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국희 Dec 27. 2023

우리편 듣기 좋은 말만 하는
토론을 멈춰야 정치가 산다

설득하려는 노력을 무력하게 만드는 확증편향과 반향실 효과

정치적 의견이 갈수록 양극화되는 사회를 보며 여러 사람들이 한마디씩 한다.

이런 문제에 대해 여러 사람이 나섰는데, 나까지 나서서 보탤 생각은 없다.

나는 좀 다른 관점에서 이 문제를 보려고 한다.

나는 정치적 양극화 그 자체가 아니라,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으로 토론 문화 정착을 내세웠던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더 나아가 대부분의 뉴스 채널에서 토의토론 프로그램을

계속 내보내고 있는 것이 오히려 정치적 양극화를 확산시킬 수 있음을 말하고 싶다.

특히 정치적 성향의 유튜브 방송들이 나름의 토의토론을 지속하고 있고,

그 영향력이 커지면서 향후 정치적 양극화가 지금보다 더 강력해 질 수 있음을 경고하고 싶다.


간단한 질문을 해보자.

과연 우리 사회가 토론이나 토의가 부족했기에 정치적 양극화가 생긴걸까?

과거와 현재의 양극화 정도를 비교해보면,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토론이나 토의 문화가 확산되기 전이 오히려 정치적 양극화 수준이 낮았다.

토론과 토의 문화가 확산된 이후 정치적 양극화 수준이 오히려 높아졌다.


토의와 토론이 확산되었는데, 어떻게 양극화가 더 심해질 수 있냐고?

토의와 토론을 통해 상대방의 타당한 의견과 더 나은 의견을 수용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서로 간의 의견차를 좁힐 수 있지 않냐고?

만약 토론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중립적이고,

무작위로 뽑기를 통해 무언가에 찬성하도록 혹은 반대하도록 설정되었다면,

(심리학 실험이 이런 식으로 함) 맞는 말이겠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중립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조차 결국 어딘가로 이미 기울어져 있기 마련이다.

무언가에 찬성하는 사람은 무작위로 결정된게 아니라, 이미 그쪽으로 마음을 정리한 사람이고,

같은 것에 반대하는 사람도 무작위로 결정된게 아니라, 이미 반대하기로 입장을 정리한 사람이다.


세상에는 이미 어떤 지도자를 지지하기로 혹은 어떤 정당이나,

정치적 입장을 지지하기로 결정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토론은 이런 입장 정리가 명확하게 끝난 사람들이 진행한다.

과연 이들이 상대방이 제시하는 팩트, 논리, 타당한 설명, 과학적 근거에 설득될까?


말도 안되는 소리다.

이들은 상대방말을 듣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들과 같아서

상대방의 팩트를 거짓으로, 상대방의 논리를 억지스런 비약으로,

상대방의 타당한 설명을 느낌이나 감정에 의존한 거짓 선동으로,

상대방의 과학적 근거를 방법론에 문제가 있는 사이비 과학으로 취급한다.


아쉽게도 이 반대의 현상도 나타난다.

나의 거짓은 팩트가 되고, 나의 비약은 논리가 되며,

나의 선동은 이성적 설명이 되고, 나의 사이비 과학은 권위 있는 과학이 된다.


이것이 바로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다.

자신의 태도나 입장에 부합하는 증거들은 취하고, 이에 반하는 증거들은 버리는 것이다.

이런 확증편향이 작용하는 토론이 수많은 대중매체를 통해 반복되는 것은 반향실 효과(echo effect)다.

산에서 소리가 메아리가 쳐서 여기 저기로 퍼져나가고, 때론 흡수되듯이,

이곳 저곳에서 자신이 믿는 것들에 대한 지식과 논리가 반사되면, 그것만 쏙쏙 흡수한다.

즉 우리 사회의 토론 문화는 확증편향과 반향실 효과를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상황이 이럴진데, 정치적 입장이 다른 두 사람이 토론한다고 설득이 되겠는가?

오히려 토론을 하면 할수록 상대방은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되어갈 뿐이다.

이렇게 입장이 정리된 사람들은 토론을 할수록 상대방은 바보가 되고, 나만 똑똑한 사람이 된다.

입장 정리가 끝난 사람들의 토론은 서로를 점점 더 멀어지게 할 뿐 서로의 심리적 거리감을 좁히지 못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토론을 보거나 듣는 특정 정치 세력의 지지자들에게서도 똑같은 일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지지자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토론 패널의 말을 흡수할 준비를 하고 있다.

또한 지지자들은 자신들의 입장에 반하는 토론 패널의 말을 언제든 쳐내거나 무시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런 일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기에 특별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없다. 그냥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지지자들도 자신이 믿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에 대한

지식과 논리, 스토리가 강화되어 간다.

다른 입장은 점점 무시하게 되고, 거짓으로 몰게 되고, 사이비 과학으로 몰게 된다.


이런 심리적 경향이 지금의 정치적 상황을 만들었다.

우리 사회에서 토론은 더이상 다른 사람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조율하는 대화의 통로가 아니다.

토론은 자기 입장을 확인하고, 강화하고, 퍼뜨리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


지지층 결집이라는 정치인들의 전략이 공공연히 언급되는 것도

토론이 결코 중도층을 향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토론은 지지층을 더 극단적인 입장으로 내몰기 위해 이루어지지

중도층에게 더 나은 의견을 제시하기 위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는 토론문화를 바꿔야 할 때가 왔다고 본다.

이런 식의 토론문화에서는 혐오, 증오, 분노, 공포, 폭력만 나을 뿐이다.

토론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입장 정해놓고 하는 토론은 하나마나하고, 오히려 입장차만 커질 뿐이라는 뜻이다.


이 상황에 필요한 것은 토론이나 토의가 아닌 공통점 찾기다.

상대방과 나의 공통점 찾기.

상대 진영과 우리 진영의 공통점 찾기.

상대 진영과 우리 진영이 공유하는 지점 찾기.

상대방과 나의 비슷한 점, 유사한 점, 동일한 점 찾기.


상대방이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같은 인간이라는 마음.

상대방이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다같은 걱정을 공유하는 인간이라는 마음.

상대방이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더 나은 사회를 추구하고 있다는 마음.

차이점은 일부일 뿐이고, 공통점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아가는 마음이 확산되어야 한다.


각종 뉴스채널들에서 정치적 입장차이를 부각시켜

싸움붙이는 식으로 토론이 되고, 토의가 되는 모습은 지양했으면 한다.

오히려 공통점을 찾아보게 하고, 입장차를 좁힐 수 있는 의제부터 다루게 하고,

인식을 공유하는 법안들부터 처리하게 유도하고,

대부분에서는 입장차가 없거나, 적지만,

몇몇 부분에서만 입장차가 있을 뿐임을 강조하는 그런 채널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공통점 찾기를 통해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관용, 이해, 공감대 형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

아직 늦지 않았길.

"우리편 듣기 좋은 말만 하는"

토론을 멈춰야 정치가 산다.


*참고문헌

Lord, C. G., Ross, L., & Lepper, M. R. (1979). Biased assimilation and attitude polarization: The effects of prior theories on subsequently considered evidenc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37(11), 2098–2109. https://doi.org/10.1037/0022-3514.37.11.2098


*표지 그림 출처

사진: UnsplashEvangeline Shaw

작가의 이전글 어둠의 화신: 소시오패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