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를 쓰자

"내가 죽으면 구글 드라이브에 들어가 봐. 내 유서는 거기에 있어."

by gloomee

나는 늘 갑작스럽게 찾아올 작별에 대비를 해둔다. 새 해가 밝고 다른 사람들은 올해의 목표를 적을 때, 나는 올해의 유서를 적는다. 죽고 싶어 하는 것이 습관이 된지라 언제 내가 마음을 먹고 실행에 옮길지 몰라 남은 사람들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라 생각해 십 대 후반부터는 매년 유서를 적고 있다. 가지고 있는 것도 없고 떠넘길 짐만 있는 내가 남기는 글에는 남은 잔해를 잘 부탁한다는 염치없는 말 뿐이다. 갑작스러운 작별이 찾아오게 된다면 주위 사람들이 너무 고민하지 않도록 내 나름의 배려로 봐주길 바라면서도 책임감 없이 떠났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유서는 담백하게 적는다. 내가 품고 있었던 끝없는 외로움과 우울을 덜어내고 고달픈 매일 중에도 당신들이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었다는 감사 인사를 담는다. 마지막 즈음에는 남겨질 당신들의 고통을 금방 회복될 상처라 치부하고 떠나는 것에 대한 사과문을 적는다. 사실은 한 사람, 한 사람을 부여잡고 나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견딜 수 없다고, 내가 살고 싶어 지게 도와달라고 지저분한 감정들을 토해내고 싶었지만 나조차 어찌할 수 없는 불행들을 타인에게 전염시킬 수는 없기에 한 페이지의 짧은 글을 적는다. 매일 도망치는 흉내만 내던 내가 결국은 아무도 잡을 수 없는 곳으로 긴 여행을 간 것뿐이니 나에 대한 원망, 슬픔, 그리움을 너무 오래 가지고 있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을 덧붙여.


내가 겪었던 이별은 대부분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왔다. 휴학 후 잠시 외국으로 여행을 갔을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 방학 때 호수에 놀러 갔다가 익사한 좋아하던 오빠.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전화로 수다를 떨던 친구의 자살. 매번 누군가와의 영원한 작별은 실감이 나지 않다가 화창한 날의 여우비처럼 눈에서 쏟아져내렸다. 작별의 순간을 준비하지 않았던 이들의 마지막 생각은 아무도 알 수 없는 미제로 남는다. 내 안의 모든 것을 꺼내어 보여줄 용기는 없지만 내가 어떤 생각으로 살아왔고 어떤 마음으로 작별을 대비했는지 한 사람 정도는 알아채줬으면 하는 마음에 가끔 농담하듯 유서의 존재를 알린다.


오늘 내가 남기는 이 글도 언젠가는 누군가 발견해 주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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