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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이 Sep 16. 2023

스승이 사라진 세상

–사랑의 학교 

어린 시절, 학교에서 코 닿을 거리에 살았다. 근처 큰 초등학교가 아이들로 미어터지자 급하게 빈터에 세운 학교였다. 매일 먼지바람 부는 황폐한 언덕길을 올라 등교를 했다.  경제발전에 온 나라가 매진하던 시기였다. 세상은 흑백 사진처럼 칙칙하고 경직됐다.  


서울 변두리 콩나물 교실엔 육성회비를 못 내는 아이들이 몇 명씩 있었고 조회 시간에 그 아이들을 일으켜 세워 창피를 주는 선생님이 꼭 있었다. 수업 시간에 차별대우나 체벌은 당연했고 학부모들의 촌지, 뇌물도 횡행했던 시절이었다. 


학교 생활은 주로 어떤 선생님을 만나느냐에 좌우됐는데 많은 선생님이 격무와 박봉에 시달려 아이들에게 친절할 틈이 없었다. 선생님의 다정한 말 한마디, 칭찬에 늘 목말랐지만 혼나고 벌 받는 순간이 더 많았다. 선생님은 가깝다기보다는 어려운 존재였다. 그렇다고 ‘사랑하는’ 선생님을 갖고 싶은 마음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프란티를 교장실로 데려다 놓고 온 선생님은 무척 지치고 슬퍼 보이셨다. 

“30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쳤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다.”

선생님은 고개를 저으며 쓸쓸하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모두 숨을 죽이고 잠자코 있었다. 선생님의 손은 분노로 떨렸고, 굵은 주름살은 상처처럼 더욱 깊어졌다. 가여운 선생님!  

우리들도 괴로웠다. 

테롯시가 일어나 선생님을 위로했다. 

“선생님, 슬퍼하지 마세요. 저희 모두는 선생님을 사랑해요.”     

(동화 사랑의 학교, p97-98, 지경사)


‘쿠오레’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사랑의 학교’는 19세기말 작품이지만 놀랍게도 20세기 후반 내 초등학교 시절과 비교해 별로 이질감이 없다. 남북으로 갈라져 전쟁을 벌이며 외세로부터의 독립을 추구하던 당시의 이탈리아와 식민 지배와 동족상잔을 경험한 전후의 우리나라 풍경이 그렇게 유사할 수가 없다. 


대장장이, 나무장수, 채소 행상 등의 서민 부모 아래서 아이들은 형편이 어려워도 열심히 공부하고 서로 돕고 우정을 나눈다. 4학년 엔리코의 반 담임인 페르보니 선생님은 겉으로는 근엄한 중년 남자지만 속으로는 따뜻하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분이다. 


엔리코의 반에는 늘 약한 아이를 괴롭히고 어른들에게 반항하는 것을 즐기는 악동 프란티가 있다. 너무나 나쁜 짓을 많이 해서 부모님조차 손을 들어버린 대책 없는 아이다. 그런 프란티가 어느 날 학교에서 큰 사고를 쳐서 급기야 정학을 받기에 이른다. 페르보니 선생님은 뉘우칠 줄 모르는 프란티 때문에 가슴 아파하고, 프란티의 병든 어머니는 학교에 와서 눈물로 용서를 빈다.          

 

어린 시절, 때로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게 상처를 받을 때, 나를 위한 단 하나의 친구가 아쉬울 때 나는 ‘사랑의 학교’ 속 교실로 몰래 숨어 들어갔다.  그 속에는 착한 아이를 알아보고 사랑해 주는 선생님과 자식이 잘못했을 때 올곧게 바로잡는 아버지, 뛰어난 친구를 시기하지 않고 어려운 친구에게 베푸는 아이들이 있었다. 


‘사랑의 학교’ 속 교실은 단순히 지식이 전수되고 똑똑하고 부자인 아이들만 인정받는 곳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인간 됨됨이를 배우는 곳이었다. 그런 학교를 만드는 것은 물론 존경스러운 선생님과 현명한 부모님들이었다.       


버스 정류장 앞에 초등학교가 있다. 도서관에 가느라 아침 일찍 서두르면 교문 앞은 늘 북새통이다. 삼삼오오 교문을 향해 모여드는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드는 어머니들, 밖에까지 나와 지도하는 학교 보안관과 교사, 스쿨 존을 지키러 나온 경찰관 두 명. 그야말로 아이들을 위해 가정, 학교, 국가가 총 동원된 모습이다.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는 나라이다 보니 아이들은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귀중한 존재가 됐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고가의 최신형 휴대폰을 들려주고 지갑도 두둑이 채워준다. 걸음마를 뗄 때부터 온갖 사교육으로 무장시키고 무조건 최고로 키우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저마다 나의 권리와 이익을 주장하며 서로를 몰아붙이는 교실이 됐다.           


전쟁터처럼 변해버린 요즘 학교에 대한 뉴스만 접하던 어느 날이었다.

밖에서 돌아오다 학교 앞에서 멈춰 섰다. 알록달록 색색의 포스트잇이 교문 입구에 붙어 팔락이고 있었다. 

“선생님, 파이팅!”

“선생님, 응원합니다!”

“선생님, 사랑해요!”

단순한 수업 전달자가 아니라 인생의 ‘스승’을 가진다는 것은 어린 시절의 큰 축복이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선생님 하나 없는 성장기는 커다란 불행이다. 그런데 그런 스승을 가지려면 먼저 우리 마음속에 그 자리를 마련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쩌다 보니 그런 세상이 됐다.      


       


Pixabay입수된 Oberholster Venita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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