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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Jan 03. 2024

시간 떼우기 토의토론 수업 말고,
좋은 강의 들려주기

의미없고 재미없고 어설픈 데이터 주도형 토의토론 다시 생각하기

과거의 학생들에 비해 요즘 학생들은 토론할 기회가 많다.

초등학생 때부터 토론을 접하고, 중학교 때도 토론을 하며, 고등학교 때도 토론을 한다.


대학에 와서는 상당수의 수업이 토론형으로 진행된다.

교수자가 격주로 조별 토론 주제를 제공하고, 주제에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을 구분한다.

학생들은 한 주동안 자신의 (찬성 혹은 반대) 입장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를 찾고,

자신과 상반되는 입장을 무력화할 수 있는 근거도 찾는다.

그리고 결전의 날! 찬반 양측의 학생들이 모여 열띤 토론을 전개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토론에서 가장 많이 보게되는 광경은 치열하게 데이터를 가지고 싸우는 모습이다.

자신이 조사한 데이터에 근거하여 이런 데이터가 있으니, 내가 맞고 당신은 틀렸다고 주장한다.

상대편도 똑같다. 나에게는 다른 데이터가 있으니 내가 맞고 당신은 틀렸다고 말한다.

한 시간 정도 토론을 하면, 한 시간 내내 이런 공방이 지속된다.

동일한 사안에 대한 상반적 입장을 지지하는 데이터들의 싸움이다.


토론이 끝나면 교수자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입장에서 뭔가 달라진 점을 찾아보라고 이야기한다.

더 정확하게는 토론 과정에서 상대측의 데이터 중 수용할 만한 것이 있었는지 살펴보라고 안내하고,

자신의 입장에 아주 조금이라도 변화가 있다면, 그것을 찾아서 기술해보라고 말한다.

만약 토론하기 전과 비교하여 입장의 변화가 없다면,

그에 대한 타당한 이유, 즉 상대방의 주장을 단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를 쓰라고 한다.


과연 학생들은 입장의 변화가 있었을까?

찬성측은 반대측의 데이터를 받아들이고, 반대측은 찬성측의 데이터를 받아들였을까?

아니면 찬성측은 계속 찬성을 고수하게 되고, 반대측은 끝까지 반대를 고수하게 되었을까?


토론에 대한 대중적인 상식에 따르면,

토론에 참여한 학생들 대다수가 상대방의 데이터를 일부라도 수용했을 거라고 추론하기 쉽다.

극단적인 찬성 입장이었던 사람이 다소 중립적인 찬성 입장이 되고,

극단적인 반대 입장이었던 사람이 다소 중립적인 반대 입장이 되었을 거라고 말이다.

아마 여러분도 상대방의 데이터 중에서도 분명 설득력 있는 데이터가 한두개쯤 있기 마련이니,

그것에 설득되어 입장을 재조정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일단 토론형 수업을 진행하기 시작한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토론형 수업을 설계했던 누군가가 기대하고, 토론형 수업을 실제로 운영하는 교수자가 기대하는 것은

여러분이 예상한 것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토론형 수업은 내 주장을 입증할 수 있는 데이터를 수집하는 능력을 기르고,

다른 사람의 주장과 데이터를 경청하는 자세를 습득하면서

자신의 주장이나 데이터보다 상대방의 주장이나 데이터가 더 나을 경우

그것에 근거하여 자신의 마음을 조정하는 겸손함을 기르는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수업이니 말이다.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굉장히 아름답지 않겠는가?


하지만 적어도 나는 이런 아름다운 광경을 본적이 없다. 한 번도 없냐고? 그렇다. 한 번도 없다.

토론을 통해 상대방의 좋은 데이터를 수용하여 내 의견을 조정하고,

합의점을 찾는 그런 토론 수업의 이상이 달성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이다.

물론 교수자에 따라서는 의무적으로 그런 합의점을 도출하라고 요구하면서

토론 보고서 상으로는 마치 그런 아름다운 토론이 이루어진 것처럼 느끼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심리적이고, 자연스럽게, 학생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서 그러한 조정과 합의가 나타났을까?

심리학자의 결론은 '그렇지 않다'이다.

의무적으로 보고서 쓰기 위해 합의점을 도출한 척했지만,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합의점 도출이 의무사항이 아니게 만들면 금방 알 수 있다.

'자연스럽게 합의에 도출하면 좋고, 아니면 할 수 없고'라고 규칙을 바꾸면,

그 누구도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다.

좀 더 사실적으로 말해주자면, 그 누구도 합의에 도달할 엄두도 못낸다.

상대방의 데이터 중에 수용할 만한 것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데,

자신의 데이터만 최고이고 권위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합의점을 도출할 마음을 먹을 수 있겠는가.

