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부자가 되자!
가까운 사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주변 사람에게 잔소리를 쉽게 한다. 보통 잔소리를 하는 이유를 찾아보면 특정한 좋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런 잔소리의 목표가 성공했다고 가정하면 그 누구 부럽지 않은 성공적인 삶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실제 사용하는 잔소리를 생각해보면 목표에서 멀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잔소리의 필요성을 생각을 해보면 안 하는 게 더 좋았을 잔소리들이 대부분이다. 요즘 아이들도 배우는지는 모르겠지만 언어의 중요성에 대해서 어렸을 때 교육을 많이 받았었다. 그런데 정작 어른이 되어서 되돌아보면 언어의 중요성을 몸소 느껴야 하는 많은 상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 한마디가 중요하다는 배움을 잊고 살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이 빠르게 변화해서 시대적으로 변한 건지 어른이 되어서 기본조차 지키고 있지 않았던 건지는 모르겠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요즘은 이런 실수를 해도 더 이상 피드백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비효율적인 잔소리가 많아지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문득해보았다.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보면 유명한 속담을 생각할 수 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요즘 시대에는 해당 속담을 좀 변경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일단 말 한마디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면 이득을 본다는 것보다는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게 좋아 보인다. 그리고 천 냥이라는 표현은 현대 시대에 절대적인 가치를 알 수 없으므로 좀 더 현대 가치에 맞는 값으로 환산하는 게 좋겠다. 그렇게 하고 속담을 다시 만들어보면 아래처럼 표현할 수 있다.
말 한마디에 1억 원을 잃어버린다.
무엇인가를 잃어버린다고 생각하니 문득 경계하게 되고 더 신경 쓰게 된다. 물론 이런 변형된 속담을 들어도 무슨 말 한마디로 손해를 보냐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큰 거래가 있을 때만 조심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일상에서 말로 손해를 볼 수 있는 예시들을 이야기해보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적어보겠다. 우리는 흔하게 다른 사람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해주는 경우가 있다. 설거지, 운전, 육아, 청소 등을 주변에 깊은 관계가 있는 사람 대신에 하게 된다. 우리는 이런 일을 혼자서 계속하다 보면 지치게 되고 깊은 관계가 있는 사람에게 날이 서있는 잔소리를 하게 된다. 그러면 이때 일어나는 일을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자. 사실 우리는 그 사람 대신 일을 혼자 진행함으로써 마음의 빚을 지게 했다. 그 사람도 높은 확률로 해당 진행된 일에 고마움을 느끼거나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우리가 감정적으로 폭발해서 잔소리를 하면 실제 목표는 많이 쌓인 빚의 일부를 갚으라는 말을 하거나 이런 빚이 쌓여있다고 표현하고 싶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사람은 빚을 잔소리 듣는 비용으로 탕감했을 것이다. 그 잔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죄책감과 고마움은 사라졌을 것이고 잔소리를 듣고 견디는 비용으로 우리가 힘들게 노력해서 쌓아놓은 신뢰라는 마음의 빚을 갚아버렸을 것이다. 그 외에도 어머니들이 하는 공부 해라, 살 빼라, 결혼하라는 잔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어머니들의 목표는 정말 명확하다. 우리 자식들이 잘 되었으면 좋겠고 잔소리를 통해 지금 진행 안되고 있는 부분이 해결되길 바랄 것이다. 그러나 다들 자식이 되어봐서 알겠지만 그런 잔소리는 하등 쓸모가 없다. 오히려 해당 목표에 다가가는 것을 질리게 만든다.
그렇다고 우리가 잔소리를 안 할 수는 없다. 잔소리는 어떻게 보면 서로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좋은 피드백이다. 현재 피드백의 모습이 부정적이라고 아예 피드백을 서로 안 하면 발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아래 질문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어떻게 하면 좀 더 효율적인 잔소리를 서로 나눌 수 있을까?
해당 질문에 대해서 접근해볼 방법이 크게 3가지가 떠올랐다.
1. 잔소리에 마침표를 찍지 말자.
2. 잔소리를 확정적인 명사로 말하지 말자.
3. 잔소리를 당사자와 같이 회고해보자.
1. 잔소리에 마침표를 찍지 말자.
우리가 잔소리를 심하게 하다 보면 확정적인 마침표로 문장을 끝내는 경우가 많다. 너는 이러하기 때문에 안된다. 오늘도 이러한 것을 안 해줬다. 여전히 이러한 것을 안 해줬다. 이렇게 마침표를 찍고 나면 그 사람은 더 이상 노력을 할 수가 없다. 잔소리로 정한 의미로 인하여 이미 문제 상황을 해결할 수 없게 갇혀버린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본 것은 차라리 물음표로 끝내자는 것이다. 이러하기 때문에 안 되는 게 아닐까? 오늘도 안 해주었네? 혹시 해줄 생각은 없어? 여전히 이러한 것을 안 해주었네? 크게 의미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아직 그 사람에게 행동에 여지를 줄 느낌이 남아있게 된다. 그러면 다음에는 해봐야겠네라고 물음표를 받은 당사자에게 스스로 마침표를 찍을 상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잔소리에 마침표를 찍는 행위는 실생활로 보면 회사가 부도나서 빚을 못 갚는다고 직접 인정해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2. 잔소리를 확정적인 명사로 말하지 말자.
사실 1번과 비슷한 느낌으로 생각한 방법이다. 게으른 사람. 설거지를 하지 않는 사람. 게임만 하는 사람. 엄마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 이런 확정적인 명사로 잔소리를 한다면 잔소리를 듣는 사람은 현재 나의 이미지는 더 이상 내가 바꿀 수 없는 상황이라고 인지해버릴 것이다. 회사가 아직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부도처리를 해서 직접 손해를 가져버리는 상황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확정적인 명사보다 형용사나 동사를 이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게으르게 지냈구나. 설거지를 안 했구나. 게임만 했구나. 말을 듣지 않았구나. 아무것도 안 했구나. 이렇게 표현한다면 그나마 잔소리를 듣는 사람에게 변화하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여지를 줄 수 있지 않을까?
3. 잔소리를 당사자와 같이 회고해보자.
실제 사람 마음은 그 당사자가 아니면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심지어 그 당사자조차 모를 수도 있다. 그러면 아예 내가 했던 말들을 기록해서 해당 당사자와 같이 이야기를 나눠보자. 내가 했던 이 표현의 목표는 이것이었는데 너는 어떻게 이해했니? 이 표현을 어떻게 바꾸었다면 좀 더 효율적인 잔소리가 되었을까? 앞으로 내가 어떻게 표현하면 목표에 맞게 다가갈 수 있을까? 목표가 너무 어렵다면 적어도 어떻게 표현하면 기분이라도 덜 나쁠 수 있을까? 이렇게 당사자와 같이 회고하는 게 가장 명확한 방법이 아닐까? 이렇게 대화를 나눈다면 잔소리의 문제뿐만 아니라 평소에 쌓여있던 다른 오해들도 많이 풀고 더 원활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접근해볼 다른 추가적인 방법이 있다면 댓글로 공유해주기를 간절히 원한다. 늘 평소에 하는 말 한마디로 늘 한결 같이 잃어가고 있던 수많은 삶의 비용을 아낄 수 있다면 우리는 진정한 삶의 부자가 될지도 모른다.
즉, 아래 같은 속담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말 한마디가 삶을 부자로 만든다.
다 같이 진정한 삶의 부자가 되어 행복한 삶을 살아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