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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Jul 26. 2023

교사는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는 광적인 강박증

의무교육(공교육)을 교육서비스업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아이들은 행복해야 한다.

너무 맞는 말이다. 누가 감히 이 문장에 의문을 던질 수 있겠는가?

그런데 말이다.

이렇게 당연해보이는 문장이 이상하게

응용될 때는 좀 의문을 던져 봐야 한다.


이런 식이다.

아이들이 행복하려면 학교가 재밌어야 한다.

학교가 재밌으려면 교사들이 재밌게 가르쳐야 하고,

(교사가 다 연기자가 되어야 하고, 개그맨이 되어야 하나?)

교사들은 아이들을 우쭈쭈해줘야 하며,

(우쭈쭈해주면서 응석받이로 키울거라면, 의무교육이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절대 상처줘서는 안 되고,

(학생은 교사들에게 마구 상처를 주는데, 교사는 정당한 처벌도 못하나?)

교사들은 아이들의 모든 욕구를 다 채워줄 수 있어야 한다.

(부모도 못채우는 아이들의 욕구를 교사가 채우라고?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아이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학교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런 학교가 재밌어야 하나?

그런 학교가 아이들의 행복을 보장해주어야 하나?

아이들의 욕구와 쾌락을 채워주는 곳이 학교이고, 의무교육이고, 공교육의 역할인가?


학교가 재밌어야 하고,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기능해야 한다는 발상이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난 잘 모른다.

난 교육학자가 아니고, 인지심리학자이니 말이다.

하지만 학교가 아이들의 쾌락과 행복을 위해 기능해야 하고,

교사도 아이들의 쾌락과 행복을 위해 기능해야 한다는 발상이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지,

얼마나 비교육적인 발상인지는 잘 알고 있다.


행복한 학교가 되어야 한다고? 교사는 학생들을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고?

왜? 왜 그래야 하나? 언제부터 학교가 아이들 행복하게 해주는 곳이었나?

언제부터 교사가 아이들 행복에 매몰된 직업이었나?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아이들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면서, 다른 쪽에서는 인성교육을 강조한다.

아이들 인성 교육 시키려면, 쓴소리 해야 하고, 혼내기도 해야 하는데,

그러면 아동학대로 고발당한다. 이게 말이 되는가?


Photo by CDC on Unsplash


내가 분명히 말하건데, 학교는 전인교육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다.

학교는 인간을 인간답게 살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지,

쾌락을 채워주고, 우쭈쭈해주면서 응석 받이들을 키우는 곳이 아니다.

이런 것을 할 것이라면,

또 이런 것을 교사들에게 자꾸 요구할 것이라면, 공교육, 의무교육 그냥 다 하지 마라.

집에서 홈 스쿨하면서 부모들이 다 알아서 키우시라. 어디 얼마나 잘 키우시는지 보자.


학교와 교사가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기능해야 한다는 이념은

광적이고, 강박증적이다.

OECD에서 청소년 자살률이 1위인 것이 초중고 때문인가?

말은 바로해야지, 대학 입시 때문이다.

의대만 추구하는 세상이 되버렸기 때문이지 초중고 때문이 아니고,

교사들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학교는 인간 만드는 곳이지, 아이들 쾌락과 욕구 채워주는 곳이 아니다.

학교는 인간 만들기 위해 하기 싫은 것도 하게 만드는 곳이고,

학교는 인간 만들기 위해 만나기 싫은 삶도 만나게 하는 곳이고,

학교는 인간 만들기 위해 힘든 것도 하게 만드는 곳이고,

학교는 인간 만들기 위해 스트레스를 감수하게 만드는 곳이며,

학교는 인간 만들기 위해 쾌락을 절제하게 만드는 곳이고,

학교는 인간 만들기 위해 욕구를 절제하게 만드는 곳이다.

학교는 인내심을 배우고, 적응력을 키우고, 사회적 기술을 배우고,

위기를 헤쳐나가는 법, 갈등을 조정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때로는 근심하고, 걱정하는 곳이다.

