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졸업사진

단편소설

by 이겸

그 남자의 졸업사진





"아들! 여기 봐. 찍는다. 찰칵ㅡ"


매년 봄이 오면, 학교 앞은 익숙한 소리로 채워진다.

아빠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나의 졸업사진을 빼먹지 않고 찍어주셨다. 단순히 앨범에 넣는 행위가 아니라, 아마도, 당신 마음속에 담고 싶으셨던 것 같다.


우리는 엄마 없이, 둘이서 모든 걸 해냈다. 밥, 빨래, 청소, 어릴 때부터 내가 해오던 일이다. 한 번은 뜨거운식용유를 냄비에 부어, 만두를 튀기고 있었다. 환기 버튼이 손에 닿지 않아, 연기가 천장에 가득했다. 손잡이를 잡아 기름을 버리려 했다. 출렁이며 튀는 기름 몇 방울에, 손과 발이 녹고 있었다. 나는 얼굴에 힘을 주었다. 맛있는 걸 해드리고 싶었다. 아버지는 퇴근해서 들어온 집에, 중국집 냄새가 나는 것 같다고 하셨다. 내 손과 발을 보셨다. 입술을 꽉 깨물고, 내 눈을 계속 쳐다보기만 하셨다. 아빠는 평소와 다른 목소리로 말했다. 잘했다. 훌륭하다. 그런 것들이 다,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앞에 있는 일을 열심히 해치우거라. 또 다른 목표를 찾아서 가다 보면, 남자는 성공한다고 하셨다.


나는 학교에서도 주번, 청소, 선생님 돕기 등. 집에서 하는 일처럼, 몸이 먼저 반응했다. 그런 것들이 쌓여서일까, 늘 반장 또는 부반장으로 뽑혔다. 또 다른 일들을 해치워 나갔다. 그런데, 딱 한 번. 고2 때 퇴학의 문턱까지 갔는데. 엄마의 부재를 말하는 녀석의 얼굴을, 칠판지우개처럼 털었다. 교복 셔츠에 떨어진 빨간 분필 가루. 잡혀버린 내 귀와 볼에도, 빨간 분필 가루가 묻었다. 아빠는 교무실의 의자보다 낮은 높이로 말했다. 나는 주먹을 쥐고 말했다. 엄마는 도망간 게 아니고, 버린게 아니라고. 저 녀석 때문에 친구들과 축구도 못 한다고. 이 따위 주장 완장은 필요 없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는, 남들 앞에 서는 일을 하지 않았다. 아빠는 집에서 처음 보는 초록색 유리병을 기울여, 오늘의 그 무엇을 대신 따라냈다. 나에게 손짓하셨다. 두 손을 들어 받았다. 맑고 투명한 그 액체는 짜고 또 썼다. 아빠는 어른이 되려면, 혀끝과 손끝을 조심히 써야 한다고 하셨다. 대신 펜 끝을 쥐라고 하셨다. 그리고 내 볼을 바라보셨다. 우리의 다음 잔은, 따른 적이 없는데도 이미 차 있었다. 아버지가 찍어주신 고등학교 사진에는 벚꽃이 없었다.


이듬해 봄, 친구들의 중심에서 빗겨 나간 후, 서울의 중심부에 있는 대학교에 들어갔다. 왼쪽 가슴에 세 글자 자수가 없었다. 그것으로 불리는 19년은 사라졌고, 학교명이 대신 새겨졌다. 가슴이 커지고, 어깨가 넓어졌다. 고작 1학년인데도. 어른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라면, 왜 담배로 연신 한숨들을 만들까. 왜 술로 인상들을 만들어 낼까. 아버지는 항상 나보다 크고, 넓었고, 거대했다. 넘을 수 없는 존재 그 이상이었다. 나에게 실망을 주지 않은 아버지를 위해, 펜을 열심히 쥐었다. 시야를 좁혔다. A+라는 알파벳이 많아질수록 F로 시작하는 것들은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친구, 여자, 낙제 등. 하지만 유일한 가족, 아버지와는 더 가까워졌다. 성적표를 거울 옆에 붙여두거나, 접어서 지갑에 넣는 걸 봤다. 우리 집에는 술이 없었다.


방학 때면 아버지 몰래 아르바이트했다. 휴대폰 속 메시지를 열면, 스크롤이 필요 없었다. 그 공백을 메우고 싶었다. 노란색 구인 어플을 깔고, 학교 근처를 뒤적거렸다. 나에게 맞는 일은 없었다. 아직은 내가 그곳에 맞춰야 했다. 카페에서 일하며 공부했다. 그러다 나에게 연락처를 물어보는 한 여자를 만났다. 메시지에 한 칸이 메워졌다. 그녀는 내가 책을 보는 모습이 멋졌다고 했다. 아버지가 말씀하신, 펜을 쥐라는 선견지명이 보이는 것 같았다. 나랑 같은 대학교, 다른 과에 다니는 그녀는 향수를 좋아했다. 은은하며 진해서 가끔 코를 자극했다. 장미꽃이 베이스라고 했다. 함께 다닐 때면, 나에게도 그 향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것 같은 그녀는, 항상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옷과 가방에는 학교 로고보다 오래된 기풍의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나와는 반대로 자란 사람을 만났다. 새로운 나를 찾으려, 펜 끝을 세웠다. 월급이 나오면 그녀를 따라 백화점이나, 근교 아웃렛에 데이트하러 갔다. 내 커피색 카드는 번번이 그녀의 손에 의해 내려갔다. 금가루가 묻은 플라스틱은 점원의 손을 공손하게 만들었다. 데이트가 끝나고 집에 돌아갔다.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서성였다. 재활용장 앞에서 내용물만 꺼냈다. 버려진 박스에 넣고 집에 들어갔다. 그녀를 만날 때의 색깔과, 아닐 때의 색깔이 달라지고 있었다. 우리 집은 빌라인데, 그녀의 집은 45층이라고 했다. 내가 44층을 오르려면, 어떻게 펜 끝을 써야 할까. 방학이 끝날 때쯤 잉크가 말라버렸다. 영장이라는 종이에 서명하니, 모든 게 사라졌다. 입대하고, 장미향이 나는 몇 통의 편지를 받았다. 그녀의 필체 속 잉크는, 점점 희미해졌다.


