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그런 사람이 아니잖아요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두려움 중 하나는 기대감이다. 누군가 나에게 거는 기대도, 내가 누군가에게 가지는 기대도 모두 무섭다. 어쩔 수 없이 피어나는 기대는 높이를 알 수 없는 고양감을 수반하며 근거 없는 희망을 품게 한다. 도박처럼 걸어보는 기대가 지속되는 동안 나는 몇 번이나 구름 위로 치솟았다 차가운 땅으로 처박힌다. 혼자서 만들어낸 희망에 자해하듯 고문을 당해 이 마음이 사라질 법도 한데 혹시나 하는 미련을 떨며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그 끈을 놓지 못하게 되어버린다.
기대는 잔인하다. 기대를 하는 사람도 기대를 받는 사람도 어깨가 무거워지는 중압감을 느낀다. 우리의 인간관계는 기대를 실처럼 뽑아낸 거미줄 같은 모양새를 띄고 있다. 누군가에게 관심이 생기면 그 사람의 성격과 성향을 제멋대로 상상하고 어떠한 이미지를 구축해 낸다. 그를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크고 작은 기대들을 모아 내가 바라는 이상향이 되어주기를 바라게 된다. 나의 슬픔에 공감해 줄 수 있는 감수성을 지녔기를, 입가의 보기 좋은 곡선이 나를 향하는 것이기를, 모든 치부를 내보여도 감싸줄 수 있기를. 한 땀 한 땀 뽑아낸 실들은 끈적한 질감을 띄고 있어 상대방은 어찌할 도리 없이 구속되어 버린다. 거미줄이 한 줄씩 끊어지는 것은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라는 말은 가위 같아서 상대가 나를 포획하기 위해 쳐놓은 거미줄을 싹둑 자를 수 있다. 이런 과정을 몇 번이나 겪다 보면 더 이상 거미줄을 만들어내기 싫어지는 때가 온다. 하지만 자연의 섭리처럼 원치 않아도 피어나는 마음인지라 너덜너덜해진 마음이라도 자꾸만 새로운 기대를 만들어낸다.
성적에 대한 기대나 승진에 대한 기대처럼 일시적인 기대감도 있지만 부모가 자식에게 거는 기대나 연인 사이의 기대처럼 오래도록 이어지는 기대감도 있다. 기대는 질량을 가지고 있어 누군가로부터 전해받는 순간 두 어깨가 무거워진다. 나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만족을 주기 위해서는 곱절의 노력이 필요하다. 더 빨리, 더 완벽하게 나아가야만 한다. 해내지 못한다면 나의 부족함에 대해 상대에게 사과하게 된다. 왜 미안해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다가도 원인 모를 죄책감에 고개를 푹 숙이게 된다. 기대치에 미치지 못해 실망하거나 화를 내는 상대방을 보고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못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기대감에서 오는 모든 감정이 버겁고 끔찍해서 나는 기대하지 않고 기대받지 않고 싶다.
요새는 기대하지 않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아무에게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연습이다. 무심코 어떤 반응을 기대하게 될 때면 스스로를 꾸짖는다.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기대감에 입김을 불어 날려버린다. 이 짓을 반복하다 보면 전보다 초연해진 나를 볼 수 있다. 기대가 충족됐을 때의 만족감은 기대가 깨진 후 마주하게 되는 실망감을 이길 수 없기에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무(無)의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 나처럼 기대하지 않는 연습을 하는 이들이 있다면 모든 사람과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고 감정에 뇌를 맡기지 않는 것이 키 포인트라고 슬쩍 속삭여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