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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Oct 02. 2024

좋은 기분이 좋은 변화를 만든다

좋은 일을 강화하면, 처벌 받을 만한 행동은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나는 그 나이의 아이답게 활력 넘치고, 장난을 잘치는 아이였다.

그날도 그랬다. 정확히 어떤 장난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장난을 치고, 웃고, 떠들었다.

그러다가 담임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왔다.

몹시 화가 나 보였다. 나에게 큰 소리로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당시 교실마다 하나 있던 대형 재활용품 박스에

나를 넣어버렸다.

어린 나이였지만, 굉장한 모욕을 느꼈다.

내가 쓰레기라는 이야기인가?

이 선생 같지 않은 선생의 그 당시 나이가 벌써 50대였으니,

지금은 아마 돌아가셨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그러나 나는 요즘도 그때의 모욕스러운 감정을 잊지 못한다.


그날부터 이국희는 좀 달라졌다.

장난도 잘 안 치고, 웃지도 않고, 떠들지도 않았다.

그냥 있는듯 없는듯 투명인간처럼 보냈다.

그 박OO 선생 눈에 띄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여기까지는 큰 문제없을지 모른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생겨났다.

사실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주도적으로 공부를 어느 정도 해나가는 아이였다.

장난이 심하고, 호기심도 많았고, 말도 많았고, 시끄러웠지만,

시험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보이는 아이였던 것이다.

(당시 초등학교는 중간시험, 기말시험이 있었음, 정확히는 국민학교)

그런데 재활용통 사건이 발생한 후,

나는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그 선생의 의도대로

떠들지도, 웃지도, 장난을 치지 않게 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공부도, 노력도, 연습도 안하게 된 것이다.


재활용통 사건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나중에 심리학을 공부하게 알게 된 것이지만,

당시 나는 우울증을 겪었다.

우울증인지 몰랐고, 그냥 조용조용 넘어가긴 했지만,

4학년이 끝날 때까지 그러한 무기력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시끄럽고, 장난 잘 치며, 공부 잘했던 아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기력한 아이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5학년이 되었다.

담임 선생님이 바뀌었다. 장OO 선생님.

정말 고마운 내 인생의 은인이다.

조용히 고개 숙이고 있던

나에게 먼저 다가와서 미소지어 주신 선생님.

따뜻한 손으로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해주셨던 선생님.

선생들에 대한 오해로 불신이 가득했던 나에게

선생님이란 존재가 무엇인지 다시 알게 해주신 진짜 선생님.

잘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으니 도전해보라고 하셨던 선생님.

선생님과 같이 글짓기도 해보고,

영어 말하기 대회도 나가보자고 하셨던 선생님.

실수에 너그럽고,

성장에 특급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던 선생님.

나의 성취에 대해 나보다 더 놀라주시고,

나의 성장에 대해 나보다 더 기뻐해주시던 선생님.

차갑게 식어버렸던 어린 아이의 마음을

다시 따뜻하게 만들어 주셨던 나의 선생님.

내가 가지고 있던 장난기와 활력, 시끄러움을

리더십을 바꾸어주셔서 기어코 반장을 만들어주셨던 선생님.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없었다면,

지금의 인지심리학자 이국희 교수는 없었을 것이다.


4학년 때 담임 선생은 처벌(punishment)에 의존하는 인간이었다.

학생들을 때리고, 툭하면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욕을 했고, 모욕을 주었고, 짜증을 냈고, 화를 냈다.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공포 정치를 시행한 것이다.

아이들은 조용했고, 동시에 무기력했으며,

반의 시험 성적은 늘 꼴찌였다.

그럼 이 인간은 더 화를 내고, 더 짜증을 냈다.

지가 그렇게 공포로 정치를 하니까,

아이들이 무기력해져서

잘하던 공부도 안하게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말이다.

이것이 심리학에서 말하는 처벌의 효과이다.

처벌은 모든 것을 멈추게 한다.

아이들을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리는 처벌은

심한 장난도 멈추게 하지만, 공부도 멈추게 한다.

처벌은 친구들과 떠드는 것도 멈추게 하지만, 연습도 멈추게 한다.

처벌은 복도에서 뛰는 것도 멈추게 하지만,

더 열심히 노력하는 의지도 죽여 버린다.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강화(reinforcement)에 의존하는 교사였다.

