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국희 Jun 02. 2021

사회적 신뢰와 코로나-19 시대의 행복

코로나-19 상황에서 잃어버린 지갑을 누군가 찾아줄 거라는 믿음이 있는가

인간은 연약하다.

신체적으로 연약하고, 정신적으로 연약하다.

물리적 힘에 의해 쉽게 다치고, 심리적 영향력에 의해 쉽게 상처 받는다.


그러나 인간은 이런 연약함을 이겨내는 방법을 발견하였다. 바로 뭉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인간은 매우 연약하지만, 그 연약한 인간들이 뭉치면 달라진다. 뭉치면 자신보다 더 크고 힘센 포식자에 쫓아내거나 죽일 수 있고, 뭉치면 개개인이 혼자서 할 수 없었던 식량의 대량생산도 가능해지고, 뭉치면 개개인 할 수 없는 건축도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현재 인류가 이룬 문명이라는 것은 연합, 단합, 협력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경에도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전도서 4장 12절


이처럼 협력이라는 것은 위력을 가진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약간 이상하다. 우리 인간은 어떻게 이렇게 협력을 잘하는 걸까? 어떻게 우리 조상들은 늑대 무리를 마주쳤을 때, 동료에게 내 등을 맡길 수 있었을까? 사실 동료라고 생각했던 그 사람이 나를 늑대 밥으로 주고, 도망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쉽게 말해 자기 혼자 살겠다고 배신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동료를 믿고 의지했다. 같이 협력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같이 위기를 극복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내가 베풀면 그도 베풀 것이라고 믿었고(상호주의), 공동체를 배신하면 처벌을 받게 될 거라는 걸 믿었으며(윤리, 도덕, 법과 제도), 신뢰를 저버린 사람은 결국 생존하기 어렵다는 것을 믿었다(나쁜 평판을 얻게 되면 공동체에서 무시당하거나, 따돌림당함).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압축하면 '신뢰(Trust)'다. 우리 조상들은 서로를 신뢰했다. 내 이웃을, 내 친구를, 내 가족을, 우리 공동체 구성원들을 신뢰했다. 그리고 이러한 신뢰야 말로 지금까지 인류를 버티게 만들고, 생존하게 만들며,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게 만드는 힘이었다. 신뢰가 얼마나 중요했던지, 우리의 유전자 안에도 공동체 구성원을 신뢰하는 유전자, 즉 다른 사람을 일단 믿고 보는 유전자를 탑재해주었다. 기본 신뢰(Basic trust)라고 부르는 녀석이다. 오죽하면,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가 신뢰는 인류 만들어낸 최고의 상상력이라고 했겠는가.


하지만 아쉽게도 이런 기본 신뢰를 저버리는 일들이 적지 않게 발생한다. 오히려 이런 기본 신뢰를 이용해서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피해를 주고, 손실을 입히고 생명을 위협하는 일들도 생긴다. 피싱 범죄, 스미싱 범죄 등등의 수많은 사기 범죄들이 그것이다. 인간의 신뢰를 이용하는 배신자들, 다른 사람들이 신뢰 있게 행동할 것이라는 것을 이용하여 그 틈에 자신의 이기적인 욕구를 충족하는 인류의 배신자들이 존재한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회에 대한, 공동체 구성원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토대로 신뢰 있게 행동할 때, 이기적으로 인류를 배신하는 사람들이 있다.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니까, 자신은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인류의 배신자들이 있다. 모든 사람들이 밖에 돌아다니지 않으니까, 자신은 밖에 돌아다녀도 안전할 거라고 생각하는 인류의 배신자들이 있다. 기차와 같은 대중교통에서 음식물 섭취를 하지 말라고 해도 기여코 음식물을 섭취하는 인류의 배신자들이 있는가 하면, 버스나 택시에서 마스크를 써달라는 기사님의 요구에 적반하장식으로 반발하면서 폭력을 행사하는 질 나쁜 배신자들도 있다. 심지어 신앙심이 있으면 코로나-19에 걸리지 않는다는 비과학적 신념, 미신을 퍼뜨리면서 종교활동과 포교활동을 멈추지 않고,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인류의 배신자들도 등장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이런 일들을 겪다 보니, 여전히 공동체에 대한 이러한 신뢰가 남아 있는 사람도 있지만, 너무 많이 배신을 당한 나머지 공동체에 대한 기본 신뢰가 무너진 사람들도 존재하게 되었다. 《2021 세계행복보고서》가 주목한 것도 이 부분이다. 여전히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과 이제 공동체를 신뢰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은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퍼지기 전과 후에 행복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연구진은 재미있는 질문을 만들어서 40개국 사람들에게 배포하였다. 소위 '지갑 문제(wallet question)'라고 불리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1) 당신은 20만 원 정도의 현금이 들어 있는 지갑을 어딘가에서 잃어버렸습니다. 경찰로부터 지갑을 돌려받게 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0-100% 사이로 응답하세요.


2) 당신은 20만 원 정도의 현금이 들어 있는 지갑을 어딘가에서 잃어버렸습니다. 이웃으로부터 지갑을 돌려받게 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0-100% 사이로 응답하세요.


3) 당신은 20만 원 정도의 현금이 들어 있는 지갑을 어딘가에서 잃어버렸습니다. 낯선 사람으로부터 지갑을 돌려받게 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0-100% 사이로 응답하세요.


라고 제시되었고, 이에 응답하였다.