학교는 부정적인 상황에 대처하고,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는 곳이다.


이런 학교는 필연적으로 재미 없는 곳이고, 스트레스를 주는 곳이며,

교사는 필연적으로 악역을 담당하게 된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런 학교를 통해 건강하고 올바른 삶에 대해 배우고 익히게 된다.


아이들 쾌락을 위해 인간 만들기를 포기한 나라에 과연 미래가 있을까?

겉으로는 인성교육 어쩌구저쩌구하면서 실제로 인성교육을 하면,

아동학대라고 신고당하는 교사들이 있는 곳에 미래가 있을까?


이제라도 학교를 행복과 연결시키려는 광적인 강박증을 버려야 한다.

교사를 아이들 행복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는 광적인 강박증도 버려야 한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인간답게 사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아이들 우쭈쭈해주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교사가 공무원으로써 국민 세금으로 하는 역할은 아이들 우쭈쭈해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인간으로 키우는 것이다.

국민들의 세금이 아이들 우쭈쭈해주는데 쓰이는 걸 언제까지 보고 있을 생각인지 모르겠다.


학교 교사와 학원 강사를 자꾸 비교하지 말라.

인간을 키우는 교사와 학원 강사가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일타 강사들과 학교 교사를 자꾸 비교하지 말라.

남이 내 준 문제 잘 풀게 하는 일타 강사들과

그들이 하는 위로가 되는 이야기나 쓴소리는 결국 대학 입시를 위한 것일 뿐

인생을 말해주고, 인간됨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다.


학교 교사들이 해야 하는 행정일이 얼마나 많은지 알기나 하는가?

알지 못하면 그냥 가만히라도 있어 주시길.

사람 만드는 일에만 집중하게 만들어 주고,

가르치는 것에만 집중하게 만들어 주면, 학교 교사들이 훨씬 잘 가르칠 사람들이다.


사명감 있는 교사를 찾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고?

과연 그럴까?

있던 사명감도 다 없애버리고 있는 시스템과 제도를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초중고 교사들 손발을 다 묶어 놓고, 인성교육 운운하는 것이 얼마나 가증스러운지 모르겠다.

차라리 인성교육 포기했다고, 솔직히 인정하는게 좋지 않을까.

이러다가는 인성교육도 사교육이 담당하게 되는 때가 오지 않을까 싶다.


학교는 지식인이 아닌, 지성인을 기르는 곳이고,

교사는 재미가 아닌, 의미를 전하는 사람들이다.


공교육(의무교육)은 교육서비스업이 아니다.

교육서비스업은 사교육 시장에서 돈내고 활용하시라.

공교육(의무교육)은 힘들지만, 어렵지만, 스트레스 받지만, 괴롭고, 때론 짜증나지만,

마땅히 가르쳐야 할 것들, 마땅히 배워야 할 것들, 마땅히 익혀야 할 것들을

가르치고, 습득하게 해서 지금은 좀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나중에는 건강하고, 의미 있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존재한다.

공교육(의무교육)은 좌절하고, 넘어졌을 때 부드럽게 일어나는 법을 가르치는 교육이지,

좌절하고 넘어지지 않도록 우쭈쭈하는 교육이 아니다.

공교육(의무교육)은 자신의 한계에 직면하게 하고, 그 한계 극복하는 법을 가르치는 교육이지,

한계까지 가지 말라고 우쭈쭈해주는 교육이 아니다.

공교육은 세상의 빛과 소금 역할을 하면서 서비스를 제공해줄 힘을 기르는 곳이지,

서비스 받는 곳이 아니다.


자꾸 공교육(의무교육)에서 서비스를 받으려고 하지 말라.

공교육은 서비스업이 아니니까 말이다.


학교가 재밌어야 한다는

더나아가

교사는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는 광적인 집착에서 벗어나야

나라가 살고, 미래가 있다.


*참고문헌

Haidt, J., & Lukianoff, G. (2018). The coddling of the American mind: How good intentions and bad ideas are setting up a generation for failure. Penguin UK.


*표지 그림 출처

Photo by Kenny Elias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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