실수나 실패는 무시하고,

바람직한 행동은 즉각적으로 칭찬을 해주셨다.

화내시는 일이 없었다.

칭찬 받고 기분이 좋아진 아이들은

칭찬 들을 만한 행동을 하기 위해 더 노력했다.

칭찬 들을 만한 공부, 칭찬 들을 만한 노력,

칭찬 들을 만한 연습과 훈련에 들이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시끄럽게 떠드는 시간이 줄었고,

심한 장난을 치는 시간이 줄었으며,

복도를 뛰어 다니는 시간도 줄었다.

시험 볼 때마다 반평균은 1등이었다.

특정한 학생 한 명만 잘해서 이루어진 결과가 아니다.

모두가 노력하고, 모두가 성장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성취를 하면 나도 기분이 좋고,

선생님도 기분이 좋고, 가족도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을 알게 되니,

성취를 위해 노력하는 일은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공부하는 맛을 잃었던 나도 다시 공부하는 맛을 찾았다.

성장과 진보를 위한 일에 투자하는 시간이 많아지다보니,

바람직하지 않은 일을 하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당시 50명이던 우리반 전체가 그랬다.

공부하고 연습하는 시간이 늘수록

자기통제력도 키워지고, 인내심도 길러졌다.

우리는 점점 더 집중도 잘하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참된 교사 한 명의 교육철학과 교수전략이

반 전체를 바꿔놓았고,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는 순간이었다.


학습심리학자 에드워드 숀다이크(Edward Thorndike)가

이 장면을 봤다면, 이게 바로 내가 주장한 '효과의 법칙(Law of Effect)'라며

박수를 쳤을 것이다.

효과의 법칙,

"기분 좋게 해주는 일이 다시 발생하는 시간 간격이 점점 줄어드는 현상"이다.

5학년 때 우리반이 딱 그랬다.

기분 좋은 칭찬, 기분 좋은 놀람을 경험하기 위해

우리는 더 빠른 간격으로 노력했고, 더 빠른 간격으로 공부했고,

더 빠른 간격으로 연습했다.


행동주의 심리학자 버러스 F. 스키너(Burrhus F. Skinner)가 

이 광경을 관찰했다면, 이것이야 말로 자신이 확인한 강화(reinforcement)라고,

미소 지으며 이야기했을 것이다.

강화,

"기분 좋게 해주는 일이 발생하는 빈도 혹은 발생할 가능성이 계속 높아지는 현상"이다.

이 역시 5학년 때 우리반을 설명해준다.

우리는 그리고 나는 기분 좋은 칭찬과 기분 좋은 놀람, 성취감, 만족감을 위해

노력하는 빈도가 많아졌고, 공부할 가능성이 높아졌고,

연습하는 시간이 증가했으니 말이다.


인간의 행동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꾸고 싶은가?

아이들의 행동과 동물의 행동을 더 건강한 방향으로 유도하고 싶은가?

처벌이라는 수단을 쓰고 싶은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

공포 정치를 하고 싶은 폭력적 욕망을 떨쳐내야 한다.

화내고 짜증내라고 속삭이는 악마의 목소리에서 멀어져야 한다.

인간과 동물은 처벌을 받을 때 변하지 않는다.

처벌은 그저 무기력하게 만들고,

모든 행동을, 심지어 그동안 잘하고 있던 일까지도 멈추게 만들 뿐이다.


인간과 동물은 기분이 좋아질 때 바뀐다.

인간은 칭찬을 받을 때 바뀌고,

특히 동물은 맛있는 먹이를 얻을 때 바뀐다.

기분 좋은 강화가 이루지면,

자연스럽게 처벌 받을 만한 일을 하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처벌이라는 수단을 쓸 필요 자체를 제거한다.

바람직하고 건강한 행동은

좋은 기분을 양분으로 삼고 자라난다.


처벌은 인간이라는 나무를 말려 죽이지만,

강화는 인간이라는 나무를 더 크고 멋지게 성장시킨다.


*참고문헌

Chance, P. (1999). Learning and behavior. Pacific Grove, CA: Brooks.


*표지 그림 출처

인공지능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https://www.krea.ai/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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