협상 결렬이고, 입장차를 확인한 것으로 토론이 끝난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걸까? 토론 수업은 왜 효과가 없는 걸까?

설득력 있는 데이터가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아니었나? 아니었다!

토론 수업이 효과가 없는 이유는 수없이 많지만,

일단 토론을 하면서 데이터 싸움을 한다는 것 자체가

상대방을 설득하는 효과를 발휘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멀어도 너무 멀다.


이미 사형제도를 지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형제도가 범죄율 감소에 효과가 없다는 데이터를 들이대면,

설득이 되어서 사형제도 폐지쪽으로 입장을 바꿀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사형제도 지지자들에게 사형제가 범죄율 감소에 효과가 없다는 데이터는

언제나 문제가 있는 데이터라고 인식된다.

연구방법에 문제가 있었다거나, 설문 문항에 문제가 있었다거나,

참가자에 문제가 있었다거나, 분석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거나, 아무튼 문제 투성이다.

그런 데이터는 믿을 수 없는 데이터에 불과한 것이다.

이처럼 사형제도 찬성자들에게 반대측이 제시하는 데이터는 거짓 혹은 가짜 뉴스로 취급된다.


반면 사형제도 지지자에게 사형제가 범죄율 감소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입증한 데이터는

언제나 권위 있고 전문성 있는 데이터이다. 믿을만하고, 타당하다.

그러니 사형제도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좋은 데이터를 보여주더라도 입장 변화가 일어나겠는가?

오히려 사형제의 효과가 없다는 데이터를 보여줄 때마다 반발심이 커지고,

사형제를 지지하는 마음이 더 강해졌으면 강해졌지, 약해지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사형제도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에게 사형제도가 범죄 감소에 효과가 없다는 데이터는

볼 것도 없이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이다.

그런데 사형제도가 범죄 감소에 효과가 있다는 데이터는 문제가 있는 데이터라고 인식된다.

어떤 식으로든 트집을 잡아서 그 데이터가 신빙성이 없음을 확인한다.

(털어서 먼지가 나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사형제도 반대자들에게 찬성자들이 제시하는 데이터는 거짓이자 가짜 뉴스다.


사형제도 찬성자와 반대자의 토론이 이렇게 데이터 싸움이 되면,

그 누구도 상대방에게 설득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기존 신념, 기존 태도를 강화해갈 뿐이다.

실제로 조사를 해보면, 사형제도 찬성자는 토론이 끝난 후, 더 강력하게 찬성하는 사람이 되어 있고,

사형제도 반대자는 토론이 끝난 후, 더 강력하게 반대하는 사람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토론이 서로의 입장차이를 줄이고, 조정하며, 합의점을 도출하는 아름다운 결론을 도출한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입장을 더 고수하게 하고,

심지어 각자의 기존 태도를 더 강화시키면서 의견의 양극화만 심화시킨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토론을 거치면서 토론 전에는 없었던 혐오라는 감정까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토론하기 전에는 상대방도 존중해야 하는 인간이었는데,

토론이 진행되면서 데이터 싸움을 하다보니,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사라지고,

오히려 상대방을 혐오하게 되고, 욕하게 되고, 도저히 상종할 수 없게 되었다.

토론에서 기대했던 효과와는 전혀 다른 역효과만 발생한 것이다.


이런 토론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과 위에서 소개한 연구 결과를 알게 된 후,

나는 개인적으로 토론 수업을 진행하지 않는다.

특히 데이터 싸움으로 변질될 수 있는 형태의 토론은 하지 않는다.

경청하는 자세, 상대방에 대한 존중, 자신의 의견을 조정하고 합의점을 도출해나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

대학생들에게 토론이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독이 되고 있는데, 어떻게 진행할 수 있겠는가.


내가 선택한 데이터로는 절대로 상대방을 설득할 수 없다.

내 입맛에 맞게 고른 데이터에 상대방은 절대로 설득되지 않는다.


혹 데이터 싸움을 시키는 방식으로 토론 수업을 운영하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그리고 합의점을 (억지로) 도출하라고 강요하는 방식으로 토론 수업을 운영하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정중히 부탁하고 싶다. 그냥 재미있고 뜻깊은 양질의 강의를 준비해서 진행하시라고 말이다.


가끔 토론 수업을 교수자가 강의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한 도구로만 사용하는 선생님들도 계신데,

진짜 그렇게 하시면 안 된다. 학생들에게 죄짓는 것이다.

토론으로 시간을 때우지 마시고, 반드시 좋은 강의를 준비해서 학생들에게 들려주시기 바란다.


토론 수업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때가 되었다.


*참고문헌

Lord, C. G., Ross, L., & Lepper, M. R. (1979). Biased assimilation and attitude polarization: The effects of prior theories on subsequently considered evidenc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37(11), 2098–2109.


*표지 그림 출처

사진: UnsplashAnte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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