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sons learned
복층에 올라와있다. 여기는 책상과 컴퓨터가 있는 곳. 일부로 걷지 않은 암막커튼에 별 모양으로 펀칭된 구멍들 사이로 빛이 들어오고 있다. 그리고 내 책상 뒤로 난 작은 창문으로, 내 뒤에서부터 앞으로 겨울 햇살이 한가득 들어오고 있다. 어제 내가 피우고 남겨둔 팔로 산토 조각에서 향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이 곳에서 새삼 안심한다.
어제 나는 아팠다.
여섯 시 정도였나 저녁시간부터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애기 목욕을 시키고 나니 허기가 몰려와서 아기를 옆에 두고 버섯을 계란에 풀어서 소금을 넣고 볶아서 먹었는데 먹는 내내 머리가 조여왔다. 아기가 졸려하면 책을 읽어주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머리가 너무 아파서 아기가 졸려서 눈이 벌게지고 눈을 비벼오는 순간까지도 몸에 힘이 없었다. 책읽기는 물건너 갔고, 이제 재워야겠다 싶어 아기를 아기침대에 눕히고 자장가를 튼 다음 나도 아기침대 옆 우리 침대에 누워버렸다. 아기한테 엄마가 아파서 같이 누울게 라고 말하고 누워서 차임을 흔들면서 우리애기를 쳐다봤다. 아기가 나를 쳐다보고 종소리를 가 나는 방향으로 집중하기도 하면서 날 보며 웃다가 옹알옹알 개구리인형이랑 놀고 개구리를 얼굴에 부비고 하다가 스르륵 잠들었다. 좀 자다 일어나면 괜찮겠지 하고 나도 눈을 감았다.
2시간 동안 그렇게 눈만 감고 있었다.
머리는 계속 점점 아파왔는데 생각해보니 나는 항상 체하면 이렇게 머리가 아팠지. 오늘 하루를 돌아보니 주말에 엄마가 끓이고 간 보리차가 계속 부엌에 있었는데 아까 마셔보니 맛이 변해있었다. '맛이 변해있군' 이라고 생각하며 그걸 한 컵 꿀꺽꿀꺽 들이켰다. (나는 가끔 이렇게 무모할 정도로 무심한 데가 있다..)
냉장고에 반찬이 많은데 밥이 없어서, 또 밥을 하려니 갑자기 매우 귀찮아지면서 내가 좋아하는 바르다 김선생 김밥이 생각이 났다. 그래서 배민으로 김밥을 (최소금액 맞추기 위해 두줄을) 시켜서 먹으려는데 해온이도 깨 있었다. 해온이를 잠시 범보 의자에 앉혀놓고 김밥을 먹는데 나는 원래도 음식을 대충 씹어 삼키는 스타일인데 아기랑 놀아줘야 된다는 그런 심정에 김밥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하면서 몇번 안씹으면서 김밥을 먹은 것 같다. 해온이가 범보 의자에서 꾸르륵하는 똥 싸는 소리를 냈다. 돌아보니 아기가 얼굴에 오만상을 틀고서 온 몸에 힘을 쥐어짜며 전체적으로 "구겨져" 있는데 그 쪼그만 아기가 저러고 구겨져 있으니 정말 귀여워 죽겠더라. 그 상태로 한 번 더 꾸르르륵 똥 누는 소리를 냈다.
우리는 눈을 마주 보았는데 순간 해온이 눈이 아치형으로 변하면서 온통 밝은 눈웃음이 번지면서 입으로도 함박웃음을 지었다.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이 내 안에서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똥 싸도 저렇게 해피한 우리 아기. 찝찝할 텐데 나를 보며 해맑게 웃는 아기가 마음 쓰여서 바로 안아 기저귀를 갈아주었다. 문제는 내가 배가 고프니까 그렇게 안으러 가기 전에 "김밥 한입 털어 넣고" 안고 기저귀 갈러 가는 길에 또 배가 고프니 "하나 집어서 털어" 넣고. ㅋ 또 간 기저귀 버리러 쓰레기통으로 향하는 길에 하나 집어 대충 씹어 삼키고. 이런식으로 먹었 던 것 같다. 그러니 내가 아픈 이유는 대충 먹은 김밥 두 줄에 체했거나 상한 보리차거나.
