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증명사진

단편소설

by 이겸

그 여자의 증명사진





"자- 찍습니다. 하나, 둘, 셋. 찰칵-"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증명사진을 찍는다.

작은 사각의 세상. 과거를 묻어두는 이 행위는, 오래도록 나를 대변해 준다.

때때로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인터넷에 그날을 메모하기도 한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하게 된 건, 얼마 안 된 일이다.

강남에서 제일 잘 한다는 그분을 만나고 내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의느님의 축복으로 새롭게 태어난 날. 나는 엄마의 자궁보다 더 두터운 붕대를 얻었다. 양수 대신 받아 든 호박즙으로 실연의 붓기를 달래며, 탯줄 대신 과거를 끊었다. 빨간 눈이 내리는 날, 전철역까지 걸어가는 첫걸음마에 삐끗하며, 즙이든 상자를 하늘에 흘리기도 했다.


나에게 사진은 주홍 글씨 같았다.

마우스를 긁어 포토샵으로 다듬어도, 사각의 틀 속 나는 더 일그러졌다.

무엇이 그렇게 내 거울을 부숴놓았는지를 몰랐다.

나의 손인지, 아니면 그들의 눈과 입인지를 알지 못했다.

이미 지나간 시간은, 돌릴 수 없지만. 삶의 모든 선택과 행위에 따른 결과는 존재한다. 그리고 껴안고 가야 할 모습이다. 붕대를 풀던 날, 나는 꽃을 보았다. 웅크리고 붉게 젖은 봉오리, 아름다움의 가련함이 존재했다. 새로운 사진을 찍기 위해, 그날의 부기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삼 년 전,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연애를 시작했다.

벚꽃이 만개한 봄이었다. 대학 동아리에서 만난 그는, 진취적인 사람이었다. 그런 모습에 가슴이 뛰었다. 나에게 없는 추진력과 열정이 느껴졌다. 나는 3학년, 그는 4학년으로 선배였다. 군대를 다녀와서 복학했기 때문에, 나보다 세 살이 많았다. 그만큼 어른스러웠다. 꿈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그는 이미 인턴십을 하며 대기업 입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나는 많은 지지와 응원을 전했다.

우리는 즉석떡볶이를 좋아했다, 신당동에서 자주 데이트했다. 복잡 미묘한 것들이 뭉쳐서 끓여지고, 하나의 맛을 내는 요리. 어울리는 듯 아닌 듯 한 사람이 만나, 새로운 삶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만두를 먹지 않았다. 살며시 건네어 주어도, 다시 내 접시로 돌아왔다. 점점, 가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그에게 안 좋은 기억이나 추억이 있는지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없었다. 그저 만두를 싫어했고, 떡볶이를 원래 좋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심 불안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가 떠나면 사회인이 되기 때문이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대학생을 계속 만나줄까. 그런 고민이, 끝나버린 F 학점처럼 따라다녔다.


그는 인턴 기간이 끝나고 원하는 직장에 입사했다.

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다. 백화점 남성 코너를 뒤져가며, 휴대폰 속 그와 어울리는 선물을 골랐다. 하얀 셔츠와 실크 넥타이. 그가 입을 모습을 상상했다. 입술이 살며시 벌어지고는 했다. 입사 기념이야. 그에게 주었다. 그는 펼쳐보며 잘 어울리는지 물었다. 그리곤 사원증에 쓸 사진을 찍으러 갔다. 하늘색 블라인드가 내려온 배경. 학생이 아닌, 늠름한 사회인으로서의 출발. 그는 첫 과거를 묻고 증명해 냈다. 손으로는 박수를 쳤지만, 머리로는 박자를 놓쳤다. 그게 인정의 박자이던, 내 삶의 스텝이던 중요치 않았다. 내 손바닥에 올려진 그의 증명사진이 흔들렸다, 난 겨우, 그 떨림을 맞추고 있었다.


그가 내 선물을 입고 첫 출근을 했다. 나는 같은 옷을 입고 강의실로 향했다. 단풍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계절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눈이 먼저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내 사진들을 조각칼로 도려냈다. 그 잔해들을 빨간 라이터로 지졌다. 몇 주 뒤, 동아리 후배를 통해 듣게 된 그의 SNS. 붉은 장미를 끼고, 입맞춤하는 날이 메모되어 있었다. 세상에는 예쁜 꽃이 많았다. 그중에 나는 호박꽃 같았다. 다시 태어나기로 했다.

F만 면하는 낙인을 추가한 채, 사회에 나를 굴렸다. 나는 그날을 기다리며 과거 대신 미래를 묻었다. 비어버린 속에 헛구역질이 나면, 라면과 삼각김밥을 먹었다. 해가 뜨기 전에 나가, 해가 지고 나서 들어왔다.

어느 날 집에 들어와 전등 스위치를 눌렀다. 불이 켜지지 않았다. 현관에 주저앉았다. 눈을 떠도, 감아도, 보이는 건 없었다.

나는 시골에서 태어났다. 학교는 서울에서 나와야 한다고 어릴 적부터 들었다. 고등학교 성적이 좋았다. 삐뚤어지지 않기 위해, 학교와 집만 반복하며 살았다. 평범한 게 제일 좋은 거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들으며 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평범이란 무엇일까. 기준은 무엇일까. 괜찮은 학교를 나와, 괜찮은 직장을 다니고, 괜찮은 사람과 괜찮은 가정을 꾸리는 게 평범일까. 그렇다면, 나는 이미 어긋나기 시작했다. 하나가 빠졌다. 괜찮은 얼굴. 나는 부족한 한 개를 채워야 했다. 전등은 필요 없었다. 아직, 해가 필요치 않았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봄은 세 번 지나있었다. 봄과 겨울은 바로 옆에 붙어있었다. 전철역에 도착했지만, 계단은 어둡게 꺼져있었다. 나는 택시를 탔다. 오랜만에 느끼는 히터의 온기가 내 눈을 다독였다. 마르지 않고 흘러내리는 빨간 눈꽃이 녹아, 붕대를 적셨다. 이제는 봄이 올 것 같다. 하얀 붕대를 도려내면, 빨간 장미로 태어날 것 같았다. 나도 과거를 묻고, 새롭게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집 앞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거울이 깨져있었다. 집안의 거울도 깨져있었다. 방에서 앨범을 꺼내 조각칼을 들었다. 백일 사진 속 하얀 장미는 아름다웠다. 빨간 장미보다, 더. 넘기는 앨범들 속 나는, 언제나 웃고 있었다. 앨범에 신경 쓰지 않은 날들, 나의 표정을 몰랐다. 새로운 인생이란 존재할까. 이름을 바꾸고, 살을 빼고, 얼굴을 바꾸면, 정말 내가 아닌 나로 살아갈 수 있을까. 붉게 젖어가는 붕대를 두 손으로 껴안았다. 다만, 이 모습도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바랐다. 어떤 꽃으로 살아가든, 웃고 있는 증명사진으로 남을 테니까. 휴대폰을 꺼냈다. 나의 모습을 담기로 했다.


“찰칵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