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이라는 꽃이야. 꽃말은 영원한 사랑이래.”
“무엇을 사랑해야 영원히 사랑할 수 있을까?”
“아직 나는 본 적 없지만, 그래도 영원이라는 게 있었으면 해.”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다소 헛된 소망을 가지곤 합니다. 그럴 수 있었다면 순간이라 불리지도 않았을 테지만요. 우리는 삶 속에 갇혀 있고 삶은 일직선상에서 흘러가는 시간 속에 갇혀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에게 “삶”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그 덧없음을 각인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 마주하는 모든 것들이 언젠간 끝나버리는 가운데, 끝나버린 모든 것들만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뿐입니다.
지리학자는 장미꽃에 대해 기록하지 않습니다. 꽃이란 덧없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지리학자가 아닌 우리는 덧없는 것들의 흔적을 기록합니다. 지나가는 순간들,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사람들, 스스로의 시간들까지, 영원하길 바라는 순간의 흔적들을 수집하며 겹겹이 쌓아 올립니다. 그렇게 모인 순간들은 하여금 이 순간이 영원할 것만 같은 환각을 보여주지만, 이내 무너져내려 각각의 순간들로 되돌아옵니다.
그래도 그 과정이 마냥 무의미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 수천 장의 필름을 한데 모아 만들어진 영화처럼, 우리가 수집한 순간들은 한 편의 서사가 됩니다. 영원한 순간은 없기에, 우리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의 감정에 온전히 나를 맡긴 채, 영원할 수는 없는 순간들이 결말까지 닿는 과정을 최대한 아름답게 써내려갈 수 있습니다. 영원하길 바랄 정도로 아름다운 순간들은 그렇게 한 편의 길고 짧은 영화가 됩니다.
이미 끝나버린 모든 것들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지만, 우리는 그 흔적을 수집하며 영원히 추억하는 법을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