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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Dec 01. 2021

'배움'이라고 하는 사람과 '실패'라고 하는 사람

배우는 사람은 실패하지 않는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 보면, 김기택(배우 '송강호'가 연기함)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김기택의 대사 중 핵심을 뽑자면, '계획(Plan)'이다.


"계획이 다 있구나!"

"계획이 있으면, 반드시 계획대로 안 되거든"

"무계획이 계획이다"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실패할 일도 없고, 어긋날 일도 없다"


모두 기택이 한 말이다. 이 말들을 종합해보면, 계획이 있으라는 말인가 없으라는 말인가? 영화를 본 사람들은 기택의 마지막 말에 무게를 둔다. 위기와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한 말이기에 가장 중요한 메시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이 영화를 보신 분들 중에는 이런 말을 하시는 분들이 있다.


역시 사람은 계획이 없어야 된다.

목표를 세우지 말아라.

무계획이 최고의 계획이다.

되는 대로 살아라.

그때그때 맞춰서 살아야 한다.


흐음...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모르는 것이 하나 있다. 작품 내에서 기택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어땠느냐는 것이다. 이렇게 계획 없이 살아서, 잘 살고 있는가? 계획 없이 사니까 좋아졌나? 계획 없이 사니까 뭔가 좀 일이 잘 풀렸는가?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아니다. 기택의 '무계획이 계획이다!'라는 마음가짐은 낮은 사회경제적 지위라는 맥락 안에서 해석해야지, 그냥 무턱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물론 계획이 없기 때문에 사회적 지위가 낮아진 건지, 아니면, 계획이 있었다가 여러 가지 실패를 맛보고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아진 후에 무계획주의자가 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현재 계획이 없는 것'과 '낮은 사회경제적 지위' 사이에 암묵적인 관계가 있다는 것만 알 수 있다.


여러분은 현재 계획이 있는가? 아니면 없는가? 계획이 없는 것보다는 계획이 있는 것이 좋다고 말하고 싶다.


혹시 계획이 없으신 분들께는 질문하고 싶다. 왜 계획이 없으신지 말이다. 기택의 대사처럼 혹시 뭔가 계획했다고 뜻대로 안 되고, 실패하고, 어긋나고, 깨지고, 넘어지고, 다치고, 아프고, 고통스러우니까 이제 그냥 계획 없이 살겠다고 하신 것인가? 기택의 대사처럼 계획이 없이면 실패할 일도 없고, 다칠 일도, 아플 일도, 고통스러울 일도 없고, 머리 지끈거릴 일도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시는가?


정말 죄송하지만, 계획이 있으면 있는 대로 고충은 있기 마련이고, 계획이 없으면 없는 대로 고충은 있기 마련이다. 기택이네 식구들이 와이파이 신호 잡히는 곳을 찾아 돌아다니는 것처럼 말이다. 어차피 있을 고충이라면 계획이 있은 후에 맞이하는 고충이 더 나을 것이다. 물론 《기생충》의 결말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식으로 사기를 쳐서도 안 된다. 공동체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다른 사람과의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계획을 세우고 진행해 나가야 한다.



계획에 대한 실패가 두렵다면, 실패를 다르게 규정해보자. 배움이라고 말이다. 실패를 배움이라고 여기면 더 이상 실패가 아니다. 그리고 배운 것을 토대로 계획을 수정해서 다시 한번 시도할 수 있다. 이전 계획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도 있고, 다른 것을 하면서 때를 기다릴 수도 있다. 그런데 실패를 실패라고 끝내버리면, 그냥 고통스럽기만 하고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다. 이런 식으로 계속 계획이 없는 지경에 이르면, 소위 말하는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라는 상태에 직면하게 된다. 아무것도 하고 싶은 않은 상태 말이다.


그런데 혹시 아시는가? 이 학습된 무기력이 우울증의 증상이라는 것을 말이다. 무계획이 계획이라는 무계획주의는 학습된 무기력 그리고 우울증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이다.


계획을 세웠는가? 중간에 계획대로 안 되었을 것이다. 당연하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는 것이다. 실패가 없는 게 좋은 게 아니다. 작은 실패를 자주 겪으면서 큰 깨달음을 얻어야 나중에 진짜 돌이킬 수 없는 큰 실패를 하지 않게 된다.


행복은 실패를 배움으로 규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아닐까.


*참고문헌

Martin-Krumm, C. P., Sarrazin, P. G., Peterson, C., & Famose, J. P. (2003). Explanatory style and resilience after sports failure. 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35(7), 1685-1695.


Peterson, C. (1991). The meaning and measurement of explanatory style. Psychological Inquiry2(1), 1-10.


Peterson, C., & Steen, T. A. (2002). Optimistic explanatory style. In C. R. Snyder & S. J. Lopez (Eds.), Handbook of positive psychology (pp. 244–256). Oxford University Press.


Peterson, C. (1992). Explanatory style. In C. P. Smith, J. W. Atkinson, D. C. McClelland, & J. Veroff (Eds.), Motivation and personality: Handbook of thematic content analysis (pp. 376–382). Cambridge University Press.


Seligman, M. E., Nolen-Hoeksema, S., Thornton, N., & Thornton, K. M. (1990). Explanatory style as a mechanism of disappointing athletic performance. Psychological Science1(2), 143-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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