여기서 경찰에게 지갑을 돌려받을 수 있겠느냐는 질문은 사회 시스템, 즉 법과 제도, 시장, 정부에 대한 믿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한편 이웃과 낯선 사람에게 지갑을 돌려받을 수 있겠느냐는 질문은 공동체 구성원들, 윤리, 도덕성에 대한 신뢰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추가적으로 '지갑 문제'가 행복에 미치는 효과와 비교해보기 위해 코로나-19 상황에서 실업 상태인 것이 행복에 미치는 효과, 코로나-19 상황에서 정신 건강의 문제를 경험할 것 같다는 인식이 행복에 미치는 효과, 코로나-19 상황에서 폭력적인 범죄를 경험할 것 같다는 인식이 행복에 미치는 효과, 코로나-19 상황에서 소득이 2배로 증가한 것이 행복에 미치는 효과를 지갑을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신뢰가 행복에 미치는 효과와 비교해보았다.


*출처: 2021 세계행복보고서


이제 결과를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큰 틀에서 보면, 사람들은 경찰에게 지갑을 돌려받을 가능성을 평균 50%로 추정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낯선 사람에게 지갑을 돌려받을 확률은 평균 25% 정도로 매우 낮게 추정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정부, 시장, 법과 제도에 대한 신뢰가 전반적으로 낮음을 의미할 뿐 아니라, 공동체(특히 낯선 사람) 구성원과 그들의 윤리, 도덕성에 대한 신뢰도 매우 낮음 수순임을 의미한다. 《2021 세계행복보고서》는 이에 대해 사람들의 추정이 비관적(pessimistic)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다음으로 세부 질문이 행복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우선 경찰에게 지갑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믿음(Wallet return by police seen as very likely)을 높을수록(경찰에게 지급을 돌려받을 가능성-%-을 높게 지각할수록) 행복(생활평가 점수: '내 삶을 나의 가능성과 잠재력, 역량을 펼치기에 충분한 삶이다'라는 질문에 0-10점 사이로 응답하는 것)이 0.459포인트 증가하는 경향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시장, 정부, 법과 제도에 대한 신뢰가 높을수록 더 행복해지는 경향이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반대로 보면, 코로나-19 상황에서 시장, 정부, 법과 제도에 대한 신뢰가 낮을수록 불행해지는 경향이 있다는 의미이다.


더하여 이웃과 낯선 사람에게 지갑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믿음(Wallet return by neighbour or stranger seen as very likely)이 높을수록 행복이 0.619포인트 상승하는 경향이 있음을 관찰하였다. 이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이웃, 낯선 사람, 공동체 구성원 및 그들의 윤리, 도덕성에 대한 신뢰가 높을수록 더 행복해지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역시 반대로 생각하면, 코로나-19 상황에서 공동체 구성원과 그들의 윤리, 도덕에 대한 신뢰가 낮을수록 더 불행해지는 경향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지금부터다. 이렇게 '지갑 질문'을 통해 확인한 신뢰 수준과 행복 사이의 관계는 다른 모든 요인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력을 뛰어넘을 정도로 강한 것이었다. 먼저 현재 실업 상태(Currently unemployed)인 것은 행복을 0.43포인트 감소시키는 요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0.43이라는 포인트는 경찰에게 지갑을 돌려받을 가능성 추정이 행복에 미치는 효과인 0.459와 이웃이나 낯선 사람에게 지갑을 돌려받을 가능성 추정이 행복에 미치는 효과인 0.619보다 작다. 즉 공동체에 대한 신뢰 요인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력이 현재 실업 상태인 것이 개인의 행복에 미치는 영향력보다 크다.


이러한 결과를 해석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보충 설명을 하자면, 누군가 현재 실업 상태에 있다고 하더라도, 공동체에 대한 신뢰가 있으면, 그 사람의 실제 삶을 그렇게 불행하지 않을 수 있다. 반면 실업 상태인 사람이 공동체에 대한 신뢰마저 없다면,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이어서 코로나-19 상황에서 정신 건강 문제가 발생할 것 같다는 지각(Harm from mental health issues seen as very likely)이 높을수록 행복은 0.382포인트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역시 공동체에 대한 신뢰가 행복에 미치는 영향력보다는 작은 것이다. 즉 조심스럽게 해석해보자면, 코로나-19 상황에서 정신 건강의 문제를 경험한다고 하더라도 공동체에 대한 신뢰가 있으면, 그렇게 불행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상황에서 정신 건강의 문제를 경험하고 있는데 공동체에 대한 신뢰마저 없으면, 무척 불행한 상태에 놓일 가능성이 있다.


비슷하게 코로나-19 상황에서 폭력적인 범죄를 경험할 것 같다는 지각(Harm from violent crime seen as very likely)이 높을수록 행복은 0.226포인트 감소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역시 공동체에 대한 신뢰가 행복에 미치는 영향력보다는 작은 수치다. 마찬가지로 해석해보자면, 코로나-19 상황에서 폭력적인 범죄를 경험할까 봐 몹시 불안하더라도 공동체에 대한 신뢰가 있으면, 이러한 불안이 어느 정도 상쇄될 수 있다. 반면 코로나-19 상황에서 폭력적인 범죄에 노출될까 봐 걱정이 많은데, 공동체를 신뢰하기 어렵다면 정말 불행해질 수 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소득 감소를 경험할 때, 반대로 소득이 2배가 되는 것(Doubling of income)은 행복을 0.202포인트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도 공동체에 대한 신뢰가 행복에 미치는 효과의 크기에는 미치지 못한다. 해석하자면, 소득이 2배가 되는 것보다 인간의 행복에 더 강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공동체에 대한 신뢰일 수 있으며, 소득이 2배가 되더라도 공동체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여전히 불안하고 불행할 수 있다.


봤는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그래서 서로 돕고 살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신뢰가 중요하다.


바보야! 문제는 신뢰야!

이전 10화 코로나-19와 사회심리적 요인들의 변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