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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rtlife noah Jul 11. 2023

아이를 위한다는 말은 하지 말자

나는 육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아이를 위한다는 말은 하지 말자!

라고 스스로 각오를 다졌었다.


문득, 육아를 하는데 아이를 위하지 않는다는 말이 무슨 모순적인 말이지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할 것 같다. 오해를 풀기 위해서 해당 각오에 대하여 좀 더 풀어서 이야기하면 아이를 위한다는 말은 하지 말고 아이를 위한 일들이 나를 위한 일이라 말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원하여 육아를 하고 있고 내가 아이를 챙겨주고 싶어서 챙겨주고 있으므로 굳이 아이를 위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육아라는 일은 나를 위한 것이 맞다. 그런데 아이를 위했다는 말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게 되면 뭔가 나를 위해서 진행했다는 말은 조용히 생략되고 아이를 위해 큰 희생만을 한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그런데 실제로 육아를 진행해 보니 아이로부터 내가 받는 것이 훨씬 많다. 그리고 내가 챙겨주는 모든 것들이 아이에게 부담처럼 전달이 안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부모님은 많은 희생을 하고 나를 키우셨다. 그렇게 많은 희생을 하시면서도 자식들에게 딱히 바라는 것 없이 자식들이 잘 자라는 것만으로도 만족을 하시면서 살아오셨다. 그런 부모님을 보면서 나는 항상 마음의 큰 짐을 가지고 자라왔다. 부모님이 준 짐이 아닌데도 내가 굳이 만들어서 마음속에서 크게 스스로 지고 있었다. 이러한 큰 짐을 그나마 좀 내려놓게 된 순간이 우리 아이를 만나는 순간이었다. 아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부모님이 왜 자식들을 위해 그렇게 한 없이 희생을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아무리 마음속으로 열심히 계산을 해보아도 수지가 맞지 않는 작업을 우리에게 해주었다. 나에게도 부모님은 소중했기 때문에 그런 일방적인 희생이 점점 마음의 짐으로 나도 모르게 쌓이고 있었다. 나중에 내가 여유가 생기고 난 후에는 부모님이 부모님을 위한 생활을 더 하기를 많이 원했다. 그런데 부모님은 오랜 시간을 그런 방식으로 안 살아오셨기 때문인지 그런 생활 방식에는 적극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모습이 나에게는 항상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생활 방식이 나에게는 정확히 이해가 되지 않았고 부모님이 더 나은 삶을 살기를 항상 바랬다. 그런데 나의 아이를 만나는 순간에 나의 과거 생각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아이를 위한 나의 노력들은 다 나를 위한 것이었다. 아이를 챙겨주면서 내가 행복했고 아이를 챙겨주는 순간이 영원과도 같다. 우리 부모님도 우리를 챙겨주는 일이 비슷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자. 이해가 안 되었던 부모님의 생활 방식들이 다 이해가 되었고 덜어지지 않던 마음속의 큰 짐이 가벼워졌다. 나의 부모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좀 더 명확해지면서 스스로가 편안해졌다. 내가 딩크족으로 살았다면 평생 내려놓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하늘을 항상 떠받치고 있는 아틀라스가 떠오르면서 섬뜩하기도 했다. 쓸모없던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나니 부모님에게 더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고 많은 것을 돌려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나니 우리 아이에게는 이런 쓸모없는 짐을 안겨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노력한다고 그렇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표현이라도 충분하고 정확하게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육아를 하면서 아이를 위한다는 일방적인 말은 하지 않고 아빠를 위해서 하고 있어라고 말할 생각이다. 장난기가 섞인 편한 아빠의 느낌으로 하면 아래처럼 되지 않을까? 


너를 위한다는 착각은 하지 마라. 아빠가 너무 좋아서 아빠를 위해서 하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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