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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Sep 07. 2023

얘들아 '열심히 안했으면 큰일 날뻔 했네'라고 말해야지

'하마터면 열심히 할 뻔 했다'고 말하는 당신에게

여러분도 이런 일을 경험해봤을 것이다.

듣고 싶어서 듣는 것이 아니라, 들려서 듣게 되는 경우 말이다.

버스에서 누군가 전화 통화를 너무 크게 하시면,

듣고 싶어서 듣는 게 아니라, 들려서 듣게 되고,

식당에서 어떤 테이블의 사람들이 너무 크게 이야기를 하면,

듣고 싶어서 듣는 게 아니라, 들려서 듣게 된다.


학교에서도 이런 일이 흔하다.

교수가 오는 줄 모르고, 복도에서 큰 소리로 말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는

듣고 싶어서 들은 게 아니라, 들려서 듣게 되고.

도서관 앞에서 큰 소리로 말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도

듣고 싶어서가 아니라, 들려서 듣게 된다.


어느 날은 이런 학교 안을 거닐 던 중 이런 이야기가 들려 왔다.

"우와~ 하마터면 열심히 할 뻔 했네"

(부디 맛깔나게 음성 지원이 되었길)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었다.

그래서 잠시 생각을 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열심히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건가?

열심히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인가?

그러다가 결론을 못내리고 그냥 잊어버리고 지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강의하는 건물 복도를 걷는데,

또 같은 이야기가 들려왔다.

"야야. 내가 하마터면 열심히 할 뻔 했잖아"


그리고 깨달았다. 아. 이 말이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여러분이 이미 다 알고 계셨겠지만, '열심히 할 뻔 했어'라는 말은

쓸데 없는 것에 노력하면서 시간 낭비할 뻔 했는데,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말이었다.

또는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좋은결과가 보장되는데,

지나치게 열심히 할 뻔 했다는 말로도 쓰인다.


학생들 입장에서 이해를 해본다면,

"열심히 하지 않아도 'A' 받을 수 있는데, 열심히 할 뻔 했다"를 줄여서

'열심히 할 뻔 했다'로 표현한다.


직장인들 입장에서 이해해 본다면,

"열심히 하지 않아도, 월급 꼬박꼬박 나오는데 괜히 일을 더 할 뻔 했다"를 줄여서

'열심히 할 뻔 했다'로 표현한다.


더 나아가서는

"아주 열심히하나, 좀 덜 열심히하나 결과가 똑같은데, 열심히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무슨 말인지 충분히 이해했고, 어떤 용법으로 쓰는지도 충분히 알겠다.

그러고 나니 이 말이 여기저기서 더 잘 들려왔다.

커피숍에서도 들리고, 전철에서도 들리고, 버스에서도 들리고,

식당에서도 들린다.


그리고 한편으로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열심히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저렇게 많았던가?

이 세상이 온통 열심히 하지 말아야 할 것들 투성이였던가?


Photo by bruce mars on Unsplash


인간은 신이 아니다. 그러기에 미래를 알 수 없다.

대충 전망을 하면서 살긴 하지만, 완벽한 전망은 있을 수 없다.

사실 그렇기에 준비하는 것이고, 대비하는 것이고, 노력하는 것이며, 열심히 하는 것이다.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노력하고, 열심히 하고, 실력을 쌓아두고, 경력을 쌓아두고, 공부도 해두는 것이란 말이다.

그런데 뭐라고?

열심히 할 뻔 했다고? 툭하면, 열심히 할 필요 없다고?


그냥 농담 삼아 한두번 친구들끼리 이야기할 때 이런 말을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걱정은 이 정도가 아니다.

대학생들 중에 이 말이 생활의 습관이 되고,

이 말이 삶의 철학이되고,

이 말이 모든 것을 대하는 기준이 되버린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걱정이다.


열심히 할 필요가 없는 과목과 수업만 쫓아다니는 학생들(꿀수업이라나?). 걱정스럽다.

열심히 할 필요가 없는 일만 쫓아다니는 학생들(꿀알바라나?). 걱정스럽다.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을 감수하지 않고, 확실한 것만 찾아다니는 사람들. 걱정스럽다.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불확실한 것이지만,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노력하고,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이런 가능성, 저런 가능성을 모두 염두에 두고, 계획을 세우고,

노력하고, 하나하나 길을 만들면서 가는 능력을 상실해버리고,

그냥 당장 눈에 보이는 것, 당장 귀에 들리는 것.

장기적인 안목을 기르려고 하지 않고, 당장 돈 되는 것. 당장 효과 있는 것.

당장 쓸모 있는 것만 쫓아다니는 학생들. 심히 걱정스럽다.


이 세상에는 노력해도 안되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그 노력 자체가 헛된 것은 아니다.

나중에 다른 것을 할 때 다 쓸모가 있고, 인생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다 빛나는 노력이다.

그런데 당장 공부했던 것이 무너지니, 다 쓸모 없고,

그런 일은 하지를 말아야 한다고?

그럼 과연 뭘하겠다는 건가? 모든 일이 다 불확실한데.


노력 없이 할 수 있는 일과 돈 벌 수 있는 일을 찾겠다고? 코인? 그러니까 망하는 거다.

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돈이 되겠는가? 사기 당하기 딱 좋다.

사기는 인간의 그런 욕망을 이용해 먹기 때문이다.


헛수고가 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헛수고에 대한 무의식적 두려움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아주 근본적인 심리다.

그러나 인간은 이런 두려움을 늘 뛰어 넘어 한 걸음 나아갔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런 무의식적 두려움을 뛰어넘고, 한 걸음씩 전진하는 것이다.

