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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Jun 19. 2024

따라하는 능력과 창의성

새롭고 위대한 생각은 모방에서 시작된다

길을 걷다보면 혹은 카페에 앉아 있다보면,

듣고 싶어 들은 것이 아니라, 들려서 듣는 말들이 있다.

그 중엔 욕하는 소리도 있고,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에 대한 고민도 있으며,

누군가를 좋아하는데 고백하지 못하는 남자의 소리도 있고,

누군가와 헤어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여자의 소리도 있다.

대부분은 잠시 내 귀를 솔깃하게 했다가

이내 내가 집중하던 일로 돌아오게 만드는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유독 다음에 나오는 말을 듣고 싶게 만드는 말도 있다.

'우리 아이가 천재인가 봐요!'라는 부모의 말이 그렇다.

다른 말들은 들려도 '그냥 그런가보다'하고 잊어버리는데,

이 말은 꼭 다음에 부모가 어떤 이유에서 우리 아이를 천재라고

평가했는지가 듣고 싶어진다. 기대가 된다고 해야 할까.

공원을 걷다 이 말이 들리면, 속도를 늦춰서 그 다음 말을 듣고,

카페의 옆테이블 어머님들 모임에서 이 소리가 들리면,

안 듣는 척하면서 그쪽에 더 주의를 기울인다.

유치원에서 손자나 손녀를 퇴원시키는 할머님이

다른 집 손자나 손녀를 마중나온 친구 할머님과 이야기를 나눌 때

이 말이 들리면, 할머님이 그 다음에 뭐라고 하실지가 너무 궁금하다.

(이국희의 오지랖이자, 직업병이니 아무쪼록 이해해주시길)


그리고 오랜 연구 끝에 나는 한 가지 패턴을 찾을 수 있었다.

고급진 용어로 자연실험(natural experiment)을 통해

공통점을 하나 찾은 것이다.

내가 찾은 공통점은 바로 이거다.

엄마와 아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자신의 자녀나 손자손녀를 천재라고 칭한

'무엇이든 잘 따라한다'는 것을 근거로 든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우리 아이가 축구 선수의 기술을 곧 잘 따라하면, 축구 천재

-우리 아이가 피아노 치는 것을 곧 잘 따라하면, 피아노 천재

-우리 아이가 춤을 잘 따라하면, 춤 천재

-우리 아이가 영어 발음을 잘 따라하면, 언어 천재

-우리 아이가 그림 그리는 것을 잘 따라하면, 미술 천재

-우리 아이가 트로트 가수의 노래를 잘 따라하면, 트로트 천재

이다.


나는 이 발견을 한 후,

오래도록 이 발견의 의미를 생각해보았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아이들의 따라하는 능력으로 천재성'을 평가하는 걸까?

그러다 문득 질문을 좀 바꿔보고 싶어졌다.

'따라할 줄 안다는 것의 인지적 의미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그랬더니 뭔가 좀 더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따라할 줄 안다는 것은 누군가를 따라 잡았거나

따라 잡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농구 기술을 흉내낼 줄 안다는 것은

그 기술을 쓴 사람을 따라 잡았거나 따라 잡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피아노를 누군가와 같이 칠 줄 안다는 것은

그 기술을 쓴 사람을 따라 잡았거나 따라 잡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영어 선생님과 똑같이 말하고 쓰고,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영어 선생님을 따라 잡았거나, 따라 잡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고,

미술 선생님과 똑같이 그릴 수 있다는 것은

미술 선생님을 따라 잡았거나, 따라 잡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부모를 흉내낼 수 있다는 것은 부모를 따라 잡았거나,

부모를 뛰어 넘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고 말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속담처럼

모방을 잘 해내는 것을 보면,

누군가의 재능이나 지능을 평가할 수 있다.

모방 능력은 곧 그 사람의 학습 능력이자,

그 사람의 무한한 잠재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니 모방할 줄 아는 것을 보고,

부모와 조부모들은 우리 아이가 천재라고 평가하는 것이다.


이것을 깨달은 나는 기분이 좋았다.

과학자로서 뭔가 새로운 걸 발견한 다음에 오는 기쁨을 느꼈다.

그런데 얼마후,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모방 능력의 의미가 학습 능력과 잠재력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간 것이다.

그러면서 입체주의라는 새로운 미술 사조를 창시한

파블로 피카소가 떠올랐다.

피카소은 젊은 시절

램브란트라는 미술가의 그림 스타일을 따라그렸던 사람 아니던가?

하지만 그의 종착지는 램브란트 모작이 아닌,

입체주의라는 새로운 미술의 세계 아니었던가?

내 안에서 뭔가 새로운 생각들이 뒤엉키는 느낌이 들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하나의 문장이 내 안에서 떠올랐다.

'따라할 줄 안다는 것은 자신만의 새로운 길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랬다.

뭔가를 따라할 줄 안다는 것은

그걸 내것으로 소화했다는 것이고,

내것으로 소화했다는 것은

나만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비틀즈를 듣고 자란 음악가들이

비틀즈 따라쟁이가 되는 것이 아니고,

서태지와 아이들을 듣고 자란 음악가들이

서태지와 아이들 따라쟁이가 되는 것이 아니듯

BTS를 듣고 자란 음악가들도

BTS 따라쟁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따라하는 시절도 있었고,

누구보다 잘 따라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고,

자신의 스타일로 재구성하는 경지에 오르게 될 것이다.

따라할 줄 안다는 것은

얼마든지 내 안에서 소화시키고, 뒤섞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의미가 더 명확해진다.

따라하지 못한다는 것은 내 것으로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고,

내 것으로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은

창의성을 발휘할 가능성이 없음을 보여준다.

창의성은 내 것으로 소화한 것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융합됨으로써 탄생하는 것이니 말이다.


내가 있는 과학자의 세계도 그렇다.

다른 사람의 연구를 재현해보고, 따라하다가

자신 만의 연구의 길을 개척하게 되는 것이다.

연구의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결국 다른 사람의 연구를 읽고, 따라해보다가

뭔가 융합이 일어나면, 연구의 영감이 솟아오르게 된다.

창의적 연구 아이디어는 따라하기(재현)에서 나온다.

다른 사람 요리를 따라할 줄 모르는 사람은

훌륭한 요리사가 되기 어렵지만,

다른 사람 요리를 보고 따라할 줄 알게된 사람은

훌륭한 요리사가 될 수 있다.


인류가 위대한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던 이유는

조상들의 지식을 모방한 후,

그 위에 새로운 것을 쌓아올렸기 때문이다.

조상들이 쌓아올려놓은 것을 모방하지 못했다면,

인류는 지금의 모습을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인류에게, 그리고 나에게 모방의 능력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모방 능력으로 인해 학습이 얼마나 빨라지고,

효율적이 되는지는 더 말할 필요도 없겠다.


모든 배움은 모방에서 시작하고,

이 배움의 끝에는 새로운 것,

그 사람만의 오리지널한 맛과 색을 지닌 것이 나온다.


모방은 진정으로 창조의 어머니다.


*참고문헌

Okada, T., & Ishibashi, K. (2017). Imitation, inspiration, and creation: Cognitive process of creative drawing by copying others' artworks. Cognitive Science41(7), 1804-1837.


*표지 그림 출처

사진: UnsplashIraj Behesh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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