이다.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들, 열등감 덩어리들이 가지고 있는 자기 사랑이라고 할까.

건강하고, 행복하고, 건전한 자기 사랑이었던 자존감과는 너무 대조가 된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행복하고, 이 사람 덕분에 다른 사람들의 자존감도 높아진다.

그러나 나르시시스트(narcissist)와 함께 있으면 불행하고,

이 사람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자존감이 낮아진다.

자기 스스로에게 특권을 부여한 나르시시스트는 말도 험하게 하고, 공격적이며,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조롱하면서 모욕감을 주는 일도 많다.

혹시 지금 누군가 떠오르는가? 그렇다면 이별을 준비하라. 그런 사람은 빨리 손절해야 한다.


아직 결단을 못내리겠다고? 나르시시스트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게 좀 더 정보를 달라고?

알겠다. 여러분의 결단을 도울 수 있도록 추가 정보를 드리도록 하겠다.

나르시시스트는 네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다.


Photo by Parker Gibbons on Unsplash


첫째, 이들은 아첨과 아부를 즐기고,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굽실거리길 바란다.

강한 자 앞에서는 꼼짝도 못하면서, 자기보다 약해보이는 사람들을 그렇게 못살게 군다.

콜센터 직원에게 그렇게 막말을 하고, 모욕감을 주고, 성희롱을 하는 사람들 나르시시스트라고 보면 딱 맞다.

의사 앞에서는 한 마디도 못하던 사람이 괜히 병원 행정 직원에게 화풀이한다. 나르시시스트다.

직장 상사 앞에서는 찍소리도 못하다가 괜히 카페 직원, 편의점 직원, 식당 직원,

패스트푸드점 직원에게 난리를 치고, 음식을 던지고, 컵을 던지고 아주 X랄발광을 한다.

전형적인 나르시시스트들이다. 이런 사람과는 무조건 관계를 끊어야 한다. 정말 재수없다.

'내가 누군지 알아? 내가 누군지 알고 그래! 어! 내가 말이야!' 이런 멘트는 나르시시스트의 종특이다.

이런 대사가 들리면, 바로 손절할 준비를 하시라.


둘째, 사람들이 나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져주길 기대한다.

보통 관종들은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만, 나르시시스트는 좀 다르다.

이들은 눈에 띄는 행동을 할 자신도 없고, 눈에 띄는 실력도 없으면서 눈에 띄고 싶어만 한다.

그래서 이들이 선택하는 방법은 그렇게 누구랑 아는 사이라고 떠벌리는 것이다.

신기한 것은 유명한 사람과 자신이 직접 아는 사이도 아니라는 것이다.

여러 단계 돌고 돌아서 아는 사이인데, 마치 늘 연락주고 받는 것처럼 말한다.

'내가 유명한 사람 누구의 사촌을 알아', '내 사돈의 팔촌이 유명한 사람 누구야',

'내 직장 동료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가 유명한 누구야'

높은 사람들과 자신이 굉장히 친한 것처럼 떠벌리는 것도 이들의 특기다.

판사, 검사와 여러 단계 거쳐서 친하고,

의사들과 여러 단계 거쳐서 친하고, 장관들과 여러 단계 거쳐서 친하고.

에휴. 정말 한심한 사람들이다. 어쩔 때는 좀 불쌍하다. 그렇게 자신에 대해서는 내세울 것이 없을까.

이렇게 해서라도 관심을 끌고 싶을까. 보통은 이해가 안 되겠지만, 나르시시스트들은 이런 심리를 가진다.

주변에 자기 이야기는 안 하면서 자꾸 자기가 유명하고 힘센 누구를 안다는 얘기만 하는 사람이 있는가?

빨리 관계를 끊어라.


셋째, 이들은 사람들이 내에게 특별한 호의나 혜택을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누리지 못하는 것을 자신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금지되어 있는 것을 자신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것이 전철의 임산부 배려석에 굳이 꼭 앉는 남성들이다.

(다리까지 쩍 벌리고 있으면, 같은 남자지만 진짜 얄미워서 한대 때려주고 싶다)

입마개와 목줄이 의무인 반려견의 입마개와 목줄을 하지 않는 견주들도 그렇다.

환경보호구역 혹은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들어가지 말라고 하는

깨끗한 계곡에 들어가는 사람들.

금연구역에서 담배피는 작자들.

일반 도로에 캠핑카를 세워놓고, 캠핑을 즐기는 (너무 이상한) 사람들.

아파트 주차장에 두 구획을 차지하거나, 가로로 주차해 놓는 (정신나간) 사람들.

버스정류장 근처에 차 세워두고, 밥먹으러 가거나 뭐 사러가는 사람들.

나르시시스트들이다. 이런 주변에 사람들이 있다면 관계를 정리하자.


넷째, 이들은 좋은 일에는 항상 자신이 껴야 한다고 생각하고, 나쁜 일에서는 빠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다른 사람들이 일을 잘해놓으면, 꼭 숟가락을 얻으려는 사람이 있다.

전형적인 나르시시스트다. 손절하라.

자기가 일을 망쳐놓고, 마지막에 책을 회피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역시나 전형적인 나르시시스트다. 손절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고생고생해서 책을 써놓으면, 마지막에 끼어들어서 이름 넣어달라는 인간들.

다른 사람들이 고생고생해서 발표자료 다 만들어 놓으면, 마지막에 끼어들어서 이름 넣어달라는 작자들.

심지어는 공을 아예 가로채 버리는 최악의 인간들까지.

여러분 주변에 없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나르시시스트가 주변에 한 명만 있어도 여러분은 매일매일 기분을 망치게 될 것이다.

서늘하고, 소름 돋게 만드는 것이 마키아벨리즘의 특징이었다면,

나르시시스트는 뭔가 더럽다. 똥을 잔뜩 묻힌 파리들이 주변을 계속 도는 느낌이랄까.

지저분한데, 성가시기까지 하다.


여러분 주변에는 이런 똥파리들이 꼬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참고문헌

Jonason, P. K., & Webster, G. D. (2010). The dirty dozen: A concise measure of the dark triad. Psychological Assessment, 22(2), 420–432.


*표지 그림 출처

Photo by bruce mar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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