군 생활은 평탄했다. 메시지 대신, 사람들과의 소통. 철조망 아래, 인내하는 자유로움 속에서 펜을 쥐었다. 사격, 체력, 행군 다 잘 해냈다. 단 하나, 면회 날만 빼고. 아버지와 먹는 짜장면과 탕수육에, 서비스 군만두. 어릴 적 기름 튀긴 날, 기억이 나냐고 물었다. 그날 네가 더 놀랄까, 혼내지 않았다고 하셨다. 방에 들어가서, 한참 동안 옷을 벗지 못하셨다고 하셨다.

복학했을 때, 학교 정문은 낡아 있었다. 전역하면 모든 게 새것 일 거라고 생각했다. 알바를 했던 카페는 사라졌고, 수업을 듣던 자리도 사라졌다. 그때 알게 되었다, 내가 낡아버린걸. 수업에서도 도강을 듣는 것처럼 앉아 있었다. 나에게 A+라는 알파벳은, 전공 도서들의 텍스트를 합친 심플한 글자였다. 나는 도착할 그곳을 그리며, 다시 펜 끝을 강하게 쥐었다.


방학 때는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았다. 대자보에 걸린 동아리 활동. 복학생을 환영한다는, 연민스러운 문장. 가방을 내려놓게 했다. 회색 컨테이너 안, 그 들은 자신들의 앞날을 말했다. 졸업 후 살아갈 층들을 말하곤 했다. 비로소 나는 혀와 손이 움직이는 걸 느꼈다.

4학년이 되어, 대기업에 인턴십을 지원했다. 멈춰버린 19살 벚꽃, 다시 찍을 사진을 그려보며 학교에 다녔다. 그러다 동아리에서 한 학년 아래 후배를 만났다. 슈퍼에서 산 샴푸 같은 향이 나는 여자였다. 그녀는 내가 말하는 방식, 미래를 설계하는 모습이 멋지다고 했다. 그녀에게는 기풍이 흐르는 옷이나 가방이 없었다. 그 말을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떡볶이를 좋아하는 그녀 때문에 신당동을 자주 갔다. 내 접시에 만두를 주는 그녀에게, 만두를 싫어한다고 말했다. 갈 때마다 반복되었다. 그리곤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진한 고추장이 샴푸 향을 덮었고, 떡볶이를 먹는 횟수는 줄었다.


나는 인턴 과정을 잘 마쳤다. 원하는 대기업에 입사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남은 건,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의 졸업 앨범의 마무리. 아버지와의 사진 찍기 뿐이었다. 그녀와의 추억은 이 학교에 묻어두고, 새로운 층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근데, 군대에서 받은 장미 향 편지들이 떠올라서 쉽게 내 편지를 쓸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 사이에 남은 샴푸 향이 옅어지기를 기다렸다. 기념일, 하루를 함께 보냈다. 예전보다 더 미끄러지는 우리의 관계가, 나 때문인지 눈을 치켜뜨고 있었다. 그녀는 평소보다 큰 가방에서, 금색 리본이 매달린 상자를 꺼냈다. 리본을 풀고 포장지를 벗겨냈다. 하얀 셔츠와, 실크 넥타이가 들어있었다. 그녀는 입사 기념 선물이라고 했다. 받는 나의 두 손바닥이 손등처럼 보였다. 맨살에 닿는 셔츠의 느낌이 군복 같았다. 넥타이는 전투화의 끈처럼 질겼다. 봄인데 벚꽃은 피지 않았다.


첫 출근을 했다. 아버지가 사주신 기풍이 느껴지는 정장과 구두, 그리고 물려주신 시계를 찼다. 회사 건물 1층에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끝이 없는 높이의 유리창에는 구름이 가득 담겨있었다. 얼마나 더 펜을 잡아야, 저기에 가까워질 수 있을지, 시계를 보며 항상 오르겠다고 다짐했다. 삶의 교과 과정을 모두 마쳤다고 생각했다. 몸이 늘어지고 있었다. 시계가 스물여섯 바퀴밖에 돌지 않았다. 메시지의 공백이 사라지고, 휴대폰에 떠 있는 붉은 점들이 나를 마킹했다. 바빠서 그랬나 보다, 나는 어느새 샴푸 향을 잊고 있었다. 아버지는 남자가 서른 전에는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해야, 성공한다고 하셨다. 일주일에 한 번은 맞선을 봤다. 그러다, 익숙한 장미향이 나는 여자를 만났다. 그녀는 내게서 좋은 냄새가 난다고 했다. 같은 향수를 쓴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사무실보다 더 높은, 45층에 서서 그녀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나는 층이 맞는 사람과 비슷한 층에서 살게 되었다. 아버지는 하얀 장갑을 꼈다. 앉아서 연신 눈을 비볐다. 그리고선 휴대전화를 올리셨다. 새하얀 그녀와 서 있는 나를 찍으셨다.


"아들... 찰칵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