뭔가 시작하기 전에 있는 헛수고에 대한 두려움을 넘고 할 걸음 나아간다.

이것이 어른이다.

뭔가 노력하기 전에 헛수고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해오지만, 한 걸음 나아간다.

이렇게 해야 어른이고, 이렇게 못하면 평생 어린이다.


한걸음 나아갔다 되돌아올수도 있다.

한걸음 나아간 줄 알았는데, 사실 뒷걸음 쳤다는 걸 알게 될 때도 있다.

그러나 이것도 한걸음 나아갔기 때문에 알 수 있는 일이다.

한걸음 나아가야 불확실성이 줄어들고, 뭔가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잘못된 길로 왔다는 것도 한걸음 가야 알 수 있고,

내가 뒷걸음 쳤다는 것도 한걸음 가야 알 수 있다.

내가 돌아가고 있었다는 것도 한걸음 가야 알 수 있고,

내가 방향을 잘못잡았다는 것도 한걸음 가야 알 수  있다.


불확실한데 왜 노력하냐고? 

진짜 이국희가 화내는거 보여주고 싶다.

불확실하니까 노력해야지!


노력해봐야 당장 얻을게 없는데 왜 노력하냐고?

당장 얻을 게 있는지 없는지 알려면 노력해봐야 알지.

시도를 안해보고, 노력도 안해보고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나?

지금의 대기업 현대를 만든 정주영 회장이

'자네. 해보기나 했어.'라는 말을 괜히 한 것이 아니다.

해보지도 않고, 한걸음 걸어가보지도 않고,

머리로 될지 안될지 결정하고, 불확실하니까. 안하겠다고?

혹은 헛수고가 될 것 같으니까 안하겠다고?

될 것 같은 것이지 그렇게 된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해보지도 않은 일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하면,

100이면 100하지 말라는 결론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안하겠다고? 평생 어린 아이다.


나중에 뭐하게 될지 모르고, 지금 전공 살릴지 안 살릴지 모르는데,

지금 전공 열심히해서 뭐하냐는 학생들도 많다.

이런 말 들으면 답답해서 심장이 터질 것같다.

분명히 말한다.

지금 걸 열심히 해야 새로운 길도 열린다.

지금 선택한 걸 열심히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계속 어두컴컴한 길이요, 안개가 뒤덮힌 길이겠지만,

지금 선택한 걸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는 길이 점점 보이고, 안개가 서서히 걷혀 간다.

'잘 모르니까 열심히 하지 않을래요'라는 결론으로 가서는 안 된다.

'잘 모르니까 지금 하는 걸 열심히 해볼래요'라는 결론으로 가야하는 것이다.


연예인들도 그렇고, 유튜버들도 그렇고,

"하마터면 열심히 할 뻔 했네"라고 말하면서 젊은 사람들에게 잘못된 영향을 주는데,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자기들은 그렇게 열심히 살아서 돈벌고 성공해놓고서

왜 이제 막 열심히 하려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게 만드는지 알 수 없다.


개그우먼으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언론사 기자가 된 조정린씨가 있다.

과연 그 사람이 개그우먼으로 자리잡기 위해 했던 모든 노력은 헛수고인걸까?

다 무의미한 걸까? 다 날라간 걸까?

그렇지 않다.

개그우먼으로 카메라에 익숙해졌고, 방송에 대한 감각을 익혔고,

언어를 전달하고, 스크립트를 구성하는 능력을 익혔고,

표정을 관리하고, 감정을 관리하는 능력을 익혔다.

그 모든 노력은 지금도 쓸모 있고, 쓸데가 있고, 중요한 노력이었다.


세계 최고의 첼리스트 장한나씨. 지금은 나이 먹고 지휘를 하니까.

첼로한 것이 다 쓸데없어 진건가? 아니다! 첼로 했던 것, 그 누구보다 음악에 진심이고,

열심히 노력했던 것이 지휘자로서의 그녀를 더 빛나게 하고 있다.

심지어 장한나씨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지 않았던가.

첼리스트가 철학 전공해서 뭐하냐고?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꼭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고 말하면서

실패하는 인생을 만들어 간다.

첼리스트가 철학까지 하니까 더 깊어지고,

현재 지휘자로서 더 깊이 있는 곡 해석이 나온다는 걸 진짜 모르는가?

진짜 몰랐다면, 이제는 배우시라. 가르쳐 드렸으니 말이다.


모든 노력은 의미 있다.

모든 노력은 길을 보여준다.

모든 노력은 나중에 다 써먹을 곳이 있다.

모든 노력은 보상이 있다.

모든 노력은 내 자산이 된다.

모든 노력은 나에게 기회를 제공한다.


잘 모르니까 열심히 해봐야 한다.

불확실하니까 열심히 해봐야 한다.


적어도 우리 학교 학생들은

'하마터면 열심히 할 뻔 했네'라는 말을 안썼으면 한다.


어느 날 우연히 학교 안을 산책하다가 이런 말을 들었으면 좋곘다.

'열심히 안 했으면 큰일 날뻔 했네'


*참고문헌

Sheldon, K. M., & Kasser, T. (1995). Coherence and congruence: Two aspects of personality integration.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68(3), 531–543. https://doi.org/10.1037/0022-3514.68.3.531


Emmons, R. A. (2003). Personal goals, life meaning, and virtue: Wellsprings of a positive life. In C. L. M. Keyes & J. Haidt (Eds.), Flourishing: Positive psychology and the life well-lived (pp. 105–128).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https://doi.org/10.1037/10594-005


*표지 그림 출처

Photo by Ram Kisho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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