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일 이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그만둘 것!"
요즘 유행하고 있는 조용한 사직 신드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조용한 사직 신드롬은 회사에서 업무를 진행할 때 최대한 소극적이게 시킨 만큼만 일을 하고 능동적으로 업무를 진행하지 않겠다는 자세다. 우리는 조용한 사직 신드롬에 대해서 들으면 직관적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왜 그들은 그런 선택을 할까?"
해당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은 고민할 것이다. 그중에는 일보다 개인의 생활을 우선시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고 분석하는 사람도 있고 풍족한 사회에 자라난 사람들이 연약하고 자기 자신밖에 몰라서 그런 선택을 했다고 분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질문을 약간 다르게 해보고 싶다.
"왜 그들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까?"
개인의 생활과 업무는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대부분의 생활을 일을 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따라서, 조용한 사직을 선택한다는 것은 선택한 사람에게도 좋은 선택이 아니다. 마치 처음에 언급한 나의 질문을 통해서 다가가면 그들의 이득만을 위한 이기적인 선택이라고 착각을 하기 쉽다. 하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는 저 선택 자체가 장기적으로는 그들에게 상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의 생활 중 대부분이 쓸모없게 쓰인다는 것을 인정해버리는 행위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들이 사회에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능동적인 표현이 아닐까?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긴 시기를 거쳐오면서 회사의 미래가 나의 미래를 챙겨주지 않는다는 것을 스며들듯이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느껴가는 것을 강하게 느낀 시기는 코로나 시기일 것이다. 우리가 열심히 다니고 있는 회사가 나를 챙겨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다들 느끼고 있었지만 우리는 코로나 시기에 정말 챙겨주지 않는 현실을 마주해버렸다. 가만히 있다가 일자리가 사라지거나 과도한 업무를 제한된 사람으로 행해야 했다. 회사에서는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숫자를 보기 때문에 그들이 인간적으로 힘들어하는 부분을 외면한다. 방금 언급한 부분은 극단적인 부분만 말했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이런 분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힘든 시기를 이겨내기 위해서 다 같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사회는 나약한 사람들부터 희생해주기를 요청하면서 외면하기 시작했다. 다들 생각해보자 우리가 사회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사회도 우리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전제된다. 아니 외면이 아니라 사회가 우리를 보호해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전제된다. 그런데 그런 믿음이 깨졌다. 하지만 그런 믿음이 깨졌는데 그들은 사회에서 도망을 칠 수는 없다. 그들은 사회를 외면할 수 없다.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사회가 외면하지 않기를 요청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과연 사회는 그들의 요청을 받아줄까?
이런 고민을 하다 보면 결국 마지막 발악을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조용히 짜증내기보다는 적극적으로 힘들다고 외칠 수밖에 없다. 외치지 않으면 사회는 쳐다보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조용한 사직은 그들이 사회에 발악적으로 던지는 굉장히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사직이다.
주변에서 모순적인 표현이나 사건이 발생한다는 것은 굉장히 주변을 주의하면서 걸어가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이 글을 보고 사회라는 표현 속에서 문득 자기 자신을 빼버린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신중히 생각해보자. 우리가 사회다. 사회의 문제는 우리 근처에 높은 확률로 존재한다. 그러니 이 글을 읽은 사람은 주변에 외면받는 사람이 없는지 좀 더 능동적으로 주변을 챙겨주면 좋겠다. 우리가 보는 복잡한 사회는 실제로는 생각보다 단순한 우리 주변의 집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