둘 다 거나..
몇 시간동안 누워만 있고 전혀 잠을 이루지 못한 나는 양치나 하고 제대로 자려는 심정으로 화장실에서 칫솔질을 하는데 갑자기 몸안에서 웩 하고 올라오면서 엄청 토했다....
배가 찢어지듯이 아플 정도로 토했다... 저녁에 먹은 버섯볶음도, 김밥도, 이리저리 지나다니며 먹은 빵도, 머리 아파 죽을 것 같아서 좀 전에 먹은 타이레놀 한알까지도 (보진 않았지만) ... 내 몸을 막고서 머리에 피가 제대로 순환되지 못하게 아프게 했던 모든 것들이 나오는 느낌이었다. 토하는 게 아파서 눈물도 찔끔 나왔다.
나는 원래 김밥에 잘 체했다. 특히 배고픈 상태에서 우걱우걱 욱여넣을 때 그렇다. 물도 상한 물을 마셨다. 원래는 보리차를 끓여놓으면 맛있어서 하루 만에 다 마시는데 이틀간은 물도 제대로 안 마시고 그러느라 물이 방치돼있었던 것이다. 물도 많이 마시고 제대로 못먹는걸 감안하더라도 최소한 여러번 씹어 삼켰으면 좋았을 텐데. 요가를 하면서 내 몸을 돌보자고 마음을 잡아놓고도 이런 식으로 몸을 돌보지 않고 있었구나...
토하고 나니까 좀 나았다. 좀 견딜만 했을 뿐 머리가 계속 아파서 머리를 빗고 머리카락 속을 막 만져주고 이리저리 스트레칭을 좀 오랫동안 했다. 결국 밤 열한 시 반이 되어서야 자리에 누웠다. 다행히 토하고 나니 잠은 잘 수 있어서 잠에 빠져들었는데 꿈속에서 헤매다가 1시가 돼서 아기가 배고픈지 깼다. 머리가 너무 아팠다. 한 세시간 자고 일어난거라 너무 피곤한것까지 추가... 다시 깨달은 점. 내가 아프면 아기 수유하는 것도 힘들다는 거... 내가 만약에 몸을 못가눌정도로 아프게 되면 이 아기는 누가 먹일 것인가 생각하니 마음이 철렁 했다. 아프지 않게 하자. 나도 아기도.
누워서 아기를 내 옆에 눕히고 수유를 힘들게 하고 잠든 아기를 침대에 내려놓고 어째 머리가 더 아프냐면서 타이레놀을 한알 (아까 토했으니까 ㅠ) 다시 먹었다. 그러고 깊이 잠들었고 새벽에 아기가 먹을 시간이 되서 일어나니 더 이상 머리가 아프지 않았다.
긴 밤이었다.. 아프면 몸이 너무 힘들고 몸은 그 시간을 겪어내느라 또 한 번 더 지친다. 게다가 어린 아기를 돌보는 엄마로서 아기를 먹이고 돌보는데도 지장이 생긴다는 것을 깨닫는 긴 밤이었다. 그래도 이 모든 게 낮이 아닌 거의 아기가 잘 때 일어나서 쉬면서 견뎌낼 수 있었으니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내가 섭취하고 먹는 것들이 내 안에서 막혀서 에너지가 흐르지 못하게 하지 않도록..
알아차리고 먹도록 하자고... 희미한 겨울햇살이 들어오는 방 안에서 여기다 글을 쓰며 수련하는 몸을 내가 도와줘보자고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이제 다시 내려가야지.
:)