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어려웠다
계란말이는 해도 해도 어렵다. 새벽에 일어나 냉장고 문을 여니 수북이 쌓여 있는 계란이 보였다. 계란은 영양가 높고 가격도 싸고 맛이 있는 데다 다양하게 요리할 수 있어서 늘 찾는다. 특히 채소나 참치, 햄, 치즈를 넣고 한 계란말이는 늘 환영받는 반찬이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내 계란말이 솜씨는 영 서투르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요리 유투버의 방송을 본 다음 날이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당근과 파 썰어 넣고 부치는 계란말이를 아주 쉽게 뚝딱 해낸다. 특히 계란말이가 아직 뜨거울 때 꺼내서 뒤집개로 좌우를 탁탁 쳐서 예쁜 사각형으로 모양을 잡는 기술이 훌륭하다.
나는 내가 만든 계란말이가 납작하고 볼품없는 게 사각 계란말이팬이 없어서라고 생각했지만 그녀를 보면 그건 순전히 솜씨 문제인 것 같다. 그녀는 우리 집과 똑같은 원형 26cm 프라이팬을 쓴다.
그래도 어쨌든 계란말이의 장점은, 생긴 거야 어떻든 맛은 다 똑같다는 것일지 모른다. 계란 세 개를 볼에 풀고 탄력이 생기게끔 열심히 저어준 후 당근과 파를 총총 썰어 넣고 부칠 준비를 한다. 프라이팬을 달군 후 기름을 두르고 계란을 일단 반 정도 부어 넣는다.
그런데 이제부터가 문제다. 계란 지단이 너무 익으면 말다가 뚝 끊어지고 너무 안 익으면 접어지지가 않는다. 안 익은 계란물은 옆으로 흐르거나 너무 약해서 지단이 찢어지고 그러면 서서히 망칠 조짐이 온다. 지단을 적당히 익힌 후 재빨리 돌돌 말아줘야 하는데 언제나 그 타이밍을 놓친다. 게다가 뭘 사용해야 계란이 쉽게 말아지는가 말이다.
유투버 그녀는 숟가락과 뒤집개를 이용해 양손으로 능수능란하게 계란을 돌돌돌 만다. 그런데 나는 언제나 뒤집개를 들고 우왕좌왕하면서 가까스로 계란을 접는다. 그런데 오늘따라 계란이 빨리 익지 않아 마음이 급해졌다. 역시 좁고 길쭉한 프라이팬 생각이 굴뚝같다. 프라이팬이 넓다 보니 불길이 닿는 곳은 계란이 벌써 익었고 다른 쪽은 흐물흐물했다.
잠깐 방심하다 후다닥 정신을 차리고 계란을 뒤집었더니 어느새 바닥이 너무 익었다. 노릇노릇 적당히 구워져야 먹음직스럽지 짙은 브라운색을 띤 계란은 탄 기미가 느껴진다.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고 그냥 먹자니 계란말이를 망쳤다는 생각에 기운이 빠진다.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계란말이 할 준비를 하며 잠시 망설였었다. 또 계란을 어떻게 말지 노심초사하는 것이 귀찮게 느껴져서 그냥 말지 말고 계란 부침으로 할까, 잠시 고민했었다. 그냥 계란부침을 할걸, 구시렁대다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나왔다. 문득 계란말이와 관련된 오래 묵은 감정이 되살아났다.
내가 좋아하는 계절 가을의 옥에 티는 운동회였다. 타고나길 운동 신경이라고는 없는 데다 허약하고 몸 쓰는 일을 싫어했다. 흙먼지 뒤집어쓰고 땀 흘리고 시끄럽고 힘들고... 운동회는 내가 기피하는 것들을 모두 모아놓은 것 같았다.
선수로 활약하지 못하면 응원이라도 열심히 해야 하는데 정적인 성격이라 끼도 없다. 체육 시간에는 엑스트라더니, 운동회 때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 역할이었다. 공부는 그럭저럭 해내도 도대체 운동은 기질도 안 맞고 자포자기니 운동회 날은 마음에 먹구름 낀 날이었다.
그러니 빨리 점심 시간 되기만을 기다렸다. 어차피 오후에는 누구나 참여하는 이어 달리기 종목이 있어 망신살은 예약해 놓았다. 팔다리를 허우적대며 꼴찌로 들어오지만 않으면 다행이다.
운동회 때는 소풍날처럼 가까운 친구들이 모여 도시락을 풀어놓고 함께 먹는다. 안 그래도 존재감도 없는데,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엄마에게 신경 쓴 도시락을 부탁했다. 김밥까지는 오버고 반찬이라도 남보기 부끄럽지 않게 정성 들여 싸달라고. 도시락통을 열었을 때 터져 나올 친구들의 감탄을 기대하면서.
엄마에게 특별히 주문한 건 계란말이였다. 정확히 당근하고 파 총총 썰어 알록달록한 계란물에 보기 좋게 김 깔고 돌돌 말아 정성스레 만든 계란말이. 엄마가 아무 반찬이나 넣어줄까 봐 이왕이면 김 넣고 있어 보이게 만든 계란말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런데 확신에 차서 의기양양 반찬통을 열었을 때 나는 눈을 의심했다. 거기에 담겨 있는 것은 계란말이가 아니라 그냥 계란 부침이었다. 얇게 부쳐서 직사각형으로 대충 썰은 계란 부침. 잘게 썬 당근과 파가 지저분해 보이기만 하는, 정성은커녕 대충 만든 계란 부침이 가득 들어 있었다. 누가 저런 격식도 없는 계란 부침을 운동회날 싸준단 말인가.
성의 없는 반찬은 한순간에 나까지 하찮은 아이로 만드는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오전 내내 기가 죽어 있었는데 친구들 앞에서 체면을 구겼다고 생각했다. 그날 오후 이어 달리기에서 역시나 모두를 실망시키며 우리 반에 승리를 안겨주지 못한 것은 물론이다. 이래저래 운동회 날은 늘 끝날 시간만을 기다리며 보내는 가시방석이었다.
계란말이 앞에서 이맛살을 잡으며 나도 모르게 계란부침이 튀어나온 순간, 해묵은 기억이 되살아나며 실소를 짓고 만다. 평소 엄마를 안 닮았다고 느끼지만, 가끔 음식 할 때 계량은커녕 뭐든지 대충 내 식대로 처리하는 것은 엄마와 유사하다. 뭘 하든 찬찬히 정석을 쫓기보단 쉽게 빨리 얼렁뚱땅 끝내고자 하는 점도 역시 엄마다.
그러니 그날, 엄마 역시 어쩌면 프라이팬 앞에서 계란말이를 고민하고 있을 때 갑자기 모든 게 귀찮아졌을지도 모른다. 그냥 쉬운 계란 부침으로 가자, 계란 부침이나 계란말이나 그게 그거지, 해버렸을 것이 틀림없다. 무신경한 엄마라고 원망했지만,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나는 다를 거라 장담하기 어렵다.
어느덧 거울을 볼 때마다 조금씩 엄마의 얼굴이 비치는 요즘, 엄마처럼 늙는다는 것이 미스터리하게 느껴진다. 실망감, 어이없음, 서러움까지, 그때는 어떻게 계란말이 하나가 그렇게 대단했을까. 금이 간 마음은 어느덧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되어 작은 끄덕거림으로 아물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